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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에서의 만남과 이별 노래한 대중가요 ‘연안부두’충남출신 ‘시인작가’ 조운파 학창시절 인천연안부두 삶 그려···1979년 김트리오가 불러 대히트, 연안동 친수공원에 노래비
왕성상 언론인/가수 | 승인 2022.07.10 20:17

[여성소비자신문] 어쩌다 한번 오는 저 배는

무슨 사연 싣고 오길래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마음마다 설레게 하나

부두에 꿈을 싣고 떠나는 배야

갈매기 우는 마음 너는 알겠지

말해 다오 말해 다오 연안부두 떠나는 배야

 

바람이 불면 파도가 울고

배 떠나면 나도 운단다

안개 속에 가물가물 정든 사람 손을 흔드네

저무는 연안부두 외로운 불빛

홀로선 이 마음을 달래주는데

말해 다오 말해 다오 연안부두 떠나는 배야

 

조운파 작사, 안치행 작곡의 ‘연안부두’는 항구에서의 만남과 이별을 노래한 대중가요다. 1979년 음악그룹 김트리오가 불러 크게 히트했다. 김트리오는 황해도 해주출신 여가수 이해연(1924. 6. 13~2019. 12. 10)과 작곡가 베니 김(본명 김영순, 치과의사출신 트럼프연주자)의 자녀 김파, 김단, 김선 3남매(2남1녀)로 이뤄졌다.

‘연안부두’는 지역, 남녀노소, 계층을 가리지 않고 사랑받는다. 멜로디가 부드럽고 노랫말이 쉽다. 4분의4박자, 고고리듬으로 흥겹다. 1970~80년대 가요팬들 심금을 울렸다. 인천시민애창곡이자 국민가요로 꼽힌다.

그래서 여름철이면 자주 방송전파를 탄다. 1979년 김트리오 1집 음반 머리 곡으로 실려 발매 3개월 만에 5만장이 팔렸을 만큼 인기였다. 나훈아, 윤수일, 김수희, 김용임, 윙크 등 여러 가수들이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사연 싣고 오가는 배’

노랫말에 나오는 부두는 만남과 헤어짐이 엇갈리는 곳이다. 설렘과 망설임, 그리움과 아쉬움이 묻어 있는 삶의 현장이다. 헤어질 수밖에 없는 임과의 애달픈 사랑의 자리로 보편성을 갖는 장소이기도 하다.

‘연안부두’는 대중가요가사들 중 항구의 정취를 잘 담아낸 곡으로 꼽힌다. 1절은 배의 들고남을, 2절은 헤어지는 사람들 광경을 정감 있게 전해준다. 항구로 들어오는 배나 떠나는 배를 ‘사연을 갖고 가오는 배’로 나타냈다. 그 배를 타고 떠나는 사람이나 이제 도착하는 사람들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매개체로 그려내고 있다. 더욱이 떠나가는 배는 꿈을 두고 떠나는 이별의 운송수단으로 노래하고 있다.

특히 2절에선 헤어질 수밖에 없는 연인이나 가족들 이별의 정한을 그려냈다. 애달픈 헤어짐이기에 파도소리마저도 우는 것처럼 들리고 멀어져가는 배에서 안타깝게 손 흔드는 모습이 안개 속에 가물가물 사라지고 있다.

해는 지고 불빛이 하나 둘 켜지는 항구가 그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헤어짐을 받아들이면서도 그런 운명을 스스로도 거부하고 싶어 “말해 달라!”고 외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이렇게 ‘연안부두’는 항구에서 이뤄지는 만남의 기쁨과 이별의 아픔을 잘 담아냈다.

‘연안부두’는 어떤 배경과 동기로 만들어졌을까. 추억의 가요들은 요즘 신세대곡들과 달리 뭔가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충남출신인 조 씨는 학생시절 인천으로 전학했다.

그는 지금은 없어진 하인천부두로 자주 놀려갔다. 바닷가에 앉아 오가는 배를 보며 장래 꿈을 꾸기도 했다. 그 무렵 연안부두는 지금처럼 크고 발전하지 않았다. 고깃배나 섬을 오가는 조그만 배들이 드나들었다. 외국을 오가는 무역선들도 있었지만 드문드문 했다.

조운파는 부두에 앉아 놀거나 쉴 때 다양한 삶의 모습을 봤다. 이별하는 사람, 감격적으로 만나는 사람, 바다를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한쪽에선 생선을 파는 사람, 손님소매를 끌어당기는 작부(창녀) 등 민초들 모습을 보곤 했다. 그는 그때 보고 느꼈던 삶의 애환, 로맨스, 절망, 눈물, 기쁨 등을 새겨뒀다가 노래 만드는 일을 하면서 작사하게 됐다.

‘연안부두’ 스포츠응원가로도 유명

‘연안부두’는 스포츠응원가로도 유명하다. 노랫말이 스포츠와 관계없음에도 인천을 배경으로 만들어져 경기 때 자주 불린다.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SK 와이번스 등 인천을 연고로 한 프로야구팀은 물론 인천고, 제물포고, 인하대 등 인천의 학생스포츠팀들까지 응원가로 애창했다.

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프로배구 V-리그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의 응원가로도 불리면서 인천연고의 스포츠팀 대표응원가로 자리 잡았다.

특히 야구경기 단골곡이다.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의 인천 문학구장 홈경기 때 8회 초가 끝나면(원정경기 땐 7회 말이 끝난 뒤나 8회 말 종료 후) 경기장스피커를 통해 이 노래 1, 2절이 흘러나온다. 문학야구장 3루 스카이박스 아래 가로전광판에 이 노래 가사가 나와 1루 쪽 관중들이 따라 부를 수 있도록 돕는다.

