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한고은 기자] 노조 저지 속에 출근을 하지 못했던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이 임명 27일 만인 지난달 29일에 취임식을 갖고 직원들의 환대 속에 첫 출근을 했다. 윤 행장은 청와대 경제비서관 출신으로 10년 만에 선임된 외부인사다. 금융 실무 경력이 전무하다는 데에 우려가 있었지만 ‘노조추천이사제’ 등을 약속하며 노사 갈등을 풀고 첫 걸음을 시작했다. 윤 행장이 기업은행의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를 짚어본다. 

윤 행장은 취임사에서 “IBK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초일류 금융그룹으로 만들어 가겠다”며 “‘혁신금융’과 ‘바른경영’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이를 실행으로 옮기기 위한 혁신 기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윤 행장은 이를 위해 신뢰, 실력, 사람, 시스템 네 가지를 강조했다. 먼저 ‘고객중심의 업무방식과 조직문화로 신뢰받는 은행’이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실력의 원천은 사람”이라며 “투명하고 공정한 인사와 직원들의 역량 강화에 힘쓸 것”을 약속하고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 의사결정의 속도를 높이고 유연한 조직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윤 행장은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튼튼한 자본력을 갖추고 디지털 전환의 속도를 높여 ‘생활 기업금융’으로 신속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소통과 포용을 통해 변화와 활력이 넘치는 조직을 만들어 직원들과 함께 행복한 일터, 신바람 나는 IBK를 만들어가자”고 말했다.

윤종원 행장은 1960년생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학 석사, 미국 UCLA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다. 이후 1983년 행정고시 27회로 공직에 입문한 후 거시경제 및 국내·국제금융, 재정·산업·구조개혁 등 경제정책 전반에 정통한 경제관료라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정식 취임하기까지 윤 행장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임명 이후 출근을 저지당하며 기업은행 본사에서 발길을 돌리고 임시 사무실에서 근무를 해야 했다. 결국 지난달 설 연휴 동안 기업은행 노조 등과 만나 6대 과제 실천을 약속했다.

△희망퇴직 문제 조기 해결할 것 △정규직 일관전환 직원의 정원통합 △임금체계 개편시 노조가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을 것 △유관 기관과 협의해 임원 선임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 개선할 것 △노조추천이사제를 유관기관과 적극 협의해 추진할 것 △인병휴직(휴가) 확대를 위해 유관 기관과 적극 협의할 것 등을 담은 6대 공동선언문에 합의했다.

노조추천이사제 도입, 실현 가능성 높아

이 가운데 노조추천이사제는 금융권을 긴장케 하는 제도로 꼽힌다. ‘노조추천이사제’란 노조가 추천하는 전문 인재를 이사회의 사외이사로 앉히는 것으로 노동이사제를 위한 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노동이사제는 기업 이사회에 대표 노동자들이 참여해 기업 내 중요 의사 결정을 함께 하는 것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면서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이에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 역시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산업은행 노조 집행부는 지난달 30일 새로 출범한 이후 노조추천이사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특히 곧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이사들이 있어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다는 시선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1분기 노사협의회 당시 논의하기로 했었으나 진척된 것은 없다”며 “노조 집행부 출범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 안건으로 올라온다면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조추천이사제는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업계의 목소리다. 노동조합이 경영에 직접 개입을 하게 되면 중요한 안건이나 의사들의 결정이 지연되거나 보류될 수 있다. 이로 인해 공공기관의 경영효율성 측면에서도 손해가 있을 거라는 것이다. 또한 노동이사제가 도입될 경우에는 노사 견제가 아닌 담합을 통해 고객은 물론 국민과 정부 등 공공의 이익보다 사측의 이익만을 극추구할 수도 있다. 찬반의 의견이 팽팽하게 갈리기 때문에 지금까지 노동이사제를 도입에 성공한 금융권은 없었다.

