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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황씨여성회 ‘족보와 여성’ 세미나 개최 "전통문화 속 여성의 지위 새롭게 검토해야"
한지안 기자 | 승인 2019.06.03 15:10
사진제공=한국황씨여성회

[여성소비자신문 한지안 기자] 한국황씨여성회가 ‘족보와 여성’ 세미나를 개최했다. 황인자 한국황씨여성회 회장은 “가부장적 호주제가 폐지된 오늘날 여성의 지위가 남성과 동등해지고 있는 가운데 한 가문의 계통과 혈통관계를 적어 기록한 족보에 나타난 과거 여성의 모습을 살펴봄으로써 가족과 친족의 의미를 되돌아보고자 한다”며 “족보와 여성에 관한 세미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는 발제와 토론, 사례발표로 이어졌다. 이성림 여성문제연구호 회장이 좌장을 맡아 행사를 진행했다. 황 회장은 발제를 맡아 "지난 2005년의 호적제도 폐지는 남녀 차등의 가족주의적 병폐를 극복하고 여성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데 긍정적이고 선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양성평등의 추구는 세계적 추세이고 우리는 한 가지 대안을 이루어낸 것”이라며 “그러나 전통문화와 관련된 여성의 지위에 대해서는 새롭게 검토해야 할 담론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세미나의 주제인 ‘족보에 나타난 여성의 지위’도 그 중 하나라고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족보에 나타난 여성의 지위는 크게 족보가 첫째 선남 후녀의 출생 순위에 따른 것인지, 둘째 딸 이름이 들어가는지, 셋째 외손의 경우 어디까지(외손의 외손) 기재되는지 여부에 따라 여성의 지위가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며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족보인 ‘안동 권씨 성화보’와 ‘문화류씨 가정보’를 예로 들었다.

사진=여성소비자신문

황 회장은 이에 대해 “고려 말, 조선 초의 내용을 담고 있는 ‘안동 권씨 성화보’나 ‘문화류씨 가정보’의 경우 자녀의 족보 등재가 선남후녀 등 차등적 방법이 아닌 자연적인 출생 순서에 따라 이루어졌다. 또한 기재 대상도 부계의 남자 친손만이 아니라 딸의 혈통적 계보, 즉 외손과 외외손에 이르기까지 차등 없이 무제한적으로 이루어졌다. 양성 평등 성격이 강한 내외 손보”라며 “조선 후기와는 다른 남녀균분상속제도가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또 “그러나 이러한 현상들은 17세기 중엽 이후의 족보에서는 판이한 현상이 대세를 이루어 조선 후기 종법이 정착하면서 족보에서의 여성의 위상이 크게 실추되고 있었다”며 “이는 사실상 큰 비판 없이 현대 족보에까지 내려왔다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 회장은 그러면서 “우리 젊은 세대는 가문에 대한 소속감이 상대적으로 낮아 족보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 그러나 ‘나의 뿌리 찾기’는 유럽과 서구에서 더욱 활발해 한국의 족보에 대한 학문적 관심도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며 “현대 족보에서 양성평등적인 조건을 이루기 위해서는 전통족보와 비교할 때 어떤 요소들이 가감되어야 하는지, 또 바람직한 족보문화의 정착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토론에 참여한 한기범 한남대학교 명예교수는 “오늘 포럼에서 발제한 족보에 나타난 여성의 지위는 다소 생경한 주제”라며 “아마도 우리 족보가 기본적으로 남자혈통 중심의 기록이라는 선입견 때문이 아닌가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한 교수는 “전통시대의 족보에 나타난 조선 시대 여성의 지위는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열악했다. 시기적으로 보면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 또는 17세기 이전의 조선 시대 족보에 비하여 조선 후기의 족보가 더 여성의 지위를 차등적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이는 17세기 이후 종법사회의 정착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조선과 같은 시기 명·청 시대의 족보는 조선 전기에 비해 여성의 지위를 높게 볼 수 있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자족보를 ‘전통시대 족보의 모순을 극복할 새로운 계기’로 꼽는다. 한 교수는 “아직도 많은 문중에서 족보를 꾸준히 제작, 간행하고 있다. 이는 족보가 지니는 나름의 순기능을 인정하기 때문일 것”이라며 “그러므로 양성평등의 이념 실현을 위하여 족보체계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시급히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이 최근 유행하고 있는 전자족보다. 이는 전통시대의 모순을 극복할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만들어진 전자족보의 경우 추가내용에 대개 딸과 처의실명 및 간단한 인적사항을 적는 것은 물론 출생순서로 기재하는 것이 대세다. 앞으로는 전자족보 기재시 가능한 한 양성평등의식에 맞게 기재하도록 하고 여성의 이름과 출중한 경력사항은 물론 특출한 재능과 묘약, 야성의 가계등도 함께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의 발전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사진제공=한국황씨여성회

이어 황경숙 국제존타 서울 4클럽 회장은 토론 이후 이어진 사례발표를 통해 ‘족보를 통한 황씨 여성의 어머니로서의 지위와 역할’을 되짚었다.