SK 와이번스 팬들에겐 환희의 송가와도 같은 곡이 ‘연안부두’다. 2009년 9월 26일 문학야구장에서 이 노래 작사가 조운파가 ‘연안부두’ 노래음반 발매 30주년을 기념,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 시작 전에 시구를 하고 경기가 끝난 뒤 ‘연안부두’ 노래를 테마로 한 불꽃놀이이벤트도 펼쳤다.

노래가 유명해지자 1999년 9월 30일 인천시 중구 연안동의 연안부두 친수공원 해양광장에 ‘연안부두’ 노래비가 세워졌다. 대우건설이 1300만원을 들여 가로 2.3m, 세로 1.2m 크기로 만들어 그해 10월 1일 ‘구민의 날’행사 때 제막식을 가졌다.

노래 속의 연안부두는 인천시 중구 연안동에 있는 인천항 부두를 말한다. 관광특구인 이곳엔 국내․외여객선터미널이 있다. 백령도, 대청도, 연평도, 덕적도 등 서해안 섬들을 오가는 정기여객선과 제주도행 초대형여객선이 닻을 올리고 내리는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 중국 등 국제선여객선을 탈 수 있는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이 있다.

연안부두엔 7층 규모의 해양광장전망대와 카페, 유람선선착장, 4D입체영화관, 해수탕, 돌고래분수, 동물원 등 재미와 호기심 가득한 곳들이 많다. 도로변엔 ‘바다쉼터’, 연안어시장, 회센터들도 있다.

조운파, 문학도 꿈꾸며 중학시절부터 유학

작곡․작사가 조운파는 1943년 10월 15일 부여군 은산면에서 7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다. 문학도를 꿈꾸며 중학교시절부터 수도권에서 유학생활을 한 그는 ‘노래시인’으로 통한다. 시인이었던 그는 가수 김상희가 부른 ‘나 외롭지 않네’를 통해 가요계에 데뷔했다.

오아시스레코드 문예부장 때인 1976년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하수영)가 히트하자 가요작가 길을 본격 걷기 시작, 많은 가수들이 스타가 되는데 힘썼다. 무명가수라도 가요계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곡을 주는 음악인이다.

‘칠갑산’(주병선), ‘날개’(허영란), ‘옥경이’(태진아), ‘연안부두’,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정하나 준 것이’(현당) 등 800여 명품가요를 작곡하고 가사를 썼다. 제2회 MBC 가요대상 작사상, 한국노랫말대상 전통가요 노랫말상을 받았다.

유명 CM송, 동요, 가곡, 성가도 작곡했다. 한 방송국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만나면 좋은 친구~’, ‘내 동생 곱슬머리 개구쟁이 내 동생~’으로 나가는 동요 ‘내 동생’도 그의 작품이다. 마산대를 졸업한 그는 조운파기획실 대표다. 기독교인으로 교회 집사다.

그는 2016년 9월 26일 서울 반포동 쉐라톤 서울팔래스강남호텔에서 열린 ‘조운파 가요작가인생 40년 결산공연 제작발표회’ 때 의미 있는 말을 했다. “대중음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커 자신의 가치관과 철학을 녹여내는 과정에서 두려움과 고심이 컸다. 노래가 대중이나 사회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책임감을 갖고 임해야 한다.”

군포문화재단 이사, 고문을 지낸 그는 2016년 10월 1일 오후 7시 군포문화예술회관 수리홀에서 자신의 노래를 부른 가수들과 ‘조운파 사랑 톡 콘서트’를 가졌다. CBS, 군포문화재단 주최로 홀로어르신, 소년소녀가장, 기초생활수급자, 새터민 등 그늘진 이웃들이 함께 했다. 참석자들은 피날레로 ‘연안부두’를 합창했다.

KBS 1TV ‘가요무대’(1595회)는 2019년 1월 21일 오후 10시 ‘조운파 가요인생’을 재조명하는 특집방송으로 꾸며졌다. 살아있는 거장의 가요음악인을 특집으로 꾸민 건 그가 처음이다. 트로트바람이 부는 가운데도 작품활동을 꾸준히 하는 60대 이상 작사․작곡가가 거의 없어 조운파의 희소가치는 크다. 그는 2013년 6월 ‘충남을 빛낸 문화예술인’, 2014년 9월 ‘부여 100년을 빛낸 인물’로 선정됐다.

안치행, 작곡가이자 연주가·가수

노래를 작곡한 안치행은 1942년 1월 30일 전남 진도군 가사도에서 태어난 작곡가이자 편곡가다. 안타프로덕션을 세운 사업가이기도 하다. 1967∼71년 실버코인스(Silver Coins)란 이름으로 미8군 무대 ‘패키지 쇼’에서, 1972∼75년엔 영사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

‘오동잎’(최헌), ‘사랑만은 않겠어요’(윤수일), ‘구름나그네’(서유석), ‘아! 바람이여’(박남정), ‘울면서 후회하네’(주현미) 등 600여곡을 작곡했고 ‘돌아와요 부산항에’(조용필) 등을 편곡했다. 올 초엔 성남시 대장동 의혹 관련 망자를 위한 추모곡 ‘대장동 블루스’를 작사·작곡하고 노래까지 불렀다. 팔순나이에 가수로 데뷔한 것이다. 불교신자로 사찰소재 노래도 다수 작곡했다.

왕성상 언론인/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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