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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래 그 사연] 가을철 낭만·상념에 젖게 만드는 대중가요 ‘가을 편지’대상도 없는 누군가 그리워지는 노래…1971년 최양숙 발표 패티김 이동원 리메이크
왕성상 언론인/가수 | 승인 2020.11.16 14:28

[여성소비자신문] 가을 편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헤매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매인 다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아름다워요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쌀쌀한 바람이 낭만과 상념에 젖게 한다. 이맘때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대중가요 ‘가을 편지’다. 

프랑스 연극·영화배우이자 대중가수인 이브 몽땅의 노래 ‘고엽(Autumn leaves)’과 함께 가을동행곡이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로 나가는 ‘가을 편지’는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시적 표현의 노랫말, 잔잔히 흐르는 멜로디가 좋다. 고은 시인 작품 중 노래로 만들어진 게 많지만 이 곡만큼 가을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건 없다. 선율을 모른 채 그냥 읽어도 그리움의 리듬이 가슴을 파고든다.

패티김, 이동원 등 리메이크 취입

가수 최양숙이 1971년 발표, 히트한 ‘가을 편지’는 작품성을 인정받아 패티김, 이동원 등 다른 가수들도 리메이크해 취입했다. 해마다 가을이면 TV 가요프로그램, 라디오방송, 카페 등지에서 들을 수 있다.

최양숙은 언론인터뷰를 통해 ‘가을 편지’ 취입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김민기씨의 기타 연주가 잔잔하면서도 너무 아름다워 분위기에 취해 한 번 만에 노래녹음을 마쳤다. 가사는 오빠인 최경식 기독교방송 PD(경음악평론가 겸 DJ)가 1968년 평소 친분 있었던 고은 시인을 서울 동숭동 술집에서 만나 여동생 최양숙을 위한 취입곡 노랫말을 부탁, 그 자리에서 받은 시 구절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음반은 판매금지 됐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선 오랫동안 불렸다.

최양숙의 창법이 클래식성악에 바탕을 둬 ‘가을 편지’를 가곡으로 아는 이들이 적잖다. 최양숙은 2012년 11월 9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사단법인 한국음악발전소 주최로 생애 첫 단독콘서트 겸 후배들이 마련한 헌정공연(‘최양숙을 아시나요’)을 통해 ‘가을 편지’를 다시 불러 화제가 됐다.

“대중가요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은 최양숙은 서울대에서 성악을 전공, 프랑스로 가 샹송공부를 하고 온 우리나라 최초 샹송전문가수다. 아름다운 외모, 성악에 바탕을 둔 클래식창법이 눈길을 끈다. 떨리는 듯 가녀린 음색의 창법이 이채롭다.

에피소드가 많은 ‘가을 편지’ 노랫말처럼 친필로 쓴 편지는 정이 흐르고 때론 사람을 감동시킨다. 슬픔, 고마움, 기쁨도 담겨있다. 그럼에도 요즘 사람들은 손 편지를 잘 주고받지 않는다. 이메일(전자우편), 카톡, 문자메시지 등으로 대신해 아쉽다. 쓸데없는 정보, 악성댓글이 넘쳐나는 이 시대 가슴 속의 온기와 진솔한 마음이 담긴 손 편지가 그립다.

‘서울대 음대출신 대중가수 1호’

노래주인공 최양숙은 1937년 함경남도 원산서 태어났다. 그는 원산 명석보통학교를 다니다 6․25전쟁 1․4후퇴 때 피난지 부산에서 임시로 문을 연 무학여중에 입학, 환도(還都) 후 지금의 서울예고에 들어갔다.

노래실력이 뛰어나 서울대 음대 주최 전국콩쿠르 때 ‘시인’ 노래를 불러 대상을 받아 1960년 서울대 성악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대학 2학년 때 중앙방송국(현 KBS) 전속합창단 활동 중 음반을 냈다.

라디오드라마 ‘어느 하늘아래서’ 주제가 ‘눈이 내리는데’를 첫 녹음한 뒤 영랑의 시에 손석우(작곡자 겸 중앙방송국 가요담당지휘자)가 곡을 붙인 ‘내 옛날 온 꿈이’를 음반으로 선보였다.

‘서울대 음대출신 대중가수 1호’인 최양숙은 대학졸업 후 방송국합창단 활동을 접고 서울예고 음악선생이 됐다. 그러나 예그린합창단에 들어가기 위해 1년이 안 돼 그만뒀다. 합창단 해체와 함께 가요계생활을 한 그는 라디오프로그램 등에서 샹송을 부르다 박춘석 작곡가에게 발탁, 1963년 가요계에 공식 데뷔했다.

그해 자신의 이름으로 낸 첫 발표곡이 ‘황혼의 엘레지’(박춘석 작사․작곡). 이어 ‘모래 위의 발자국’, ‘초연’, ‘호반에서 만난 사람’, ‘꽃 피우는 아이’, ‘세노야’ 등을 불러 인기가수대열에 올랐다. 애절한 탱고리듬의 ‘황혼의 엘레지’가 1966년 크게 히트하며 초대 MBC 10대 가수로 뽑히기도 했다. 그녀의 목소리로 잘 알려진 ‘태양은 가득히’, ‘파리의 다리 밑’, ‘사랑의 찬가’, ‘물망초’, ‘죽도록 사랑해서’, ‘빠담 빠담’, ‘장미빛 인생’ 등 샹송번안곡들도 꾸준히 사랑받았다.

그가 가수가 되기까지엔 재미난 일화가 있다. 대학재학 중 합창단원이었던 최양숙이 솔리스트로서의 자질을 인정받기 시작한 건 지휘자 이남수의 인솔로 해병대 의장대원들과 한국예술사절단 일원으로 외국공연을 떠난 해군함정 안에서였다.

여흥 시간 게임에 져 벌칙을 받아야했던 그녀가 부른 노래는 샹송 ‘고엽’. 이어 부른 앙코르곡은 ‘자니 기타(Johnny Guitar)’였다. 반주 없이 부른 이 노래로 함께 갔던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방송국관계자들이 눈여겨봤다.

대학 3학년 때 합창단원인 그에게 솔로가수로 마이크 앞에 서는 기회가 왔다. 무대에 서기위해 기다리고 있을 때 음악부장이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를 녹음 중인데 주제가를 불러보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그는 처음엔 거절했으나 “연습 삼아 불러보자”는 말에 악보를 받아 마이크 앞에 선 게 가수의 길로 들어선 시작이 됐다.

그때 부른 노래는 ‘내 옛날 온 꿈이’(김영랑 작시, 손석우 작곡). 최양숙이 처음 음반으로 취입한 이 노래는 주미옥(朱美玉)이란 이름으로 발표됐다. 대학생신분으로 이름을 밝힐 수 없어서였다.

80대인 그녀는 평범하고 조용히 살고 싶어 이름을 바꿨다. 1980~90년대 TV 성인가요프로그램과 카페무대에 서다 2000년대 들어 5년여 입원했을 정도로 건강이 나빠 은둔생활을 했다. 그러나 노래만큼은 영원히 떠날 수 없어 2014년 가을 남이섬 노래박물관에서 열린 ‘박성서의 토크콘서트-최양숙 가을음악회’ 무대에 섰다.

왕성상 언론인/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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