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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겸 칼럼⑭]30년 만에 만난 친구는 보이차와 같다
하도겸 나마스떼코리아 대표 | 승인 2019.08.23 13:38

 [여성소비자신문]보이차는 30년 이상의 긴 세월을 거치면서 미생물로 발효된 차라고 한다. 그 말은 30년은 되야 제 맛을 낸다는 뜻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과일이 따스한 가을 햇빛에 익듯이 봄 10년, 여름 10년, 가을 10년 이렇게 30년이 되면 제대로 된 보이차의 맛을 볼 수 있다.

이런 입장에 서면 30년이 안된 보이차는 익지도 않은 건데 먹어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받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이차는 과일과는 물론 다르다. 풋과일처럼 과일만 볼 것이 아니라 과실 나무와 같이 보다 넓은 시점에서 나무를 그리면 어떨까? 과수가 생산하는 과일은 매년 맛이 더 좋아질 수 있다. 같은 해에도 조생종, 중생종, 만생종이 있듯이, 제각기 가장 따서 먹기 좋은 제철이 있다.

과일이 열린다고 다 따 먹는 게 아니라 일부러 가지치기를 하듯이 안 먹고 먼저 잘라버리기도 한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나무를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잘 성숙한 후에 열린 과일을 따먹기도 한다. 다양한 과수재배법이 있겠지만, 보이차의 찻잎 역시 언제 따고 어떻게 만들고 어디서 보관하느냐에 따라 맛과 향 그리고 차의 품이 달라진다.

우리네 삶은 언제나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뭐가 중헌디’도 그런 의미와 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 보이차를 장기간 보관할 때는 밥을 할 때, 뜸도 들이지 않거나, 뜸을 들이는 중에 초보자처럼 밥솥을 여는 잘못을 굳이 범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이, 세심하게 접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친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작년에 입학 30주년을 맞이하여 대학동기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동안 거의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임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만남이 맛나고 향기롭다.

마치 30년 된 보이차 노차처럼 말이다, 그동안 소식도 모르고 지낸 것이 마치 30년간 창고에서 제각각 모두 잘 익은 노차처럼 각각의 맛과 향 그리고 품격이 있었다. 그래서 차품이 인품인가 보다.

우리네 인생처럼 30년 넘은 노차를 대하며 오늘도 시절인연과 일기일회의 의미를 되새긴다. 가끔 새로운 모임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다. 그러다보니, 오늘은 또 어떤 마음으로 어떤 친구들과 만날 수 있을까 라는 설레임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다그침이나 쫓김이 아닌 신의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물의 흐름에 욕심을 벗어던지고 그냥 몸과 마음을 맡긴다는 의미가 늘 새로울 따름이다.

보이차와 관련해서는 할아버지가 사서 전해 손자가 마신다는 이야기가 있다. 할아버지가 손주를 보게 되면 그때 보이차를 구입한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숫자 만큼 8통(56개)이나 88개정도 대량으로 구입하기도 한다.

보이차 신차 청병을 사서 빛이 차단되고 통풍이 좋은 차창 등에 보관한다. 손자가 성인이 되거나 결혼을 하거나 독립을 하게 될 때 그때서 선물로 주면 1년에 한 개씩 먹으며 할아버지의 감사함을 느끼며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30년 이후라는 오래된 미래를 내다보는 할아버지의 손자 생각과 안목이 참으로 징하다.

누구는 수백배로 급등하는 보이차 가격을 염두에 둔 재테크라고 하는데 그건 자본주의적인 발상에서 바라볼 때의 부작용일 따름이다. 사고 파는 차가 아니고 소중한 가족이 마시는 차이기에 1만원에서 사서 300만원일 때 마신다는 생각 정도로도 참으로 발칙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보다는 우리도 30년이라는 한 세대 이상을 넘는 안목과 그릇을 챙기고 있는가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길고 긴 오랜 세월을 간직하고 있는 보이차를 마시는 것은 곧 세월을 마시고 시대를 마시며 어쩌면 시대정신을 만나는 것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차마고도를 넘나들며 생명을 건 위태한 장대한 여정 끝에 만날 수 있었던 보이차를 이젠 쉽게 가까운 거리에서 구할 수 있다. 참으로 편안한 세상에 태어나 편하게 마시고 있다. 그렇게 쉬운 만남으로 다가온다고 해도 보이차를 보관해 본 사람이라면 차와의 깊은 인연을 경시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마치 우리네 인생에서 다시 만나는 오래된 친구들처럼.

