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한지안 기자] 한국당·바른미래당·평화당·정의당 등 야 4당 여성의원들이 '노 민스 노 룰'(No Means No Rule)을 적용한 '비동의 간음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 4당은 24일 공동주최로 국회에서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개최하고 전문가들을 초청해 현행 성폭력 관련 입법의 미비점과 비동의 간음죄 도입의 필요성 등을 논의했다. 현행 형법은 간음‧강간등 성범죄의 구성요건을 '폭행 또는 협박'으로 규정하고 있어 피해자의 적극적 저항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일어난 성범죄는 처벌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경원 의원은 인사말에서 "아직도 성폭력 사건 재판에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시각에서 보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며 "(비동의간음죄를) 통과시킬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힘을 모으면 된다. 이번 만큼은 대한민국의 미래로 가는 법을 만드는 계기와 힘을 발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여성소비자신문

나 의원은 또 “여성에게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고치는 성취가 노력 없이 저절로 우리 입에 들어온 적은 없었다. 여성계가 투쟁하고 노력했던 것”이라며 “남녀 갈등이 아닌 미래를 선도하고자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민주평화당 조배숙 의원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은 모호한 측면이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업무상 위력 부분에 대해 새로운 입법을 만들어 피해자를 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며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 담당) 재판부를 봤더니 여성 판사는 없고 모두 남성이었다. 성폭력, 이혼 등 사건에서 남성 판사는 여성의 관점에서 사건을 보기가 굉장히 힘들다. 이번 사건도 만약 여성 판사가 있었으면 판결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한국여성변호사회 조현욱 회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서'가 적용되는 입법이 마련돼야 한다"며 “이를 국회가 도와주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발제를 맡은 김태명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8월 4일 국민적 관심 속에서 내려진 안희정 사건에 대한 1심 재판은 미투 운동으로 그 실체가 드러난 대표적인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최초의 사법적 판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권력형 성범죄는 가해자가 지위와 권력을 이용하여 피해자의 성적 자기 결정의 자유를 침해하는 범죄”라며 “강간‧강제추행과 더불어 사회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겪는 대표적인 성폭력 범죄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권력형 성범죄는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피해자의 신고로 수사나 재판에 들어가더라도 피해자가 이를 입증하고 주장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처벌상공백’으로 지적되어 왔다”며 “안 전 지사 사건에 대한 1심 판결도 현행 성폭력 범죄의 처벌체계 하에서는 피고인의 행위가 처벌의 대상이 되는 범죄라고 할 수 없다면서 폭행 협박이나 위력의 행사와 같은 행위가 없더라도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를 처벌하는 규정을 도입할 것인지 여부는 입법 정책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고 말했다.

사진=여성소비자신문

김 교수는 이날 안 전 지사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그는 해당 사건에 대한 1심 재판부의 ‘정상적인 판단 능력을 갖춘 성인 남녀 사이에 발생한 사건’이라는 규정을 두고 “재판부가 이 사건을 ‘친밀한 일반 성인 남녀 사이에서 있었던 성관계를 성폭력이라고 고소한 사건’으로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며 “권력형 성범죄는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법하나 내부적으로는 자유롭게 의사를 결정하고 그에 근거하여 행동할 수 없는 수직적 권력 구조하에서 발생하는 유형의 성범죄라는 점을 망각한 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회에는 ▲업무상 위계 및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죄의 형량 강화 ▲업무상 위계 및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죄의 처벌 범위 확대 ▲비동의 간음 추행죄 신설 등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안 전 지사 사건을 계기로 '권력형 성범죄' 및 ‘비동의 간음죄’ 등을 요구하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국회도 이를 법제화하는데 속력을 낸 것으로 풀이된다.

나경원 의원은 ‘경제‧사회적 지위를 이용한 간음죄를 신설하고 가해자를 징역 5년 이하 또는 1천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과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조로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권력형 성범죄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또 민주평화당 천정배 의원은 비동의 간음‧추행을 처벌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의원 등은 현행 강제추행죄를 규정할 때 이를 ‘폭행 또는 협박으로’에서 ‘폭행이나 협박 또는 명백한 동의 없는 상태에서’ 등으로 변경하는 안을 내놨다.

한편 이날 토론에 참석한 윤석희 (사)한국여성변호사회 수석 부회장은 “안희정 사건의 1심 재판부는 (안 전 지사의) 위력은 인정되나 위력을 행사하여 간음, 추행하였다고 볼 증명이 부족하고 피해자의 진술에 기초해 보더라도 이른바 ‘노 민스 노 룰(No means No rule‧비동의간음죄)이나 ’예스 민스 예스 룰(Yes means Yes rule‧상대의 명시적 동의 없는 성관계를 범죄로 처벌)’이 법제화되지 않아 처벌하기 어렵다고 보도했다”며 “이에 그간 비동의 간음죄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어왔으나 보다 적극적인 관점에서 이를 신설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또 “현재 논의되고 있는 비동의간음죄는 폭행, 협박, 위계 및 위력이 없었더라도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간음‘하는 행위도 처벌한다는 점에서 성적 자기 결정권 침해로부터의 보호법익을 충실히 하는 법안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현행 형법 제도상 강간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적극적인 저항이 요구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상황, 심리상태 등 피해자가 저항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피해를 보는 경우를 대비한 입법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윤 변호사는 이에 대해 “피해자가 적극적인 저항 없이 단순한 거절의 의사표시만 하거나 적극적으로 거절하지 않은 경우에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성적인 접촉을 처벌할 수 없는 공백이 있다”며 “‘피해자의 명시적인 동의가 없는 경우’ 또는 ‘피해자의 거절 의사에 반하여 간음한 경우’를 성폭력 범죄요건에 포함시킬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지안 기자  hann9239@daum.net

<저작권자 © 여성소비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