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 2019.10.14 월 18:42
HOME 오피니언 칼럼
[구명숙의 행복한 시 읽기] 천천히 걷기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19.01.14 11:55

[여성소비자신문] 천천히 걷기

 

전석홍

 

너무 빨리 내달려 왔구나

 

세상길 천천히 걸으니

안 보이던 삶의 바닥도

유리알처럼 비치고

오만 가지 숨결이 내 가슴에 부딪혀온다

 

그늘 가려진 이름 없는 풀꽃들

‘나도 있다’ 손짓하고

저마다의 길 열어 가는 발걸음들 부산하다

 

작든 크든

삶을 위한 몸부림은 모두 다 아름다운 것

 

질주의 무거운 짐 벗어 버리고

살아가는 소리들을 되새기며

나는 천천히 바닥길을 걷는다

 

-시노트-

2019년 새해, 첫 배달된 전석홍 시인의 시집 ‘원점에 서서’를 단숨에 읽었다. 그 시집에 실린 78편 중 “천천히 걷기”라는 시를 함께 읽어보고 싶다. 새해에는 천천히 걸어가 보자는 생각이 시를 통해 확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생명은 작거나 크거나 그 나름 존엄한 존재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삶의 몸부림은 모두 다 아름답다고 노래한다. 생명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겠는가.

욕망의 소용돌이를 벗어나 천천히 걸어보니, 밝은 눈으로도 뵈지 않던 삶의 밑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이고 “오만 가지 숨결이 내 가슴에 부딪혀온다”는 것이다. 두근두근 맑고 고요한 편안함과 인정어린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작고 힘없는 “그늘 가려진 이름 없는 풀꽃들/ ‘나도 있다’ 손짓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한다.

사회가 복잡․요란해도 조금 천천히 걸어가 보자. 미래가 불안할 때도, 눈앞에 일이 산적해 있어도 천천히 고른 호흡으로 풀어가는 마음의 평화와 느림의 지혜가 필요하다.

순박한 농촌출신으로 정치가에서 시인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세월 겪으며 인생을 치러왔을 85세 풋풋한 노시인, 그의 시에 나타난 삶의 관조와 깨달음을 잘 음미해 보면서 황금돼지띠인 기해년(己亥年)은 숨 고르며 천천히 여유롭게, 더욱 행복하고 넉넉하게 성취해 가기를.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저작권자 © 여성소비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