차와의 인연도 중요하지만, 차가 맺어준 사람과의 인연 역시 더욱 소중하다. 차회에서 만난 분들 모두가 좋은 사람일 수는 없다. 하지만 차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차를 우리고 나누는 팽주를 비롯해서 찻잔을 채우고 비우는 과정 속에서 모두 저절로 깨끗해지기도 한다. 달항아리에 가득찬 물을 다 비우면서 마치 김환기의 그림처럼 우리는 마음속에 환한 달을 챙긴다. 등불이 비추인 찻잔을 비우며 그 언젠가 달빛을 비우던 선인들처럼 풍월을 읊기도 한다.

찻물을 끓이면서 동주전자 속에서 아우성치는 물의 모습은 지옥과 같은 오늘의 고통과 오버랩된다. 하지만 주전자 속에 모인 수많은 물방울처럼 우린 모두 같은 곳에서 제각각 그만큼의 서로 다른 색깔의 무게감도 다른 고통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도 있나보다. 가끔 고통의 빛이 아닌 환호성으로 들리기도 한다.

여하튼 설득이 아닌 공유할 기억을 넘은 추억이 있고 그렇게 공감할 수 부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인연이다. 그런 인연을 가진 우리는 시간 아니 시절이 무르익어 우리를 대하는 따스한 물을 찻 잎에게 소개해 준다. 오랫동안 정성을 들여 충분히 묵혀서 준비를 통한 만남은 30년이라는 어두움 속에서 스스로를 태우듯 발효시킨 보이차의 빛과 다르지 않다.

보이차의 최고의 맛을 내게 해 주는 온도는 100도가 펄펄 끓는 물이다. 제대로 끓지도 않는 물에게는 소중한 보이차를 소개해 주지도 않는다. 소개를 주선하지 않는다고 누군가가 탓한다고 해서 30년을 함께 한 친구인 우리 보이차를 아무 물이나 만나게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 특별히 수질관리를 하겠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는 한우물정수기를 거친 물이어야 하고 전통방식으로 잘 빚어 구운 오부자옹기에 운남 대리지역의 옥석과 함께 첫날밤을 지내야 비로소 수질검사를 통과한 물이 된다. 그런 물이 되어서야 길가의 발로 차이는 돌이 아니라 소중히 아낌을 받아야 하는 꽃으로서의 빛이 난다. 그런 빛이 났을 때 보름달 빛을 잘 머금게 된다는 일기일회의 차심과도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얼마전 강원도 평창군 계촌마을 클래식 거리축제에서 대미로 가는 길목에서. 길 한 복판에 오래된 나무를 만났다. 나무를 만난 길은 두 갈래로 나눠지면서 우리 인간의 아스팔트길은 태중의 아기씨처럼 소중하게 나무를 보호해주고 있었다. 수백년의 수령을 가진 나무를 배려하듯이 소중히 감싸고 있는 길은 우리의 나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기도 하다. 수백년의 아픔과 숨결을 담으면서도 꿋꿋하게 우리에게 추억과 그림자를 선물한 나무는 우리 땅의 지킴이로서 그런 의미에서 지신들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무를 신으로 대하듯이 마음속으로 최고의 차를 다려서 권하며 오래된 친구들에게 일기일회의 대접을 하려고 한다. 그렇게 오늘도 난 친구들을 만나고 설레임으로 환호성을 치고 싶다. 그렇게 보이차는 오래된 친구들의 소중함을 내게 알려준다.

하도겸 나마스떼코리아 대표  dogyeom.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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