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고승주기자] 고재호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어려워지는 조선경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남 거제조선소에서 연이어 터진 노동자 사망사고 때문이다. 이에 노동계에선 국내 조선업계 ‘빅 3’에 걸맞지 않은 심각한 생명경시·안전불감증에 대해 회사와 대표 및 관계계관의 솜방망이 처벌을 규탄하고 나섰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은 제대로 된 안전 대책 하나 내놓은 것 없이 노동청 조사나 검찰 처분만을 마냥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행동 뒤에는 기업으로서 한계에 부딫힌 대우조선해양의 초라한 자화상이 남아 있다.

2012년 11월 15일 거제조선소 특수선 3공장. 이날 공장 내 심해용 원유시추 플랜트 하부에서 블록을 받치고 있던 이동식 대형받침대가 갑자기 균형을 잃고 뒤집어졌다. 5~6t짜리 이동식 대형받침대는 바로 그 자리에서 작업하던 박모(48)씨를 향해 엎어졌고, 박 씨는 바로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올해 1월 15일 컨테이너선을 건조하던 제 2도크에서 325톤급 선박블록이 떨어졌다. 떨어진 선박블록은 옆 배에서 작업하던 민모(23)씨 머리를 강타했다. 민 씨는 겨우 입사 1개월 만에 명을 달리했다. 이날 사고로 사고 현장 근처에서 일하던 강모(30)씨 등 9명도 골절상을 입었다.

2월 7일 일찍 세상을 배워보고자 대우조선해양의 문을 두드린 하청 노동자 진모(19)씨도 입사 1개월만에 추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건조중인 배 내벽에서 작업하던 진 씨는 26미터 높이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현장엔 다수의 노동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 측과 경찰은 목격자는 없었다고 발표했다.

안전 없었던 사망현장

사망사고가 연이어 터지는 동안 사 측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우조선해양은 노사가 협력하여 집중 안전관리에 들어갔다. 그러나 노동계는 국내 빅 3에 속하는 대우조선해양에서 4개월 동안 3명이나 사망했다는 것은 분명한 문제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조선하청노동자연대(이하 노동자연대) 등 단체들은 지난 2월 20일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작업 공기를 맞추는 데 급급한 원청 대우조선해양이 노동자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아 근로자 3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목소리를 올렸다.

노동자연대는 "대우조선 현장은 생산제일주의로 치닫고 있다"며 "책임자를 처벌하고 특별근로감독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자 연대는 “충분한 안전조치가 이뤄졌다면 노동자들은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노동자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대우조선해양과 그 책임자인 고재호 사장을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조직위원회도 “잇따른 산재사고는 사용주 안전불감증과 함께 관계기관의 솜방망이 처벌에도 원인이 있다”며 경찰과 고용노동부 통영지청의 공정한 조사를 촉구했다.

수주에 목이 매인 기업

대우조선해양이 노동자들을 독촉해야 할 이유는 단 하나다. 돈을 못 벌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전년 대비 2.5% 증가한 12조5654억의 매출을 올렸다. 수주목표도 30% 초과달성했다. 조선업계 기업 중 유일하게 지속가능경영 우수기업 트리플A 등급을 얻는 영예도 얻었다.

하지만 내적으로 보면 대우조선해양의 속은 바짝 타들어가고 있다. 지난해 금융당국은 한계기업 144곳을 선정했다. 한계기업이란 기업규모가 커질 만큼 커져 더 이상 성장가능성은 없지만 임금상승과 물가상승 압박을 계속 받는 기업을 말한다. 한계기업은 생산보다는 유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자원을 소비하는 경향이 심해 구조조정 1순위에 오른다. 대우조선해양도 그 한계기업 중 하나로 박근혜 정부는 정부기관이 가지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지분(50.4%)을 매각할 방침이다.

한계기업들의 공통적인 속성은 매출은 높아도 이익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13조에 육박하는 매출을 자랑하는 대우조선해양이지만 영업이익은 반토막이 났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4516억원으로 전년 대비 55%나 감소했다.

이익이 줄어든 주된 이유는 이자 때문이다. 조선업체들은 사업규모가 큰 만큼 단번에 대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분할해서 대금을 받거나 일정 금액을 선 지급 받게 된다. 그러나 불황이 닥치면서 수주를 따내기 위해 선 지급액을 크게 줄여 입찰하는 경향이 심화됐다. 선지급액이 줄어들면 건조하는 동안 조선업체는 계속 사비로 배를 건조해야 한다. 그러면 빚은 많아지고 이자는 불어난다. 불어난 이자는 계속 영업이익을 갉아 먹게 된다.

해외투자에 나섰지만 18개 관계사 중 10곳이 적자상태에 빠지고 손실은 계속 누적되고 있다.

그나마 대출조차도 쉽지 않다. 조선활황기 때는 아낌없이 금고문을 열었던 금융업계는 이젠 조선업이란 말만 들어도 탐탁하지 않아 하는 분위기다. 정부의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금융계는 돈을 푸는 데 인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은행은 조선분야에 대한 여신심사기준을 강화하고 대출비중을 축소했다. 하나은행도 조선업을 성장전망이 어두운 업종으로 보고 대출을 축소했다. 신한은행과 외환은행은 대출 시 포트폴리오 조정 및 성장성에만 지원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대출이 막히면 회사채를 파는 수 밖에 없다. 대우조선해양은 2011년 5000억원, 2012년 5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그래도 유동비율이 70%대에 불과하다. 증권가 사이에선 경색된 자금줄이 언젠가 대우조선해양을 덮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그렇지만 회사는 수주를 포기할 수 없다. 수주를 계속 따내야 신용등급을 좋게 유지할 수 있고 신용등급이 좋아야 대출이나 회사채 발행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고사 치루는 노동자와 기업

이런 상황에서 별다른 개선방안이 없는 회사가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노동력을 압박하는 일뿐이다.

단 하루라도 건조 시간을 줄이면 이는 고스란히 회사의 이익이 된다. 정규직 대신 값싼 하청노동자를 끌어 써야 하고 심지어 경력이 짧은 인원이라도 일선 일자리에 배치한다.

대우조선해양의 한 현장 노동자는 “경력이 전무한 인원이라도 8~9시간 정도의 교육만 받고 바로 일선에 투입한다”며 “수주는 많이 받고 사람은 없다보니 안전교육체계가 엉망이다”고 전했다.

거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 관계자는 “조선업이 사고위험이 매우 높은 업종임을 감안하면, 무경력자의 경우 안전한 일부터 천천히 단계를 밟아 가야 한다”며 “사 측은 그런 고려 없이 무조건 일선에 투입시키고 있어 사고를 부추기고 있다”고 경고했다. 올해 사망한 두 명의 사망자들은 모두 입사 1개월도 되지 않았다.

경실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2010년과 2011년 각각 6명, 5명이 사망해 업계 평균 중대 산재사고율을 훨씬 웃돌았다. 2010년에는 근로자 1000명이 넘는 조선업체의 중대 산재사고율(0.82%)보다 6배를 넘었다.

조선업은 그간 국내를 대표하는 산업이라고 추앙받아 왔다. 타 산업군에 비해 취업유발계수가 12.0에 달해 반도체 등 타 유망산업에 비해 3배 이상의 고용창출력을 가진다. 하지만 조선업계가 침체에 빠져들면서 국내 조선업계의 트로이카인 대우조선해양은 한계기업과 업계 사망사고 1위란 오명에 얼룩지게 됐다.

고승주 기자  sj.go@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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