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시쯤 엄마가 급히 챙겨 주는 간식을 먹은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은 이내 학원 버스에 몸을 싣는다. 이렇게 하루 종일 학원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면 평균 부모 보다 늦은 시간인 11시쯤 귀가를 한다.

11시부터는 이제 학원 숙제와 학교 숙제를 소화할 차례다. 이런 생활은 유치원부터 고3까지 쭉 계속될 예정이다. 친구라고는 학원 친구가 고작이요, 학교 일과를 마치고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이란 내 아이와 절대(?) 어울려서 안 되는 없는 집(?) 자식일 뿐이다.

주부 이모(41)씨는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만 보면 앞으로 들어갈 교육비 문제에 한숨부터 나온다. 이미 유치원에서부터 선행학습을 해왔건만 내 아이가 과연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 씨는 “결혼하기 전부터 내 아이는 사교육에 의존하지 말고 키워야 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며 “그래서 어린이집을 보내는 것 외에 별다른 교육을 시키지 않았는데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다른 학부모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내 아이가 너무 뒤쳐져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정부에서 사교육비를 절감하기 위해 방과 후 교실과 같은 여러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아직 사교육비로 인한 학부모들의 고민은 여전하다. 이 씨와 같이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의 선행학습을 외면해 온 경우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예전과 달리 최근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선행학습이라는 명목으로 이미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국어나 영어, 수학 등 주요 과목은 물론 예체능까지 미리 공부를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씨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생각에 최근 아들이 다닐 학원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씨와 달리 어려서부터 아이들 교육에 열을 올렸던 주부 신모(35)씨는 아이들이 커갈수록 감당이 안 되는 사교육비에 매일 한숨만 쉬고 있다.

남편 월급 500만원으로는 도저히 아이들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어 최근에는 집 근처 대형마트에서 아르바이트까지 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버는 100만원 남짓한 돈도 모두 아이들 교육비로 들어간다.

신 씨는 “첫째 아이는 영어유치원부터 예체능 학원까지 모두 보내왔는데 둘째 아이 때는 영어유치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중간에 그만둬야 했다. 그게 너무 미안했다”며 “주변에서 꼭 해야 한다는 교육만 시키는데도 매달 교육비 때문에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신 씨의 첫째 아이는 현재 캐나다 친척집에 머물며 어학연수를 받고 있다. 영어유치원와 비용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해외에 머물고 있는 친척 덕에 숙소나 아이의 안전 면에서는 걱정을 덜었지만 매달 150만원이 넘는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최근에는 적금까지 깼다. 둘째 아이는 현재 매월 삼십만원씩 주면서 수학과 영어 과외를 받고 있고 피아노와 미술학원도 다니고 있다. 과외비와 학원비만 합쳐도 100만원이 넘는다.

신 씨는 “매달 거의 300만원에 달하는 돈이 교육비로 나가지만 그래도 아이들 미래를 생각하면 참고 견딜 수 있다”며 “둘째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명문학원에 보낼 생각이다. 현재 학원 입학 시험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사교육을 받고 좋은 사교육을 받기 위해 또 사교육을 받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이처럼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명목이 바로 사교육의 명맥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끊이지 않는 영어 열풍

사교육의 정점에 서 있는 교육 과정은 단연 영어다.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면서 누구나 필수적으로 공부해야 하며 영어를 모르면 사회에서 뒤쳐진다는 인식 때문에 영어 사교육은 이제 필수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영어유치원의 경우 매번 대기자가 줄을 잇는다. 한 달에 100만원이 넘는 학비에도 불구하고 너도나도 영어유치원의 문턱을 넘지 못해 안달이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김태원 새누리당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제출받은 전국 유아영어학원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영유아 대상 영어학원은 225곳에 달했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96곳으로 가장 많았다. 서울시내 영어유치원 학원생 수는 4933명으로 전국 학원생 수인 9741명의 50.6%를 차지했다.

교습비가 가장 비싼 곳은 강남교육청 소속 영어유치원으로 평균 102만원이었으며 교습비 외 급식비 피복비 차량비 기타 재료비 등을 포함하면 강동지역이 129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학부모들이 꼽는 영어유치원의 가장 큰 장점은 유치원 내에서 영어만을 쓴다는 점이다.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는데 성공한 주부 이모(29)씨는 “영어는 꾸준히 듣고 말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영어유치원이 그 모든 것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곳인 것 같다”며 “해외어학연수 외에 아이에게 영어권 환경을 마련해줄 수 있어 학부모들이 많이 찾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선행학습 금지법 효과는 ‘글쎄~’

사교육 문제가 심각해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4일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는 ‘선행학습 금지법 제정’과 관련해 “초․중․고교에서 이뤄지는 각종 평가가 교육과정의 범위를 벗어났는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삼청동 대통력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교육과학기술분과 국정과제토론회에서 이같이 밝히며 “서울시교육청에서 유사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긴밀하게 협조해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수립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사교육 억제를 위해 내 놓은 자유학기제, 공교육정상화촉진특별법(선행학습금지법) 등이 오히려 사교육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지난 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새 정부 핵심 교육정책 진단 현장 점검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강기수 동아대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내 놓은 핵심 교육정책을 진단하고 이로 인해 예견되는 문제점에 대한 대책을 제시했다.

우선 강 교수는 “자유학기제의 경우 제대로 된 진로교육을 실시하자는 취지와 목적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하지만 실현가능성에 있어서는 우려를 나타내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또, 우리나라의 경우 교육열이 높아 자유학기제가 선행학습이나 사교육을 조장하는 학기로 변질될 수 있으며, 교사들의 진로교육 지도능력 부족, 직업체험을 위한 사회 인프라 미비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집중이수제를 통한 진로교육을 실시하고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특별활동 시간을 이용, 토요 휴무일에 진로교육 실시, 인프라 구축 선행 등을 방안으로 제안했다.

또한 온종일 돌봄 학교의 경우 맞벌이 가정의 자녀 양육이나 교육에 대한 부담은 덜 수 있지만 단위학교나 현장 교원의 업무 부담이 가중될 수 있어 구체적인 운영방향과 계획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교육정상화촉진특별법의 효과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현실적으로 선언적인 법제정과 처벌 규정 강화 등으로 공교육기관의 선행학습을 금지한다고 해서 사교육 증가를 쉽게 억제할 수 없다는 것이 강 교수의 주장이다.

특히 고등학교의 경우 선행학습을 금지하기 쉽지 않으며 공교육기관인 학교에서는 선행학습을 금지하면서 기타 사교육기관에서 하는 선행학습을 묵인할 경우 또 다른 사교육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교육과정(교과서)의 수준과 학습량 조절, 학벌 중심이 아닌 능력 중심 직업선택이 가능한 사회 구조로의 변화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효정 기자  hj@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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