산업은행도 지난해 노사협의 단계까지는 갔으나 뚜렷한 성과가 없었고 KB국민은행도 2017년 이후 수차례 시도했지만 주주총회에서 표를 얻지 못했다. 기업은행 노조도 2019년 2월에 “문재인 정부의 금융개혁 방향 설정을 위해 출범한 금융행정혁신위원회가 2017년 말 보고서를 통해 금융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 도입을 권고했다”면서 “노조는 해당 권고 이행 촉구를 위해 금융노조와 함께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상급기관장인 최종구 당시 금융위원회 위원장의 반대에 부딪쳐 실패했다. 지난해 3월 최 전 위원장은 “현재 은행권 종사자의 급여나 복지수준을 볼 때 금융권에 먼저 노동이사제를 도입해야 할 만큼 열악하지 않다”면서 사실상 반대하며 선을 그은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윤종원 기업은행장 취임 과정에서 이루어진 노조추천이사제는 실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윤 행장의 출근 저지 투쟁을 한 달 가까이 이어갔던 노조가 투쟁을 중단하는 조건으로 받아낸 약속으로 특히 윤 행장과 정식 대화를 통해 합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냈고 노동이사제가 문 대통령의 국정과제인 만큼 윤 행장에게도 ‘뜻’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설 연휴기간 동안 기업은행 노사의 합의 과정에서 은성수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참석한 것 역시도 성사 가능성을 높게 볼 수 있는 요인이다. 노동이사제를 반대해오면서 기업은행노조를 좌절케 했던 최종구 전 위원장과 달리 노조추천이사제 등을 논의하고 약속하는 자리에 은 위원장이 자리한 것은 최 전 위원장과는 정반대의 태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윤 행장의 과제 실현으로 노조추천이사제가 기업은행에서 최초로 실현된다면 산업은행을 비롯해 지금껏 노동이사제를 추진해왔으나 실패해온 은행 노조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노사합의를 시도하고 성사시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전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책은행의 경우 노동이사제 도입은 더욱 심사숙고해야 한다”면서 “근로자가 아닌 정부가 주주라는 점과 정부기관에 가까우므로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공기업 측면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근로자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정부인 주주와 다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노동이사제 도입은 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해 지금처럼 투쟁과 실력행사 등 대립으로 점철된 노사관계 상황 속에서는 도입 후에도 오히려 기업 운영 및 의사결정 단계에서도 갈등이 지속돼 국민들의 이익이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지금 당장은 노조추천이사가 사외이사로 임명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빨라도 2021년 3월 주총에서 후보 추천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기업은행 사외이사 모두가 임기가 남았거나 최근 임명이 됐기 때문이다.

희망퇴직 문제 해결엔 ‘고민 필요’

공동 선언문에 담겨 있던 희망퇴직문제 조기해결 문제와 관련해 윤 행장은 “요술 방망이를 들고 혼자해결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희망퇴직은 지난 2014년 감사원이 “조기 퇴직자들에게 주는 희망퇴직금을 없애고 임금피크제를 활성화하라”고 산업은행에 권고하면서 이후 모든 국책은행에서 희망퇴직을 중단했다. 

정년을 채우지 않고 희망퇴직을 하는 자들에게 지급하는 희망퇴직금은 일종의 위로금 같은 성격으로 통상 2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2~3억원의 금액을 국책은행 종사자들에게 지급하는 것이 과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윤 행장은 “많은 직원이 제도 개선을 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우리가 가진 특수성과 경쟁 기관들과의 차이도 있어 그런 부분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고 말하면서 시일이 필요하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그러나 지금의 국책은행 희망퇴직 제도는 기재부의 인건비 상한 규정 때문에 있으나 마나한 제도나 다름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준정년 임직원의 경우 임금피크제 기간인 5년 동안의 급여 가운데 45%를 받게 된다. 현재 시중은행에서 퇴직 직전에 받는 3년치의 월 급여에 해당하는 희망퇴직금에 비하면 그 액수가 크지는 않아서 신청자가 많지는 않을 전망이다.

꾸준한 성장 보여온 기업은행에 동력 더할까

윤 행장은 청와대에 몸 담았던 외부 관료 출신으로 기업은행 노조로부터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 속에 출근을 저지 당해왔다. 윤 행장이 금융 실무 경력이 없다는 데 우려를 표한 것이다.

지난 2010년부터 IBK기업은행은 조준희 전 행장을 시작으로 권선주·김도진 전 행장까지 3연속으로 내부출신 행장을 배출하고 기업은행 총자산도 2010년 163조4000억원에서 2018년 260조8900억원으로 늘어나는 등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특히 김도진 전임 행장은 ‘동반자 금융’을 강조하면서 중소기업 지원 확대에 집중해 중소기업대출 160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상반기 연결기준 당기순이익은 9859억원를 기록해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고 자회사를 제외한 기업은행의 개별기준 당기순이익은 8662억원을 기록했다.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2018년 말보다 7.6조(5.0%) 증가한 159.2조원, 시장점유율은 0.3%p 증가한 22.8%를 기록해 중소기업금융시장에서 리딩뱅크 자리를 지켰다.

총 연체율은 전년 동기와 같은 0.50%를 유지했고 고정이하 여신비율은 전년 동기 대비 0.10%p 개선된 1.26%를 기록해 이익 창출을 위한 건전성도 나아졌다.

IBK기업은행은 당시 적극적인 중소기업 지원 및 체계적인 건전성 관리를 유지해 내실 성장을 지속하고, 동반자 금융 기조를 유지해나갈 것을 밝힌 바 있어 윤 행장이 전임 행장이 강조했던 동반자금융에 혁신을 더해 기업은행의 성장세에 동력을 더해 나아갈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한편 IBK기업은행은 혁신창업기업 지원을 위해 대출금리를 1%p 낮춘 1조원 규모의 ‘혁신성장 특별대출’을 지난달 20일 출시했으며 올해 총 22조원 이상의 자금을 공급할 계획이다. 아울러 기업은행은 기획재정부가 52.2%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산업은행이 8.5%, 수출입은행이 2.2%를 갖고 있으며 외국인이 19.1%, 기타가 18.1%를 보유 중이다.

한고은 기자  h9@wsobi.com

<저작권자 © 여성소비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