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고승주기자] SH공사는 서울시 부채의 60~70%를 차지하는 거대한 빚 덩어리로 불어나면서 박원순 시정의 지상과제로 떠올랐다. 박 시장은 서울시 재정개혁을 위해 SH공사의 부채탕감을 전격적으로 지시했고 지난해 5월 이종수 사장이 SH공사에 부임하면서 부채탕감을 위한 행보는 더욱 발 빠르게 진행됐다. 하지만 부채탕감의 노력도 무색하게 SH공사는 지난해 사상 최대의 순손실, 체납금을 기록했다. SH공사는 12조를 넘는 채무감축을 위해 허리끈을 바싹 졸라맸지만 부동산 불황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창사 23년만의 손실…특혜 부실사업으로 부채 17조
대기업 마냥 대규모 PF사업 뛰어들다 참패
부채청산의 걸림돌…택지매각·미분양

SH공사가 발표한‘2012 회계연도 결산’에 따르면 SH공사는 지난해 5354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1989년 공사 창립 이후 23년만의 손실로 은평 알파로스 매출채권에 대한 대손충당금 설정 3200억원, 용산 드림허브 관련 유가증권 손상 평가 490억원, 재고자산 평가 손실충당금 1011억원이 각각의 내역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SH공사의‘숨은 뇌관’으로 불리는 분양대금 체납 미수금도 사상 최대치로 솟구쳤다. 지난해 SH공사가 분양대금 등으로 받아야 할 돈은 1조9152억3600만원이었으나 SH공사는 이 중 5818억8000만원의 돈을 회수하지 못했다.

SH공사의 미수금은 2010년 이후 계속 증가세를 보여 2010년 4047억9800만원, 2011년 5212억3700만원으로 불어나고 있다. 금액뿐만 아니라 체납률도 점점 늘어나 2010년 14%, 2011년 19%를 기록하던 체납률은 급기야 지난해엔 30.4%로 훌쩍 뛰어 올랐다. 이러한 경영실적은 SH공사 내부에 쌓인 문제가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받을 돈도 못 받고
적자사업 행진

SH공사의 손실이 부쩍 늘어난 것은 전 오세훈 시정에서 무리하게 추진된 대규모 PF사업들 때문이다. SH공사의 부채는 17조원으로 은평뉴타운(3조5543억), 마곡지구(4조1158억), 동남권 유통단지(1조6435억) 등의 사업과 이
자비용(2조8058억) 등으로 구성된다. 이중 채무에 묶여 있는 금액만 12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순손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은평 알파로스는 은평 뉴타운 상업지구 내 초대형 복합시설 완공을 목표로 시작한 공모형 PF사업으로 8개 회사가 자본금 2400억원을 출자해 구성됐다. 이중 건설공제조합이 600억원(25%), SH공사238억원(19.9%)을 출자했다.

알파로스는 토지 분양대금을 3차까지 납부했으나 2011년 12월부터 3번을 내리 연체했다. 체납원금 규모만 1500억원에 달한다. 뿐만 아니라 민간업자들로부터 사업수지가 안 나온다는 이유로 공사 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SH공사가 과거 오세훈 시정의 나팔수 역할을 하면서 발생한 손실도 적지 않다. SH공사는 코레일과 함께 공공투자자란 명목으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최근 사업 무산으로 위기를 맞았다. 코레일은 2조4300억원의 보증을 서고, SH공사는 서울시를 대신해 사업에 뛰어들면서 각종 인허가 문제의 키메이커로 주목받았다. SH공사의 지분율은 4.9%에 불과하지만 사업이 무산되면서 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총 사업비 1390억원이 투입된 세빛둥둥섬 사업은 감사원뿐만 아니라 서울시마저도 총체적 부실로 지목되면서 법적절차 무시, 불평등 계약, 부실설계 등의 문제로 유령 사업장으로 전락했다.

박원순 시정은 전 오세훈 시정에서 (주)플로섬 측과 불평등 계약을 맺었다는 것을 확인한 후 무상임대 기간을 줄이고 주차장 무상제공 조항을 재검토하는 등 독소ㆍ불공정 조항 수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자인 플로섬 측이 사업비 보전을 할 수 있는 업체 선정에 주력하면서 사업은 난항에 부딪히고 있다. 대한변호사 협회는 오세훈 전 시장, 최영 전 SH공사 사장 및 이사진 12명은 배임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가든파이브(동남권 유통단지) 입점 특혜 문제도 최근 쟁점으로 부상했다. 2010년 SH공사는 정식 공모절차 없이 이랜드리테일(NC백화점)과 입점계약을 맺기로 결정했다. SH공사는 10년 장기계약을 맺으면서 이랜드 측이 요구하는 대로 ‘필요비ㆍ유익비’를 줘야 하는 계약을 맺는 등 각종 특혜를 얹어주었다. 이 건을 조사하는 서울시의회 내 가든파이브 특혜의혹 진상규명 특별소위원회는“SH공사가 이랜드와 사실상 노예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시의 눈엣가시? 억울

SH공사의 부채가 서울시 부채의 67%를 차지하자 이 문제는 박원순 시정의 가장 큰 과제로 부상했다. SH공사는 2012년 5월 이종수 신임사장을 맞아들이고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각종 청렴제도를 도입했다. SH공사는 2011년 청렴도 ‘미흡’평가를 받은 만큼 청렴윤리 경영으로 앞으로 발생하는 부실을 막겠다는 취지다.

지난해 국감에서 부채가 줄어들지 않는다고 지적을 받자 SH공사는 734명 중 12명을 감축하고, 결원이 생기면 충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연말까지 모두 30명가량 줄이는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았다. 그리고 매년 지속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고 전했다.

2012년 경영 성적표가 창사 이래 첫 손실이란 불명예로 기록되자 이종수 SH사장은 1900억원 상당의 개포동 사옥을 매각하고 미분양으로 골치를 썩고 있는 가든파이브로의 사옥 이전을 추진하는 등 허리띠를 바싹 졸라매고 있다. 하지만 채무 감축의 열쇠인 마곡 도시개발지구, 문정 도시개발지구 등의 용지 매각과 은평뉴타운 상업지구·가든파이브 등의 장기 미분양 문제가 부동산 불황으로 답보 상태에 놓이자 이러한 허리띠 졸라매기가 SH공사에 부담만 주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의회에선 SH공사 관련 특혜나 부실사업을 지적하고 나섰고, 올해 2월 박원순 시장은 SH공사 간부급 직원들에게 사표를 쓸 생각으로 부채감축에 매진하라고 지시하는 등 강하게 압박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종수 SH공사 사장이 곧바로 사표를 내는 등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비록 서울시의 즉각적인 반려로 무산되기는 했지만 SH공사 내부서는 과거 서울시에서 시키는 대로 사업을 추진했을 뿐인데 이제 와서‘서울시 채무의 원흉’으로 지목됐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시도 이러한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의 부채감축을 위해서 SH공사를 압박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한 SH공사 관계자는“불만이 있기도 하지만 부채감축에 대해선 SH공사와 서울시가 서로 공감하고 있는 만큼 해결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SH공사는 올해 7275억원등 2014년까지 총 6조4982억원의 채무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고승주 기자  sj.go@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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