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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숙의 행복한 시 읽기]이근배 '살다가 보면'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19.05.21 10:08

[여성소비자신문]살다가 보면

     
이 근 배


살다가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떠나보낼 때가 있다

​떠나보내지 않을 것을

떠나보내고
어둠 속에 갇혀
짐승스런 시간을
살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시 감상-

살다가 문득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에게 물으며 자신을 들여다 볼 마음을 낼 때가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면서 우리는 수많은 것들을 만나고 헤어지며 먹고 마시고 일한다. 파도처럼 달리다가 산산이 부서져도 다시 일어서서 돌고 도는 삶을 살아간다.

되풀이되는 일상들, 원하든 원치 않던 또 그렇게 세월을 맞고 견뎌내면서 가끔은 내 삶의 주인공을 불러 이야기 나누고 싶을 때가 있다. 이 ‘길’이 맞는 것이냐고 너무 힘이 든다고 앞으로 어떻게 걸어가야 하느냐고 따져 물을 때도 있다. 이근배 시인은 “살다가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넘어질 때가 있다”고 답해 준다.

삶은 가도 가도 잘 알 수 없는 것, 내 의지대로만 살아가기 어려운 것, 뜻대로 다 이루어지지 않는 것임을 하나 둘 체험하게 된다. 살다가 보면  말하지 않을 곳에서 말할 때가 있는가 하면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 눈물을 보일 때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떠나보낼 때가 있으며, “​떠나보내지 않을 것을/ 떠나보내고/ 어둠 속에 갇혀/ 짐승스런 시간을/ 살 때가 있다”고 시인은 또 다독이며 조곤조곤 타이르고 있다. 누구에게나 만만치 않은 삶, 그 인생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쉽게 깨우쳐 주고 있는 것이다.

시 ‘살다가 보면’을 읽다보면 억울한 일, 외롭고 아프고 슬픈 일도 있지만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올 것이라는 예감이 들기도 한다. 살면서 세상일들을 받아들이며 겪게 되는 것들, 즉 넘어짐, 사랑, 눈물, 이별, 희생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인생을 깨닫고 보람과 행복을 알게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바람 헤치고 나온 과일이 달고 맛있듯이, 부족함을 모르면 하나 둘 채워가는 소중함을 느낄 수 없듯이, 지옥이 없는데 천국을 상상하기 어렵듯이, 슬픔을 모르는데 기쁨을 알 리 있을까.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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