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선희에겐 N교수라는 친구가 있다.
둘은 N교수가 대학의 조교로 있을 때부터 알았는데 선희의 말에 의하면 N교수의 부인이 보기드문 ‘현모양처’라는 것이다.

현모양처(賢母良妻).
그말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여자를 말하는지 현 시대를 살고 있는 나로서는 잘 모르나 선희의 얘기를 듣고 보니 나 역시 고개가 끄덕여졌다.

오래전 선희는 대학 논문 때문에 N교수 (조교시절)를 찾아갔다. 친구라고는 하지만 나이도 연장자고 대학논문 따위는 이미 경험해본 사람이었기에 조언을 구하고자 만난 것이었다.

“점심 먹으러 가자”
“어디로?”
“나만 따라와”

N교수는 논문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곧장 캠퍼스 밖으로 향하였고, 선희는 밥 먹자라는 N교수의 말을 거절하기가 뭐해서 N교수의 뒤를 따라 쭐래쭐래 걸어갔다.

N교수가 조교로 있는 대학에서는 어느 정도 떨어진 주택가를 걸으면서, ‘이런데도 식당이 있나’ 생각하며 선희는 숨고르기를 해야 했다. 아주 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걷기에는 좀 먼거리의 한옥 앞에 당도했기 때문이었다.

“어? 여기가 어디야?”
“들어가 보면 알아”

선희는 씩씩하게 들어가는 N교수의 뒤를 따라 들어가면서 ‘하긴 요즘은 이런 가정집 같은 데서 음식을 파는 데도 있다던데 이 집이 그런 집인 모양이네’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서 오세요”
음식점인줄 알고 무작정 따라 들어간 한옥의 실내에서는 여주인으로 보이는 젊은 새댁이 어린 아들을 안고 두 사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 누구죠?“
‘내 와이프야 인사해“

알고 보니 N교수는 이미 손님과 점심 식사하러 가겠다고 부인한테 통보를 한 후였고, 부인은 잘 준비해 놓겠노라며 허락?을 한 상태였었다. 선희는 뜻밖의 대면에 무척 당황하였다. N교수가 결혼을 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상태였지만 이렇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남의 집을 방문하여 남자 친구의 부인까지 만나리라곤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었다.

“맛있게 드세요”
남편의 여자 손님이 왔는데도 부인은 불편한 기색 없이 식탁을 차리고는 두 살 박이 아들을 안고 밖으로 향하였다.

“왜 나가세요? 함께 드셔야 저도 편하게 식사를 할 텐 데요”
“아니에요 애기가 달려들어서 세사람 다 식사를 못해요. 신경쓰지 말고 드세요”
“그래도…”

선희는 더 이상 붙잡을 수가 없었다. 남편과 여자 손님을 놔두고 상냥하게 웃는 부인의 모습에서 어쩐지 범할 수 없는 기품마저 풍긴 탓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숭늉 드릴까요?”
식사가 다 끝날 무렵 나타나서는 따끈한 숭늉까지 갖다 주더니 곧 바로 주전자 물을 끓이며 “커피도 하고 가세요” 하는 것이었다. 선희는 너무 황송해서 대답도 못하고 그녀가 끓여주는 커피까지 마시고 그 자리를 일어섰다.

대부분의 여인네들은 남편의 여자 친구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교수의 부인이든 사업가의 부인이든 회사원의 부인이든 그것은 보이지 않는 질투심에서 비롯되는  좋지 않은 공통심리이다. 그래서 겉으로는 내색치 않으려 해도 자신도 모르게 남편의 여자 친구에게 평소에는 쓰지 않는 어투로 대꾸하게 된다.

집을 나설 때까지 선희를 대하는 N교수의 부인은 너무 친절했다. 속으론 어떠한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일단 남편의 여자 친구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몇 달 후.
선희는 N교수를 또 만났다.

“정말 부인 잘 얻었더라”
볼 일을 끝내고 점심을 잘 얻어먹은 그 날의 일을 떠올리며 부인 칭찬을 했더니 N교수는 고개를 한번 갸웃둥 하더니 “그런지도 몰라” 하는 것이었다.

“왜 또 좋은 일 있었어?”
“아니 얼마 전에…”
“뭔데, 빨리 말해봐 사람 궁금하게 하지 말고”
“실은...”

