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고승주기자] 하이트진로가 2013년을 통합영업의 원년으로 삼았다. 하이트가 진로를 인수한 것이 2005년이고 통합법인을 발표한 것이 2011년 9월 1일인 점을 감안한다면 지나치게 늦은 통합 선언이다. 하이트진로는 2011년에도 2012년에도 통합시너지를 장담한 바 있으나 통합문제는 올해까지 미뤄지게 된 셈이다. 이에 대해 일부 직원들은‘팔은 안으로 굽는’박문덕 회장의 편파인사를 지목하고 있다.

영업통합은 인수시점인 2005년부터 하이트진로의 숙원사업이었다. 다만 공정위의 5년 간 영업분리조건 때문에 2006년부터 2010년까지 통합이 금지돼 있었다. 하이트진로의 영업직원들은 같은 거래선을 두고도 소주 따로 맥주 따로 영업을 해야 했다. 때문에 영업통합은 비용절감 및 시너지 효과의 원천으로 기대를 받았고 2009년 윤종웅 진로사장은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영업조직이 통합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통합법인출범 1년이 지났지만 시너지는 좀처럼 발휘되지 않았다. 통합법인을 단 지 세 달만인 2011년 12월, 하이트진로 맥주부문(49.5%)은 경쟁사오비맥주(50.5%)에 점유율을 역전 당했다. 양사의 격차는 1%였지만 업계의 충격은 대단했다. 2007년 하이트진로의 맥주부문 점유율은 59.15%로 매년 2%씩 떨어지다가 2011년 12월 급기야 50%선마저 깨지며 오비맥주에게 선두를 넘겨줬다. 언론은 오비맥주의 역전승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소주 부문은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었지만 안심할 수준은 아니었다. 2008년 11.1%의 점유율을 보유하던 롯데‘처음처럼’은 2010년 14%, 2011년 15.6%까지 성장했다. 2012년을 맞이한 하이트진로는 다시 한번 영업통합을 통한 시너지효과를 역전의 카드로 제시했다.

그간 통합 작업을 하면서 다소 침체됐던 것은 사실이지만 2012년 상반기 부산경남지역을 중심으로 영업조직 통합을 마무리 짓고 2012년 하반기부터 시너지를 내겠다고 공언했다.

5개월 만에 퇴임한 사장

통합시너지는 단순한 비용절감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2012년 3월 롯데가 맥주제조 면허를 획득하면서 대형유통 롯데의 맥주시장 진출이 가시화됐다. 이제 영업력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가 됐다.

2012년 5월 하이트진로는 영업강화를 위해 하이트진로의 진용을 재정비했다. 하이트진로홀딩스 사장에 김지현 하이스코트 사장을, 이남수 관리총괄을 국내영업총괄로, 이성수 전무를 영업담당 부사장으로 각각 발탁했다. 또 그룹 내 해외통이었던 양인집 진로재팬 사장에겐 해외사업 총괄 사장을 겸임시켰다.

이남수 국내영업총괄 사장은서울대 법대 졸업 및 행정고시 19회 출신으로 1989년 진로에 부장입사부터 줄곧 상승 가도를 달린 엘리트이다. 이성수 영업담당 부사장은 1973년 19세의 나이로 조선맥주(하이트맥주의 전신)에 입사해 장장 40년간 영업 외길인생을 살아 온 인물이었다. 양인집 사장은 줄곧 해외시장에서 하이트진로의 입지를 다진 수출역군으로 지목돼 왔다.

그런데 국내영업 총괄을 맡은 이남수 하이트진로 사장(당시 60세)이 부임한 지 불과 5개월만인 2012년 10월 돌연 퇴임의 뜻을 밝혔다. 하이트진로는“이남수 사장이 정년을 맞이하여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자진해 물러난다”며 퇴임의 도의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부임 5개월 만에 정년을 이유로 퇴임한 인물도 없으려니와 정년을 이유로 퇴직할만한 인사에게 중책에 맡기는 회사도 어색했다. 특히 후임이 정해질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고 급하게 회사에 나온 것은 단순히‘정년’만이 이유가 아닐 것이란 의혹을 낳았다.

업계에선 하이트진로의 문책성 인사를 꼬집었다. 이남 수전 사장은 오비맥주에게서 맥주시장 주도권을 다시 빼앗아 오지 못했을 뿐더러 소주시장에서도 좀처럼 실적 만회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가정해도
겨우 5개월 만에 물러나게 한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맥주부문은 그렇다고 쳐도 소주 부문은 모델로 싸이를 기용하면서 지난해 9월 점유율 50%의 벽을 깨는 등 나름의 실적을 올렸기 때문이다.

하이트진로 내부에선 또 다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박문덕 회장 등 하이트 출신 경영진이 피인수자인 진로 출신 인사들을 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진로 출신 영업사원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있으며 이것이 영업망 통합에도 악재를 미치게 한다. 한 하이트진로 내부 인사의 증언에 따르면 하이트진로 전체 임원 중 진로 출신은 20%에 불과하다.

등용되지 못하는 진로 출신

그렇다면 박 회장은 왜 팔은 안으로 굽는 인사정책을 펴고 있을까. 학계에선 M&A 피인수 집단의 저항력을 한 세대로 보고 있다. 인수작업을 아무리 잘 진행해도 피인수 당시 회사를 다니던 인물들이 모두 나갈 때까지 저항력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협업 등을 통해 저항력 을 낮출 수는 있어도 심리적 저항, 그 자체는 지울 수 없다고 학계는 말하고 있다.

일각에선 박 회장이 박 회장의 장남인 박태영 씨의 3세 경영을 돕기 위해 물밑작업을 펼치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태영 씨는 2012년 4월 하이트진로 경영총괄실장(상무)으로 부임했다. 그 전에는 엔플랫폼이란 경영컨설팅 업체에서 근무했는데 이 회사는 2005년 하이트의 진로 인수작업을 추진했던 회사다.

태영 씨는 이남수 전 회장이 물러난 뒤 2개월 후인 2012년 12월 하이트진로 상무에서 전 무로 승진했으며 하이트진로는 태영 씨에게 기존 경영관리실을 본부로 격상시킨 경영전략본부 본부장직을 맡겼다. 한 하이트진로 내부인사는“경영진이 정한 것을 뒤집을 수 없기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하이트진로 측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모두 관련이 없는 내용이며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이남수 전 사장은 개인사정으로, 하이트진로 통합문제는 단계적으로 잘 진행이 되고 있으며 진로 출신인사의 수가 적은 것은 2005년 진로법정관리를 거치며 대량 해임돼서 그런 것이지 차별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매년 통합이 늦춰지는 이유에 대해선 답변이 불명확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지난해 통합시너지를 장담한 것은 사실이지만 꼼꼼히 검토하면서 추진했다”며“올해 1월부터 전국적으로 본격적인 영업통합을 통해 올해 하반기부터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고 있다”고 전했다.

진로노동조합측은 하이트-진로 통합 갈등문제에 대해“회사 측에 확인해보라”, “할 말이 없다”, “통합갈등은 없다”등의 반응을 보였다.

고승주 기자  sj.go@wsobi.com

<저작권자 © 여성소비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