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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소비자신문 한지안 기자]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이 21일 김포 국제공항을 통해 일본 출장에 나섰다. 주요 현지 업체들을 방문해 소재 수급 여부를 논의하고 규제 확대 가능성에 따른 대응 방안을 강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16일 김동섭 SK하이닉스 대외협력총괄 사장이 일본 현지 원자재 협력 업체를 방문하기 위해 출장길에 오른지 5일 만이다. 김 사장도 현지 업체와 만나 장기적인 수급 현황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상황에 SK하이닉스는 최근 일본산 외의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에 대한 품질성능 테스트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재 수입처를 다변화하는 동시에 국산 불화수소를 사용하는 등 방안을 검토 중이다. SK하이닉스는 일본 소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대책을 찾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대만산 제품이나 국내 생산품은 일본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순도가 낮아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지만 최근 외신에 따르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소재 국산화 및 중국 등 대체 수입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앞서 중국 언론은 전자화학신소재산업협회 웨이신을 인용해 “빙화그룹은 일부 한국 반도체 회사로부터 다량 생산(批量) 주문서를 받았고, 회사의 전자용 불화수소는 한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삼성 관계자를 인용해 “삼성이 반도체 공장에서 새로운 재료를 시험할 때 사용하는 라인에 일본 기업 이외의 업체가 만든 불화수소를 투입해 시험 중”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중국이나 대만, 한국 기업의 제품으로 보인다”며 “삼성전자가 실제 일본산 이외의 제품 조달 여부를 판단하는 데엔 2~3개월이 걸릴 것으로 관측된다”고 밝혔다.

앞서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달 1일 보도자료를 내고 “수출관리제도는 국제적인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구축되고 있으나 한일 간 신뢰관계는 현저히 손상된 데다 한국과의 수출관리를 둘러싸고 부적절한 사안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및 포토레지스트, 에칭가스(고순도 불화 수소) 등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를 발표했다. 이후 해당 품목이 한국에 수출된 사례는 없다.

당초 일본 기업은 한국 기업에 이들 3개 품목을 간략한 절차에 따라 수출할 수 있었지만 지난 4일부터 매 수출 계약마다 그에 따른 허가 및 심사를 받게 된 상태다.

경제산업성은 또 “안보상의 우방인 ‘화이트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할 방침”이라며 “관련법 개정을 위한 의견 모집을 시작한다”고도 전했다. 일본은 외환법을 통해 미국, 영국, 독일 등 안보상의 우방국을 화이트 국가로 지정, 수출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화이트국가에서 제외되면 일본에 군사적 전용 가능성이 있는 첨단기술과 전자부품 등을 수출할 때마다 허가를 받아야 한다. 수출 규제의 영향을 받는 소재·부품 품목이 늘어나 반도체 뿐 아니라 타 산업에도 타격이 갈 수 있다는 뜻이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조만간 규제 확대 여부가 발표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SK하이닉스 경영진이 필수 소재 확보에 주력하는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대만산 제품을 사용하는 방안, 국내산 제품을 사용하는 방안, 일본 업체들의 해외 공장을 통해 우회적으로 수입하는 방안 등 그간 대안으로 제시되어왔던 대부분의 방법들이 좋은 결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데다 국내 업체들끼리의 경쟁도 고려해야하는 만큼 모두에게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국산 불화수소의 사용 여부는)품질과 순도가 문제”라고 발언했다.

최 회장은 지난 18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44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에 참석해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축적의 시간과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 강연이 끝난 뒤 이같이 말했다.

박 장관은 이날 강의 마지막께 중소기업도 불화수소를 만들 수 있는데 대기업이 구매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강연 말미에 “(국내) 중소기업을 만나 물어보니 불화수소 생산이 가능하다고 한다”면서 “그런데 (문제는) 대기업이 안 사준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이날 포럼 이후 박 장관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물론 만들 수 있겠지만 품질의 문제”라며 “반도체 역시 중국도 다 만들지만, 순도가 얼마인지, 또 공정마다 불화수소 분자 크기도 다른데 그게 어떤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정에 맞는 불화수소가 나와야 하지만 국내에서 그 정도 디테일은 못 들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장관은 전날 중기부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도 “기술을 보유한 우리 중기업체들이 생각보다 있더라”며 “그런데 왜 이 기술을 (상용화) 안했냐고 물으니 판로에 대한 담보가 없다고 한다. 우리가 기술이 있는데 대기업이 안 사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 한국 반도체 업계 주요 기업들은 반도체 제작공정에 들어가는 고순도 불화수소의 대부분을 일본으로부터 들여왔다. 일본 외에도 대만이나 중국 기업, 한국 중소기업도 불화수소를 다루지만 순도와 종류, 크기 등의 이유로 공정상 적용이 어려운 탓이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불화수소의 품질은 미세한 차이에 따라 반도체 수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들은 가격과 품질 대비 앞선 기술력을 보인 소수의 업체와 계약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이달 초 러시아 정부가 불화수소(에칭가스) 공급을 제안하고 나섰지만 국내 업체들이 공식적 판단을 유보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12일 정부 관계자는 “러시아가 최근 외교 채널을 통해 불화수소를 우리 기업에게 공급할 수 있다는 뜻을 정부 쪽에 전해왔다”고 밝혔다. 이에대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 국내 반도체 업계는 “일본 제품을 대체할 수 있을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 바 있다.

그간 의존도가 높았던 일본 제품의 경우 트웰브 나인(99.9999999999)이라고 불릴 정도로 순도가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양국 간 갈등이 길어질 것으로 전망되자 업계 일각에선 일본산 불화수소를 국내산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LG디스플레이는 최근 국내 업체가 생산한 불화수소를 액정표시장치(LCD) 공정에 적용 여부를 두고 테스트 과정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소재 공급선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국내에 필수소재를 공급할 수 있는 업체가 드문 상황이라 기업들이 테스트는 시도할 것으로 본다. 다만 테스트 과정을 고려하면 결론을 낼 때까지 두 달 이상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지안 기자  hann9239@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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