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시 해설
 
이정록 시인의 시 ‘의자’는 읽을수록 구수한 삶의 향기가 묻어난다. 오순도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가족들의 따듯함이 가슴에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이 시는 시종 어머니의 말씀으로 이끌려가지만 시 전편에 흐르는 모자간의 대화는 한 점 걸림이 없이 편안하고 진중하다.

아들이 어머니의 삶의 지혜를 새기며 묵묵히 그 깊은 뜻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허리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갈 준비를 하던 어머니는 짐짓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 꽃도 열매도, 그게 다 /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라며 ‘의자’를 화두로 내놓으신다.

산책 길옆, 교실, 극장, 비행기, 식탁 앞 등등 가는 곳마다 의자는 말없이 온몸으로  나를 기다려준다. 누구한테 의자가 되어 당당히 떠받쳐준다는 뿌듯함 밖에는 없는 듯이 말이다.

어머니의 휘어진 허리는 당장 의자가 필요하다. 아기를 키우며 안아주고 업어주고 손잡고 가는 행위도 모두 의자 같은 역할이다. 꽃도 열매도 서로 받쳐주는 의자가 없이는 오래 지탱하지 못하고 떨어져버리고 말 것이다.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라고 일러주는 어머니의 그 든든한 ‘의자’는 믿음과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살아가는 동안 가족은 언제나 서로 믿고 보호하고 감싸주는 울타리이다.

힘들 때 편히 기댈 수 있는 등받이가 되기도 하며 디딤돌이 될 때도 있다. 비틀거릴 때 철퍽 주저앉도록 쿠션이 돼주기도 한다. 나를 대접해 주고 인정해주며 쉬어가게 해주는 그런 의자가 아닐까.

어머니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하시더니, 마침내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라고 말을 맺는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평등을 중시하라는 가르침,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위해 선뜻 의자를 내어주는 삶의 감사함을 깨닫고 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아들에게 넌지시 당부하고 있다. 세상 이치에 어긋남이 없는 어머니의 삶 전체를 아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주는 것이다. 그 의자에 아들에 대한 긍지와 믿음이 넘칠 듯 말 듯 흐뭇하게 담겨 있어 아름답다.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저작권자 © 여성소비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