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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겸 칼럼 18]라트라비아타[춘희]와 우리 역사! 제주 4.3사건
하도겸 나마스떼코리아 대표 | 승인 2019.11.14 13:24

[여성소비자신문]‘독일의 밤 문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런 말은 오해의 소지가 큰가 보다. 동절기에 4시반만 되도 해가 기우는 서유럽과 동유럽이 만나는 독일에서 ‘야경’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으면 참으로 아까운 시간이 저녁이다. 여름에야 ‘백야’가 지속되어 자정까지는 아예 밤의 풍경을 볼 수조차 없겠지만 말이다. 춥고 습하고 바람도 쌩쌩 불어 체감온도로 생각하면 같은 시간의 서울보다 더 춥게 느껴지는 밤이기에 그렇다.

‘밤 문화’란 말은 예전의 그 유명한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가 살았던 시기의 유산일까? 1813년부터 1901년까지 살았던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는 당시의 남성 중심의 밤 문화를 1853년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1853)에 반영했다.

“밤이면 밤마다 파리의 극장 특별석에 나타나 한 달의 25일은 흰 동백꽃, 나머지 5일은 붉은 동백꽃을 가슴에 꽂아 대담하게 유혹을 했던 고급 창녀”의 모습을 그린 것은 물론 ‘삼총사’와 ‘몽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유명한 알렉상드르 뒤마의 아들 뒤마 피스였다.

그녀와의 사랑의 결실을 보지 못했던 피스는 자신의 생애에서 그보다 더 슬프고 회한에 가득했던 날은 없었다며 울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바로 ‘동백꽃 아가씨’다.

파리 사교계의 프리 마돈나 마리 듀프레시라는 실제 여성을 모델로 쓴 ‘춘희’의 본래 제목은 ‘동백꽃(을 들고 있는) 아가씨’이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춘희’로 번역되었다. 1853년 3월 6일 베네치아 페니체 극장에서 초연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3막 4장에는 널리 알려진 ‘축배의 노래’를 비롯하여 수많은 주옥같은 노래가 순진한 청년 알프레드 제르몽과 미모의 창녀 비올레타와의 사랑이야기를 전한다. 1948년 1월 ‘춘희’라는 이름으로 국제오페라사(지휘 임원식, 연출 서항석)에서 최초로 공연은 우리나라 최초의 오페라 공연이기도 하다.

바흐, 베토벤, 바그너, 브람스 등 위대한 음악가들을 배출한 나라 독일. 그 독일 베를린에는 역시 베를린 필하모닉의 전문 공연 극장이 있고 음악, 무용, 서커스 등이 결합된 종합예술인 ‘vivid grand show’ 전문 상연관 등이 있다. 까닭에 독일에서 긴 밤의 특별한 문화생활을 원한다면 문화예술공연을 추천하고 싶다.

스마트폰으로 급하게 검색하면 대부분의 표는 매진이다. 하지만, 독일 필하모닉의 매표소 직원의 친절한 농담처럼, 음악을 좋아하는 노년층은 스마트폰 등을 그다지 사용하지 않기에 현장판매가 늘 이뤄진다고 한다. 필자가 찾은 11월 7일은 추석 기차표 현장 판매 개시처럼 2020년 상반기의 공연 표가 개표되어 현장에서 직접 표를 살 수 있는 날이었다.

당일 베를린 필하모닉의 공연 표 역시 대부분의 좌석은 매진이었고 100유로를 훌쩍 뛰어넘는 표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늘 오케스트라 뒤편의 좌석과 입석은 조금 여유가 있게 남아 있었다. 좌석표가 특별히 없어서 한시간 전에 공연장이 열리면 얼른 가서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면 된다.

이 날은 특히 그 유명한 주빈메타의 은퇴 고별 공연이어서 1시간 넘게 지휘자의 얼굴 표정과 손짓을 보면서 그의 특별함을 감상할 수 있었다. L.A.와 이스라엘을 거쳐 독일에서도 지휘자로 활약했던 그가 지휘하는 80대 마지막 공연을 숨죽이며 오로지 심박으로 함께 했다.

얼마 전 들린 구 동독 지역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인 드레스덴에도 신오페라하우스가 있었다. 당일 저녁 7시에 현장에서 R석의 1/8 정도 가격의 입석표를 구해서 입장했지만, 공연장 전체가 잘 보이지 않는 좌석은 늘 판매하지 않고 남아 있었다. 빈 좌석에 앉으면 1/3의 시야를 포기해야 하지만 좀 안락하게 ‘만원대의 행복’을 느낄 수가 있다.

다만 입석의 경우는 중앙이기에 전체를 훌륭하게 관람하고 청취할 수 있지만, 무릎이 불편한 분들에게 2시간은 가혹한 시간일 수 있다. 이 날 마침 관람한 오페라가 베르디의 ‘라트아비아타’였다. ‘버림받은 여자’ 또는 ‘타락한 여자’의 의미를 가진 낱말이 왜 춘희로 번역되었을까 궁금해서 구글링을 하다가 알게 된 내용을 체험과 함께 위에 정리한 것이다.

필자에게 ‘동백’은 늘 제주 4.3사건과 보이차를 떠올리게 한다. 이전에도 설명했지만, 동백꽃이 제주 4·3사건을 상징하는 꽃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건 우리 나라 화단을 대표하는 강요배 화백이 제주 4·3사건을 다룬 연작 작품 ‘동백꽃지다’를 내놓은 이후부터라고 한다. 제주 4·3에 희생당한 무고한 제주도민을 상징하는 붉게 핀 동백은 새 생명을 잉태하는 생불꽃, 평화와 정의, 부활을 상징하는 환생꽃의 의미도 갖는다.

강렬하게 붉은 동백꽃은 추운 겨울에 핀다. 만물이 잠든 계절에 저 홀로 꿋꿋이 화려한 꽃망울을 터트리는 강인한 생명력은 제주 4.3희생자들이 흘렸던 붉의 피와 제주민들이 힘든 삶을 상징하는 꽃이다. 제주4.3의 상징 동백꽃은 70주년을 기념하여 이제 4.3배지가 되어 제주도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꽃이 되었다.

보리아트 이수진 작가가 중심이 되어 참여했던 “대한민국 대통령이 4.3의 진실을 말하다” 기록전(展)들을 보면, 이제는 대통령들까지 가슴에 달고 있는 듯해 보여 참 다행스럽다. 필자 역시 늘 가슴에 동백을 달아 “4.3은 대한민국의 역사다”라고 말없이 메시지를 전하는데 동참하고 있다.

필자가 이 동백꽃을 가슴에 다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 동백꽃을 피우는 동백(冬柏)나무가 바로 보이차 나무가 속한 차나무과에 속하는 상록교목이기 때문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처럼 제주의 동백나무가 운남으로 건너가 보이차나무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라트라비아타를 보고 숙소로 돌아와 서울에서 가져간 보이차를 우리며 4.3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념하며 한잔을 올린다. 아득히 먼 동쪽에서 또 새하얀 희망의 새벽이 찾아오고 있었다.

"사진은 드레스덴 신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 개막 전과 중간 휴식시간에 각 층에 2개씩 있는 바에서 와인과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하도겸 나마스떼코리아 대표  dogyeom.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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