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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통문을 생각한다
황인자 한국외대 초빙교수/젠더국정연구원 대표 | 승인 2017.09.13 12:50

[여성소비자신문]지금으로부터 119년 전, 1898년 9월1일. 문명개화의 물결을 타고 한양의 북촌마을 부인네들 사이에 사발통문이 돌았다. 이름하여 여권통문(女權通文).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 선언문이다. 당시 황성신문은 하도 놀랍고 신기한 일이라 하여 여권통문을 게재하고 독립신문은 정부가 여성교육에 예산을 쓰라고 주장하면서 여권통문을 세상에 알렸다. 

3·8 세계여성의 날의 배경이 된 뉴욕 여성들의 권리선언보다도 10년이나 앞섰으니 우리 대한 여성들의 선견지명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사학계는 여권통문을 선각적 여성들의 놀랍고도 힘찬 외침이라고 평가한다.  

동학의 남녀평등 사상을 기반으로 나온 여권통문은 근대적 의미에서 한국 여성운동의 시작이었고 여성 참정권 운동의 효시라 할 수 있다. 여성도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다, 여성도 직업을 가지고 일하고 싶다, 여성도 정치에 참여하여 세상을 바꾸고 싶다, 이 세 가지 권리를 여권통문은 주창하였다. 그 중에서도 교육을 받을 권리가 으뜸이라고 주장했다.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고 직업을 가지고 독립적인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시대 선각적 부인들의 생각이었다. 오늘날 한국의 여성교육이 힘차게 발전해 온 것은 여권통문의 덕분이 아닌가 싶다.   

2017 서울여성대회에서 여권통문을 기리다

지난 100여 년간 묻혀 있었던 여성운동의 위대한 유산인 여권통문을 기리는 행사가 최근 역사·여성·미래 등 여성계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은 반가운 일이다.

올해는 여권통문의 날을 맞아 서울시여성단체연합회에서도 서울시와 함께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성의 풀뿌리 정치참여를 주제로 여권통문을 오늘에 되살리는 행사, 2017 서울여성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에서 정부의 각종 통계자료를 분석하여 ‘그래픽으로 본 서울여성의 삶 1898~2017’을 조명했는데 현재 서울 여성의 지위는 100점 만점에 정치 부문 18.7점, 직업 부문 68.8점, 교육 부문 94.4점으로 나타났다. 여권통문이 주창한 여성의 3대 권리 중 교육 부문이 가장 높고 정치 부문이 가장 취약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같은 상황은 비단 서울에만 국한되지 않고 우리나라 전체적으로도 비슷한 상황이다. 

먼저 직업 부문을 살펴보면 서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8.8%로 전국 평균 51.8%보다 높다. 교육 부문을 보더라도 여성의 평균교육연수에 있어서 전국 평균은 10.9년이나 서울의 경우 이보다 높은 12.1년이다. 다만, 여성의 고등교육기관 진학률은 전국 평균 74.6%에 비해 서울은 60.5%로 낮게 나타난다.  

가장 낙후된 정치 부문 여성의 지위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이 부문은 서울이 전국에서 가장 앞서고 있다. 

전국적으로 광역의회에 진출한 여성비율을 보면 14.3%(총의원수 789명 중 여성 113명)이나 서울의 경우 이보다 높은 19.8%(총 106명 중 21명)이다. 기초의회에 진출한 여성비율을 봐도 전국 평균은 25.3%(총의원수 2,898명 중 여성 732명)이나 서울은 33.2%(총 419명 중 139명)이다. 기초의회에 비해 광역의회에서 여성의 진출이 더 낮게 나타난다. 참고로 국회에 진출한 여성의원 비율은 17.0%(총 300명 중 여성 51명)이다.

공무원 중 5급 이상 여성비율을 보면 전국 평균 11.6%에 비해 서울은 20.3%로 2배 정도 앞선다. 각종 위원회의 여성 참여비율을 봐도 서울은 39.4%로 전국 평균(30.1%)보다 높다. 민간부문의 관리직 근로자 여성비율도 서울 18.2%로 전국 평균(10.5%)보다 높다.

여기서 지역적으로 좀 더 들어다 보자. 정치 부문에 있어서 서울시 25개 자치구 여성의 참여수준을 지수화해 개발한 ‘2016년 성평등 정치지도’를 보면 상위권은 서초구, 중구, 은평구 순으로 여성의 대표성이 높아 남녀 간에 편차가 적고, 하위권에는 동대문구, 금천구, 강동구, 종로구, 강남구, 용산구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 하위권 그룹은 여성의 대표성이 낮아 남녀 간 편차가 큰 것으로 나타난다. 이 중에서도 금천구와 동대문구는 2010년 이래 최하위권 지역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이번 서울여성대회에서는 여성의 대표성 확보를 위하여 임계질량 30%를 넘어 이제는 남녀동수 50:50 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세워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는 여성이 남성의 권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빼앗긴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내년 지방선거는 남녀동수 선거의 물꼬를 터야 하고 지금 국회에서 한창 논의 중인 헌법 개정안에도 남녀동수의 원칙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녀동수 정치의 원칙은 21세기에 들어와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서 비롯되어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도 지속가능한 개발목표의 하나로 양성평등, 50:50 남녀동수 전략을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1898년 여성도 정치에 참여하여 세상을 바꾸고 싶다던 북촌 여성들의 간절한 소망은 2017년 서울의 한복판에서 남녀동수 정치라는 새로운 전략으로 전환되었다. 학술적으로나 현실 정치에 있어서 남녀동수야말로 대의 민주주의에 가장 부합되는 전략이다.

여권통문의 날을 한국여성의 날로 기려야

1898년 여권통문은 2017년 서울 여성 권리 선언문으로 재탄생하였다. 내년 여권통문 120주년을 계기로 매년 9월 1일을 한국여성의 날로 기념하면 좋겠다. 서울의 북촌 한옥마을에 여권통문 표지석이라도 세우면 더 좋겠다. 

유엔도 세계 각국이 자국의 역사와 전통과 관습에 비추어 1년 중 하루를 정해 여성의 권리와 세계평화를 위한 날로 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한국적 의미에서 그것은 3·8이 아니라 9·1이어야 한다. 양성평등기본법상 양성평등주간이 시작되는 날은 이 법이 최초 시행된 7월 1일로 하고 있지만 여권통문의 날 9월1일을 기점으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여성발전기본법(현 양성평등기본법)이 제정된 1995년 당시만 해도 민·관, 정부와 국회 어느 누구도 여권통문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더 늦기 전에 여권통문을 살려내자. 

황인자 한국외대 초빙교수/젠더국정연구원 대표  eqhwang5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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