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경찰과 시위대간 무력 충돌로 몸살을 앓던 광화문 앞 도로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여성소비자신문 김영 기자] 지난 12일 광화문 일대에서 진행된 제3차 민중총궐기 대회는 2000년대 이후 가장 많은 인파가 모인 집회로 역사에 기록될 예정이다. 경찰 추산 집회 참가인원은 오후 5시 기준 22만명에서 집계가 멈췄으나, 주최측 집계로는 100만명이 넘는 인파가 이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사상 최대 인파가 모인 이날 광화문 집회에서는 우려됐던 충돌 대신 평화시위가 이어졌다.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축제의 장’이 열린 것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그토록 염원하던 국민대통합의 ‘장’이기도 했다.

촛불을 든 집회 참가자들에게서는 남녀노소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과거 우리나라 집회는 과격한 양상을 자주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군부독재에 항거한 1970~80년대 민주화운동 자체가 정부차원에서 절대 용인할 수 없는 반(反)정부시위였다보니 이를 진압하는 과정 자체가 과격 그 자체였고, 이에 대항한 젊은이들 역시 ‘옳음’을 외치면서도 다소 폭력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경향은 문민정부 출범 후로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대규모 시위현장에서는 늘상 집회참가 인원과 경찰간 무력충돌이 발생했고, 그에 따른 희생자가 이어왔다. 현 정부 최대 실정 중 하나로 평가받는 고 백남기 농부 사망사고 역시 시위대와 경찰간 격한 대치 과정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그러나 지난 11월 12일 제3차 민중총궐기는 전혀 달랐다. 주최측 추산 100만명이 넘는 인파가 광장을 찾았고 이전까지 보수세력으로부터 ‘폭력시위 주도세력’이라 비난 받아온 여러 노동단체과 사회단체들이 함께했음에도 사상 그 유례조차 찾아보기 힘든 평화집회가 10시간이 넘게 지속됐다.

11.12 집회 현장에는 과격한 선동과 폭력 대신 풍자와 해학이 넘쳤다.

이날 오전부터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은 하나된 목소리로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이와 동시에 풍자와 해학을 통해 국정농단의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모습 또한 보여줬다. 집회장을 찾은 여러 문화예술인들은 춤과 음악으로 현 실태를 비난하고 국민들을 위로했다.

11.12 집회에서는 세대간 장벽 역시 사라졌다. 지난 18대 대선 이후 우리 사회는 부모님 세대와 자식 세대간 이념차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날만은 남녀노소 모두가 하나된 목소리로 ‘대통령 하야’를 외쳤다.

또한 집회에서는 외국인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민주노총이 초청해 한국을 찾아왔다는 이탈리아 노동조합 관계자부터 한국에서 학교와 직장을 다니는 평범한 외국인 근로자들까지 광장에 나온 것으로 이들이 외친 구호 또한 ‘하야’ 한가지였다.

사진 속 흰색 깃발을 든 청년들은 경찰 저지선 돌파를 외쳤으나 대다수 시민들은 그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11.12 집회가 마냥 평화로웠던 것만 절대 아니다. 이날 집회는 경복궁을 둘러싼 도심 전역에서 진행됐는데 너무 넓은 범위에서 집회가 열리다 보니 주최측의 충돌 지양 요청에도 불구 몇몇 청와대 진입로에서는 집회 참가자와 경찰간 격한 대치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순실 사태’ 이후 국가와 대통령에게 실망한 일부 참가자들이 그 분함을 표출하고자 경찰 저지선을 넘어 청와대로 가려했던 것인데, 이 또한 함께 집회에 참가한 다른 시민들에 의해 저지됐다. “경찰 저지선을 넘어가지 말라” 외치며 시민 스스로 과격 시위를 막는 자정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경찰 역시 우리와 같은 시민들이라 외쳤고, 경찰 역시 시민들을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바라봤다.

경찰 또한 이전과는 상당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법원에서 시위대의 율곡로와 사직로 진입 허용 결정 이후 2선 후퇴한 경찰은 과거처럼 시위 진압을 위해 현장을 찾았다기 보다는 만일의 사태을 대비하기 위한 안전요원으로서 현장에 온 듯한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좌우로 나눠져 상대를 비방하기 바쁘게만 보이던 국민들도 시위대와 맞서기만 할 줄 아는 것처럼 보였던 경찰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달라진 모습을 보인 것이다. 또한 집회에서 확인된 시민의식은 우리 사회가 합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소통에 기반한 대화가 이뤄진다면 여러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또한 낳게 해줬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학생들을 거리로 불러 모았고 이들로부터 시작될 새시대를 기대케 했다.

광화문에 등장한 단두대는 과거부터 이어져 온 우리 사회 부조리와 미래세대와의 청산을 연상케 했다.

광화문을 찾은 시민들의 얼굴 속에서는 깊은 우려는 물론 변화에 대한 희망 섞인 웃음도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

메모지 적힌 문구 하나하나에는 사회 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광화문역 출입구를 가득매운 시민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하나된 목소리로 '대통령 하야'를 외쳤다.

대통령 퇴진 구호 속에는 남녀 차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통령 퇴진 구호 속에는 남녀 차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거리 행진 당시 시민들은 격앙된 목소리로 '하야'를 외치면서도 행동 자체는 상당히 차분했다.

노동조합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이탈리아 노동조합 임원은 한국어로 "박근혜는 하야하라"라고 외쳤다.

경북궁을 향해 걷는 시민들의 발걸음에서는 새시대에 대한 기대 또한 담겨있었다.

김영 기자  young@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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