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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화된 사회의 부산물로서의 리얼돌과 여성의 성적 대상화
김민경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성매매방지중앙지원센터 | 승인 2019.09.27 14:46

[여성소비자신문]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하는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대법원의 리얼돌 수입 허가 판결을 둘러싼 찬반 입장이 불거지기 이전에 이미 해외에서는 인공지능(AI)이 탑재되어 걷고 말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섹스 로봇 ‘하모니(Harmony)’가 등장하였고 이를 ‘리얼돌’의 ‘진화’ 내지는 ‘혁명’으로 인식하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

세계 최대의 한 포르노 사이트는 2016년 3월, ‘가상현실(VR) 포르노’ 영상 제공을 시작했으며 자사 데이터에 따르면 이 사이트에만 2300개가 넘는 VR 포르노 영상이 있으며 하루에 50만 명이 방문, VR 영상을 본다는 통계(2017년 5월 기준) 또한 존재한다.

유럽의 경우, 이미 리얼돌을 이용한 성매매 업소도 등장하였다. 2017년 2월, 유럽에서는 최초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리얼돌 성매매 업소가 문을 열었고 약 8개월 뒤인 2017년 10월에는 성매매가 합법화된 독일에도 리얼돌 성매매 업소가 등장했다.

1년 뒤인 2018년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프랑스 파리, 덴마크 오르후스 등에 리얼돌 성매매 업소가 연이어 문을 열었다.

성매매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성매매 폐지주의자들이  지적하는 다음과 같은 사실, ‘성구매자에 의해 행해지는 폭력’, ‘여성의 신체를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개념 등 성매매의 젠더 불평등한 관계’, ‘포주 및 인신매매업자에 의해 통제(control)되는 여성’ 등 성매매에 대한 대안 및 사적인 영역에서 행해지는 성기구 목적으로서의 리얼돌은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대한 국가 개입의 최소화’라는 개념과 결합되어 ‘리얼돌 및 섹스돌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There’s No Harm)‘라는 긍정적인 확언(만트라)까지 퍼지고 있는 듯하다.

우리 사회는 이를 수용해야 하는가?

'폐해(Harms)'의 관점에서, 리얼돌 및 섹스 로봇은 정말 아무런 폐해를 끼치지 않는 실리콘 및 첨단기술의 단순 접합체에 불과한 것일까?

‘책임감 있는 로봇을 위한 재단(Foundation for Responsible Robotics, 이하 FRR)’은 2017년 발간한 보고서 'Our Sexual Future with Robots'를 통해 ‘인공지능을 갖춘 섹스 로봇 시대가 오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책 담당자, 학계, 산업계, 일반 대중들은 섹스 로봇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전혀 논의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섹스 로봇 등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과 규제 원칙의 마련을 촉구하였다.

이 보고서는 리얼돌의 수입 허가 판결 논쟁에 있어 상당 부분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FRR은 보고서를 통해 섹스돌(리얼돌)을 이용한 성매매 업소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증거를 목격해 오고 있다고 지적하고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는데 이는 리얼돌을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의 프레임워크’에서 이해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에 유의미한 시사점을 갖는다.

섹스 로봇 중 남성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섹스 로봇의 대부분은 포르노에서나 볼 수 있는 신체를 가진 여성들로 ‘젠더화’되어 있다.

움직이는 섹스 기계에 여성 신체에 대한 포르노그래피적 묘사는 ‘수요만 있다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손쉬운 섹스’라는 개념을 영속화시킬 뿐만 아니라 여성 신체를 대상화하고 상품화한다.

리얼돌과 섹스 로봇이 성범죄를 줄이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FRR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섹스 로봇 및 리얼돌 등이 성범죄의 예방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매우 극심한 의견 불일치를 가져왔다. 많은 사람들은 섹스 로봇, 리얼돌 등이 불법적인 성적 관행(Illicit Sexual Practices)을 부추기고 강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섹스 로봇과 함께 매우 어두운 판타지(the Darkest Fantasies)속에 살도록 허용하는 것은 사회 및 사회적 규범에 유해한 영향(Pernicious Effect)을 끼칠 것이며 (사회의) 취약한 집단에 더 큰 위험을 만들어 낼 것이다.

영국, 캐나다, 노르웨이는 이미 아동 모양 리얼돌의 유통과 구매를 금지하고 있으며 현재 호주에서는  남호주주(州)가 최초로 아동 리얼돌(섹스돌)을 불법화하고 위반 시 최대 10년 징역형까지 가능하게 하는 법안을 추진 중에 있다.

영국 가디언(Guardian)의 칼럼니스트이자 페미니스트인 수잔 무어(Suzanne Moore)는 가디언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섹스 로봇은 성 중립적인 세상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젠더화된 세계에서 만들어 진 것이라고 지적한다.

지난 2월, 스웨덴 여성 로비(Sweden Women’s Lobby), 스웨덴의 여성 및 여성 청소년 쉼터를 위한 전국협회 Roks, 유니존(Unizon)은 공동 성명을 통해 스웨덴 정부에 ‘여성 신체의 착취’라는 개념을 재생산하는 기술에 대응하기 위한 법안을 촉구하였다.

이들은 섹스 로봇과 섹스돌은 여성의 대상화를 강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여성 형상의 로봇이 남성의 요구에 절대 ‘No’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기술에 의해 자극되는 판타지는 여성과 소녀에 대한 폭력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 단체의 입장이다.

이들은 세계 최초로 ‘노르딕 모델’을 채택한 스웨덴 정부가 취해야 할 다음 단계는 성 시장(Sex Industry)에 의해 추동되는 기술적 발전을 다루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얼돌을 활용한 성매매 업소의 등장에서 알 수 있듯이 리얼돌을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으로 해석하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

지난 2018년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 2019년 12월 25일부터 시행되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제1조(목적)에 따르면 ‘여성폭력방지정책의 종합적·체계적 추진을 위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개인의 존엄과 인권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성의 큰 가슴과 엉덩이, 남성들의 개인적 ‘성적 취향 및 판타지’에 따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맞춤 제작할 수 있는 리얼돌이 여성의 존엄과 인권 증진에 기여한다고 봐야 하는지 그 어느 때 보다 진지하게 물어볼 때이다.

 

김민경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성매매방지중앙지원센터  no-reply@sto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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