그는 “여성은 출생이후 딸로서, 결혼 후 아내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자연적 지위를 부여 받아 왔다. 우리는 족보속의 황씨 여성들의 사례를 통해 그들의 가정교육이 자손들에게 주었던 영향과 어머니로서 자손들의 사회적 진출과 중재의 역할을 어떻게 해 왔는지 확인해 볼 수 있다”며 “가문을 구하기 위하여 오명을 뒤집어 쓴 황상(裳) 의 따님의 경우 가문을 위해 희생 했던 한 가정의 어머니이자 가장”이라고 말했다.

황 회장은 “고려에서 조선 초기로 넘어가던 시기에는 사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1,2차 왕자의 난의 발발로 인해 더더욱 어렵고 혼란스러운 사회였다. 그 때 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권을 잡으려고 하였던 고려의 무신이자 조선의 무신이었던 박포의 아내였던 황상의 따님이 있었다”며 “난을 일으킨 남편은 사형에 처하였지만, 황씨 부인에게는 죄를 묻지 않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가문의 상태는 좋지 않아졌을 것이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황씨 부인은 종손을 피신시키고 지켜내며, 황희 정승을 만나 가문을 구하기 위해 상의 하는 등 용기 있게 가문을 구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해왔다고 전해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두 번째로 중국 성리학과 양명학의 연구에 큰 공을 세운 정이, 정호 형제를 키운 송나라 후씨 부인에 버금간다는 황대용의 따님이자 조선 명종 선조때의 문신, 문장가인 윤두수의 부인이 있다. 부인은 남편인 윤두수 뿐만 아니라 아들 윤방이 영의정에 오르는 데 큰 내조를 하였다고 전해온다. 또한 그 뿐만이 아니라, 슬하의 4남 모두가 문과 급제를 하고 손자 다섯, 그리고 증손 다섯 모두 문과 급제를 하였고 이가 곧 해평 윤씨 문중을 대단한 명문가로 만드는데 일조 하였다고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족보를 통한 황씨 여성의 아내로서의 지위와 역할’을 주제로 발표하며 “두 번째로 우리는 아내로서의 지위와 역할이 어떠한 지를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려시대, 즉 조선시대 이전의 여성들은 이성에 대하여 비교적 자유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성을 가지고 남편의 계보에 종속 되지 않으며, 자유로운 재혼과 여성도 균분 상속으로 당당히 지닐 수 있었던 재산 등이 그 이유”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선시대로 접어들며 그 이전과는 다르게 혼인관은 엄격해 진다. 대부분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이루어진 혼인관계 속의 한 사람의 아내로서 어떠한 지위를 가지고 가정 내에 어떠한 역할을 해 왔는가를 족보 속의 황씨 여성들의 사례를 통해 파악해볼 수 있다”며 “첫 번째로 14세기경 고려 말 원 간섭기, 비교적 자유분방 하였던 고려 말에 부모에게서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란 군부인 황씨는 남편인 고려의 문신 백문보를 잘 내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인은 효도와 공경을 극진히 하였고 하인을 부리는 데에도 엄숙한 법도를 지켰으며 남편을 위해 힘을 다해 주선하고 마련하여 손님을 접대하면서도 힘든 내색 없었으며 또 남편인 담암 백문보와 학문을 논하면서 내조 하였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황 회장은 이어 “두 번째로는 조금 특이하게 황씨와 황씨가 만나 결혼을 한 사례도 있다. 부인의 본관은 평해이다. 조부는 개국 공신 무신 황희석이고, 부친은 황희와 함께 상소를 올리는 등의 인연을 가지고 있었던 황상이다. 이 인연을 통해 황희의 아들 황치신과 혼인을 하였는데 황치신은 본관 장수이다. 태종 때 이름도 하사받고 호조판서, 중추원사 등의 관직을 지내는 등 조선 전기에 문신이었던 그의 부인이었던 황씨 부인은 호기로운 대장부의 기질을 가져 남편의 허물이 생기더라도 그를 탓하지 않고, 그가 슬기롭게 처신할 수 있게 도우며 현명한 내조를 하였다고 전해온다”며 “족보에 나타난 여성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족보상의 인물들이 실재했고, 본받을 만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사실에 기초하며 바람직한 어머니의 역할, 현명한 아내로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족보 속의 황씨 여성들의 사례, 즉 우리 과거의 여성들을 통해 현재의 우리는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긍정적 사고를 가지고 상황에 대처한 능력을 가지며, 항상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꾸준히 자신을 절제해 노력 하며, 본인이나 자식들에 대한 교육의 끈을 평생 간직하며 실행하는 실행력과 한 번 선택된 운명 속에 자신의 희생을 통한 위대한 어머니, 아내로서 누구보다 당당히 살아갈 수 있음을 배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여성소비자신문