쑥스럽게 꺼내는 N교수의 이야기는 이러하였다.
사소한 언쟁으로 부부싸움을 하게 됐는데 부인이 양보를 하지 않자 N교수는 담배를 피우다 말고 자신도 모르게 재떨이를 집어 던졌다. 깜짝 놀란 부인은 얼른 아들을 등에 업고 밖으로 나갔는데 밤이 깊어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흥 친정에 갔겠지, 가서 내 험담 꽤나 늘어놓겠지’
대부분의 여자들이 부부싸움 끝에 집을 나서면 친정행(?)을 하는 것을 많이 듣고 보아온지라 N교수는 이를 갈며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하루, 이틀, 사흘…. 부인은 삼일이 지나도 들어올 기미가 없었다.

‘흠, 내가 찾아갈 때를 기다리는 모양인데 어림없지 돌아오기만 해봐라 이혼감이다.’
혼자 말로 방안을 서성대며 부인이 나타나면 어떻게 반격을 할 것인지 별의별 상상을 다 하였다. 그 때 전화벨이 울려왔다.

“따르르릉”
부인의 친정 댁에서 온 전화인줄 알고 거드름을 피우며 수화기를 들었다,
“아비다, 집에 상의할 일이 생겼으니 급히 좀 오너라”

독수공방한지 삼일 만에 걸려온 전화는 장인 댁에서 온 게 아니라 천안에 계신 N교수의 아버님한테서 온 것이었다.

“너 내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는데 무슨 일을 그 모양으로 해!”
“아버님 무슨 말씀이신지…”
N교수가 화급히 시골집에 들어서자마자 그의 아버님께서는 책망부터 하였다. N교수는 아버님의 의도를 몰라 쩔쩔매었다. 한참을 노려보던 아버님께서는 사랑채를 향하여 “이젠 들어오너라” 하셨다. 무슨 영문인지 눈만 동그랗게 뜨고 앉은 N교수는 방문을 열고 나타날 사람이 누군가 처다 보았다.

“여보 나예요”
뜻밖이었다. 친정에 있을 거라 믿었던 부인이 싱긋 웃으며 아들을 안고 들어서다니….
“가르치는 사람이 재떨이를 던지다니, 다시는 그러지 말아라!”

아버님께 호된 꾸지람을 들었지만 친정으로 달려가지 않고 시부모께 점수를 딴 부인이 밉지 않고 이쁘게 보이더라는 것이다.

“와 정말 부인 멋지다!”
N교수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선희는 함성을 질렀다.
“글세 친정으로 간 게 아니더라구”
“그만 자랑해!”

선희는 N교수와 헤어지면서 수더분하게 생긴 N교수의 부인을 떠올리면서 싱긋 미소를 지었다. 미인은 아니지만 앞으로 교수의 부인이 될 사람답게 처신을 잘하는 여자였다. 그 이전에도 선희가 N교수에게 도움을 청할 일이 생겨 집으로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도 그녀는 “좀 기다리세요” 하더니 대문 밖에 나가 있던 남편을 굳이 불러 들여서 바꾸어 주었다. 다른 여인네들 같았으면 “나중에 다시 거세요” 했을 일인데 말이다.

몇 년 후.
N교수는 정말 교수가 되었다.

선희는 지금 N교수와 만나지 않는다. 그가 미국으로 교환교수를 떠난 뒤 서로 연락처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 만나는 날이 주어진다면 N교수 보다 그를 교수로서 부끄럽지 않게 만드는 그의 부인을 더 만나고 싶어한다. 지혜로운 교수의 부인을….

그 날
                              -윤석인-

아지랑이 위로
나비가 춤을 출 때
떠나는 것도 좋으리

푸르른 수목들 사이로
하늘이 울어줄 때
떠나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

그 아름다운 풍경
눈 속에 가득 담고
꽃잎처럼 되돌아가는데
누가 그 걸음을 막을 수 있으랴

단풍 위로
햇살이 부서질 때
가는 것도 좋으리

흰 눈 위로
발자국 남기지 않고
떠나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

찬란했던 희노애락
가슴에 간직하고
바람처럼 떠나는데
누가 그 모습을 곱지 않다 말할 수 있으랴

 

 

윤석인  siyoon717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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