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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숙의 행복한 시 읽기]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0.03.27 19:42

[여성소비자신문]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 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 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凍死者)가 얼어 죽을 때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시 감상-

슬픔과 기쁨, 기쁨과 슬픔은 같은 공간에서 느끼는 삶의 정서적 존재이다. 슬픔과 기쁨은 시간 속에서 서로 교차될 수도 있고 한 순간일 수도 있다. 이 시에서 ‘슬픔’이 ‘기쁨’에게 전하는 말을 들어보면 둘의 살아가는 태도가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기쁨’은 소외된 이웃의 그늘을 외면하고 생각 없이 자신의 행복만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 또는 그런 세태를 상징하고 있다. '슬픔'은 남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소외된 사람들을 보듬고 사랑하는 따뜻한 존재이다.

슬픔은 기쁨에게 마침내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의 좌절과 고통, 슬픔을 모르는 기쁨은 참다운 기쁨일 수가 없음을 일깨워주려는 것이다. 그리고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고 부드럽지만 강한 의지로 다짐한다. 포용한다.

시인은 “‘슬픔이 기쁨에게’라는 깊고 신선한 제목으로 진정한 삶, 아름다운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슬플 때 위로와 기쁨이 되어주고, 기쁨이 슬픈 이의 마음을 다독이고 헤아려줄 줄 아는 관계, 슬픔과 기쁨이 서로 포용하고 나누며 살자 한다. 즉, 소외된 이웃에 관심과 사랑으로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 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자고 외친다. 극도로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는 세태를 꼬집으며 슬픔의 힘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다.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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