한편 이날 축사를 위해 참석한 유경현 대한민국헌정회 회장은 "족보는 문화 민족의 상징"이라며 "파란만장한 역사속에서 우리 민족을 지키고 버텨온 고마운, 반가운, 우리의 자랑이자 다짐이라 할 수 있는 복합적인 여러 인식과 가치를 담은 문서가 족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 회장은 "족보에 담긴 우리 민족의 성취와 좌절, 미래와 지평을 총체적으로 돌아보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며 "오늘 모임이 민족과 문중의 모임, 남성과 여성의 같이 가는 모임이 되기를 바란다. 지금 국회의원이 300분인데 이중 여성의원들은 51명이다. 이전에 한 두분이었는데 어느새 50여명의 여성이 국정에 참여하게 된 것은 큰 변화"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변화가 특정 계층만의 변화만이 아니라 문중, 민족, 우리 모두의 것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사진=여성소비자신문

이기수 고려대학교 17대 총장은 "족보는 아직도 만들어지고 있고 그를 토대로 친족집단으로서 문중은 여전히 사회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저 또한 전주 이씨 양녕대군파의 17세손으로 종중의 일을 작게나마 맡아왔기에 이를 잘 알고있다"며 "족보문화는 쉽게 집작하는 바오 달리 조선 후기의 것이어서 당시의 신분제도와 문화의식을 주로 반영한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 역사에서 족보는 부계 중심의 계보가 절대적 속성이 아니다. 고려시대 여성은 결혼 후에도 친정의 일원으로서 남자형제들과 똑같은 몫을 상속받았다고 기록돼 있다. 이러한 역사적·문화적 배경속에서 족보의 의미를 살피고 여성의 인권과 지위를 고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한국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는 동안 젊은 세대 사이에선 남성과 여성이 편을 가르는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여성이 우리 사회 절반으로서 권리와 지위를 인정받고 제도적으로 보호받는 것은 당연하다"며 "하지만 이는 과거의 피해 사례와 현재의 약자 의식에 기반된 양보로 이뤄질 수는 없다. 가능성과 역량을 통해 여성의 지위 회복의 필요성이 증명되고, 이를 통해 성별의 차이를 인정하며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실력과 역량으로 여성의 지위 확보를 잘 보여주신 분들이 바로 한국황씨여성회다. 앞으로도 한국황씨여성회가 한국 여성 사회의 모범으로 좋은 선례와 바른 길을 제시해주시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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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황선혜 숙명여자대학교 18대 총장은 "올해 95세인 제 아버지는 지난해 6월 친필로 2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나의 일생'이라는 자전작 글을 써냈다. 거기에 '우주 황씨 연혁', '종중 관리'. '선영 관리', '조부의 숭조 사상'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는데 아버지의 회한이 담긴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며 "'아버지께서는 선비로서 가사를 돌보지 않으셨고, 그 대신 어머니의 고생은 무엇으로도 표현하기 어려웠다. 어머니는 장손 집 며느리로서 조상들의 제례와 중시하에 어른들의 뜻을 받들어야 하며 여러 집안과 자식들을 돌봐야 하는 등 많은 일에 시달려야 했다(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처럼 한 가문의 여성들은 시집온 여성들이나 그 집안에 태어나 여성들 모두 집안에서 고단한 가사 노동과 농사일을 돌보았지만 문서로 그 모습을 그려낸 곳은 드물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며 여성의 삶의 모습이 사회 각 곳에서 명료하게 드러나면서 지난 세대에서도 엄중한 가정의 상황을 극복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제는 족보에까지 이름과 그 업적을 올리게 됐다"며 "여성은 족보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도 함께 하지 않는 사람들로 여겨지고, 또한 족보에서도 그 존재를 찾아보기 힘든 가문이 많이 있다. 그럼에도 여성의 지위는 그들이 이미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실체적 진실로 드러냄으로써 글의 존재 여부에 관계 없이 우리의 유전자에 깊이 새겨져있다. 오늘 세미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이 실체를 함께 읽어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족보와 여성’ 세미나는 지난 5월 30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됐다. 이날 행사는 한국황씨여성회가 주최하고 (사)여성문제연구회·젠더국정연구원이 주관했다. 이주영 국회부의장, 한국황씨중앙종친회, 여성소비자신문, 미래한국이 후원했다. 이날 행사를 위해 남양유업이 천연수와 17차를 후원했다.

사진제공=한국황씨여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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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안 기자  hann9239@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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