[여성소비자신문 한고은 기자]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가 배럴당 -37.63달러에 거래를 마감해 사상 첫 마이너스 유가를 기록했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현상으로 제조업과 항공업 등이 멈추고 실물경기 역시 위축되면서 원유에 대한 수요는 없고 재고는 쌓이게 된 상황이다. 이에 국내 정유업계도 타격을 면치 못하게 됐다.

유가 폭락은 코로나19의 유가 하락과 함께 원유시장의 선물 만기 역시 함께 겹치면서 생겨났다. 5월물 WTI 만기일(21일)에 앞서 원유 인수보다 6월물로 갈아타는 ‘롤 오버’를 선택해서다.

이안나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수요는 급감했는데 재고는 넘치고 있는 상황으로 원유를 가져갈 곳이 없어 인수 시점이 늦춰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휘발유, 경유, 등유 등은 최대 6개월 보관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기한이 짧은 데다 이미 재고를 감당할 공간 역시 부족하다. 평소대로라면 정유 및 항공의 수요가 있어 물량을 가져가지만 코로나19 여파로 하늘길과 바닷길 등이 모두 막히고 이동이 제한되고 제조업이 멈추는 등 공급망에 차질이 생긴 상황이다. 수요절벽에 결국 원유가 쌓여만 가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에 정유회사들은 수요절벽에 대비해 공장가동률을 85% 아래로 낮추고 희망퇴직 등을 검토하면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정유 공장 가동률을 100%에서 85%로 내렸고 5~6월 예정된 정기 보수도 1~2주가량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보수에 들어가면 가동률은 약 10%포인트 추가로 내려간다.

현대오일뱅크는 제2공장 원유정제처리시설 및 중질유분해시설 가동을 오는 5월 22일까지 중단키로 했다. GS칼텍스도 여수 공장의 정제 설비 정기 보수를 앞당겼으며 에쓰오일도 가동률을 80%대로 낮춘 데 이어 사상 첫 희망퇴직도 검토 중이다.

이에 정부도 지원방안의 하나로 정유사에 석유 제품 저장 창고를 개방하고 석유수입부과금 징수를 3개월 유예하는 등의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업계 입장이다.

무엇보다 세율 3%인 원유수입 관세를 한시적으로 폐지 혹은 축소하고 석유수입부과금 인하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개별소비세와 부가가치세 등도 감면이나 탄력세율 적용 등 세제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한국이 처한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우리나라는 OECD 비산유국들과 달리 원유에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다른 OECD 비산유국들은 기초 원자재인 원유에 무관세를 적용하고 있고 산유국인 미국이 관세를 배럴당 5.25센트씩 부과한다.

이로 인해 정유 4사가 지난 2019년에만 정부에 낸 석유수입부과금은 1조4086억원에 달한다.

제품을 만들수록 손해가 생기고 유동성 위기가 커지는 만큼 실적악화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입장이다.

심지어 22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기간산업 안정기금 40조원을 항공, 해운, 자동차, 조선, 기계, 전력, 통신 7개 업종에 공급하기로 한 것에 대해 정유업계가 제외돼 논란이 일었다.

“가동률 축소 등 자구 노력만으론 안 돼…정부 지원 필요”

사진제공=뉴시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성윤모)는 22일 성윤모 장관 주재로 국내 정유4사 대표들과 '정유업계 간담회'를 개최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석유수요 감소, 정제마진 악화 등에 따른 정유업계 위기상황을 점검하고, 업계 애로·건의사항을 청취하는 한편 정부와 민간의 향후 대응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자리에는 SK에너지 조경목 대표이사 사장, GS칼텍스 허세홍 대표이사 사장, 현대오일뱅크 강달호 대표이사 사장, 에쓰오일(S-OIL) 류열 사장 등 4개 업체 대표가 참석했다. 아울러 김효석 대한석유협회장, 한국석유공사 양수영 사장, 에너지경제연구원 조용성 원장도 자리했다.

이들은 “심각한 경영 여건 속에서 가동률 축소, 경비 절감 등 자구 노력을 시행 중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석유 수요가 급감해 수출 비중이 큰 국내 기업의 어려움이 지속될 것”이라면서 “정부가 지속적으로 지원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말했다.

성윤모 장관은 정유업계가 직면한 위기의 조기 극복을 위해 조치 가능한 지원수단을 지속 발굴해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간 정부는 △석유수입·판매부과금 및 관세 납부유예(각 90일/2개월), △석유공사 여유 비축시설 임대, △전략비축유 조기·추가 구매 등 정유업계 지원정책을 발표·추진해 왔다. 그러나 기존 대책이 충분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오자 추가 대책 보완 방안을 마련한 것.

정부는 앞으로 △석유공사 비축시설 대여료 한시 인하, △석유관리원 품질검사 수수료 2~3개월 납부유예, △대규모 석유저장시설 개방검사 유예(협의 중) 등을 통해 업계의 위기 극복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업계의 건의사항과 관련해 유관 부처와도 긴밀히 소통하고 있으며, 향후 국민후생 증진 효과, 석유업계 경영 여건 등에 따라 추가적으로 필요한 조치들을 지속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올해 국제유가를 38불/배럴 수준으로 예측하며 국내·외 석유산업이 2분기까지는 힘든 경영여건이 지속되고 하반기부터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글로벌 석유기업들이 하반기부터는 사업다각화·신규투자 등 새로운 대응에 나설 것으로 관측되는 만큼, 국내 석유산업도 글로벌 경쟁력 유지를 위한 혁신적 사업전략 모색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성윤모 장관은 “최근 정유업계가 처한 위기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정유업계 위기극복 및 경쟁력 유지를 위해 앞으로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유업계 관계자는 “숨통이 조금 트인 정도”라면서 “업계가 요구해온 개별소비세 감면 등 여러 세제 지원책이 이번 대책안에 담기지 않아 여전히 우려가 큰 상황이지만 앞으로의 지원 역시 약속한 만큼 발빠른 보완이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고은 기자  h9@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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