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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이름만 바뀐 채 진화하는 성범죄, 멈추기 위해서는
한고은 기자 | 승인 2020.04.07 16:16

[여성소비자신문 한고은 기자] 3월 한 달 간 가장 큰 사회적 이슈는 바로 1월부터 이어진 코로나19와 N번방 사건이었다. 텔레그램 등 익명성이 보장된 메신저를 이용해 미성년자 등 여성들을 상대로 성폭행을 일삼고 영상물을 금전거래한 인권유린 사건이다.

기존의 성폭력 가해자가 일면식이 있는 가까운 지인 등으로부터 이루어진 것과 달리 이 새로운 성범죄는 온라인 공간에서 익명의 상대로부터 여성의 신상과 정보를 인질로 폭력을 일삼는다.

이 N번방 사건은 IT강국의 어두운 그림자라는 측면에서부터 인성교육의 부재, 가부장적 문화, 뿌리 깊은 여성혐오 인식, 미비한 아동인권 등 다층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어 단기간에 해결될 수는 없는 문제로 보인다.

‘디지털 성범죄’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여성들에 대한 성범죄는 계속 증가하고,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거주 여성의 2명 중 1명(43%)이 디지털 성범죄에 직·간접적 피해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여성’은 43%(1581명)이었으며 직접 피해자는 14.4%(530명)로 나타났다.

또한 서울시의회 권수정 의원(정의당·비례)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올해까지 10년 동안 디지털 성범죄는 23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전체 성폭력 범죄 4건 중 1건이 디지털 성범죄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동안 디지털 기술이 성장하면서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들이 성범죄를 위한 플랫폼으로도 확장된 셈이다. 이는 ‘판’이 만들어지면 어디서나 성범죄가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N번방 사건을 거론하며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을 강구하도록 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도 N번방 가해자들에게 자수를 권고하면서 마지막에 잡히는 가해자에게 가장 중한 처벌이 내려진다는 경고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N번방 사건은 가해자를 엄벌하는 것 이상의 사회 전반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남성들의 ‘그래도 되니까 하는’ 공고한 가학 연대, 뿌리 깊은 여성혐오와 대상화를 어디서부터 뜯어고쳐야 하는지에 대해 접근을 하는 것조차 힘들다.

때문에 사회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성범죄 생존자이자 직간접적 피해자인 여성들의 주장과 지적, 문제제기를 먼저 겸허히 들어야 한다. ‘모든 남자가 그런 것은 아니’라는 무의미한 항변을 하기 전에 피해자인 여성들의 적나라한 피해실태를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입법부는 더 예민하게 법을 매만져야 하고, 사법부는 더 엄중하게 가해자를 벌해야 한다. 가정 내에서의 젠더감수성을 기반으로 한 자녀교육은 당연하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어린이와 노인, 동물에 대한 폭력과 연장선상에 있다. N번방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위기인식이 필요한 이유다. 여성이 피해당하지 않는 사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악마화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한고은 기자  h9@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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