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오피니언 칼럼
감정을 나누지 못하는 것은 대화가 아니다
김진미 빅픽처가족연구소 대표 | 승인 2017.11.21 14:54

[여성소비자신문]하루 종일 당신이 가족과 나눈 대화는 몇 분이나 될까? 아이와 나눈 대화는 과연 몇 분이나 될까? 단 몇 분이라는 말이 의아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대화란 무엇인지, 그 정의부터 살펴보자. 대화는 영어로 conversation인데 이것은 A라는 사람이 말하면 B라는 사람이 대답하는 형식을 띤 문장 형태를 말한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을 conversation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말의 ‘대화’도 마찬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다.

사전적인 의미로 하면 우리는 하루 몇 분이 아니라 몇 시간의 대화를 하면서 살고 있다. 그런데 왜 몇 분의 대화도 나누지 않는다고 말하는 걸까?

아이와 에 일어나기 싫어하는 아이를 깨우는 엄마와 아들의 대화를 생각해보자.

“아들아, 일어나, 학교 가야지.”
“싫어, 졸려, 조금 더 잘래.”
“그러면 늦어, 빨리 일어나.”
“아, 몰라.”
“빨리 일어나. 넌 아침마다 왜 이렇게 힘들게 하니?”
“아, 진짜…”
“벌써 8시야, 그러니까 저녁에 늦게까지 있지 말고 일찍 자란 말이야. 밤에 늦게 자니까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지.”
“학교 가기 싫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얼른 씻어.”

엄마와 아들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것은 대화인가?

대화는 소통의 도구이다. 그런데 아들은 엄마와 소통하고 있는 느낌을 받지 못할 것이다. 일어나기 싫은 마음과 학교 가기 싫은 아이의 마음은 엄마에게 통하지 않았다. 엄마는 알아주지 못했다.

아침마다 일어나기 싫어 투정하는 아들을 엄마는 짜증의 말로 비난한다. 앞으로 일찍 자라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학교 가기 싫은 아들의 마음을 쓸데없는 소리라고 무시해버린다. 이들은 말을 주고받고 있을 뿐 소통하는 대화는 아니다. 아들은 답답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아침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엄마와 아들의 대화가 이런 모습이면 어떨까?

“아들아, 일어나, 학교 가야지.”
“싫어, 졸려, 조금 더 잘래.”
“졸려? 많이 피곤하구나. 어쩌지? 그런데 일어날 시간이 됐는데?”
“아, 몰라.”
“큰 일 났네, 우리 아들이 피곤해서 눈꺼풀이 안 떠지네? 엄마가 좀 도와줄까?” (볼과 눈을 어루만지며 쓰다듬는다.)
“아, 진짜…”
“앗, 눈이 떠졌다. 어제 늦게 자서 피곤하구나? 오늘은 학교 갔다 와서 푹 쉬고 일찍 자자.”
“학교 가기 싫다.”

“학교 가기 싫지? 엄마도 그랬어. 그래도 우리 아들 매일매일 학교 잘 가니까 기특해.”

대화란 감정을 주고받는 것이다. 감정을 듣고 감정을 말하고 감정이 소통하는 것이다. 밤에 늦게 잔 아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싫은 것은 당연하다. 아이가 그 싫은 감정을 말할 때 부모가 그 싫은 감정을 들어주면 감정이 소통된다.

부모가 아이의 싫은 감정을 들어주지 못하는 이유는 걱정과 우려 때문이다. 싫은 감정을 들어주면 아이가 학교에 늦을까봐 걱정이 된다. 아침마다 늦잠자고 늑장부리는 게 습관이 될 것도 걱정이다. 점점 학교 가기 싫어하고 공부에 흥미를 잃어버리면 어쩌나 불안하다. 그래서 아이의 나쁜 감정을 없애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부모의 방법으로 아이의 감정은 해결되지 않는다.

첫 번째 대화의 예에서 엄마는 아침에 힘들지 않으려면 저녁에 일찍 자야한다고 설명해준다. 그러나 아이의 감정을 이해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는 엄마의 충고를 거부하게 된다. 두 번째 대화의 예에서 엄마는 같은 뜻의 말을 했지만 피곤한 감정을 이해받은 아이는 엄마의 말을 기억할 것이다.

학교 가기를 좋아 하는 아이들은 몇이나 될까? 대부분 힘들고 고달프지만 친구가 있고 공부를 해야 하니까 학교에 간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아이가 학교 가기 싫다고 말할 때, 부모는 첫째 그 원인이 어디에서 오는 건지 관심을 가지고 들어보아야 한다. 요즘은 학교 폭력과 왕따 문제 등이 심각하기 때문에 학교생활에 실제적인 어려움이 있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부모조차 무심히 여겼다가 뜻밖의 결과를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 가기 싫은 원인이 특별치 않다면, 부모는 그 감정을 듣고 이해해 주면 된다. ‘아이가 학교가기 싫다고 하니 큰 일 났다’고 생각해서 미리 걱정하고 설교하고 훈계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아이의 마음을 닫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으로 족하다.

가기 싫지만 가야 하는 곳이 학교라는 사실을, 아이도 잘 알고 있다. 단지 그 마음을 엄마가 알아주기를 원할 뿐이다. 엄마의 지나친 염려가 오히려 아이와의 관계를 망치고 대화를 단절시킨 셈이다.

소통은 대화가 될 때 이루어진다. 대화는 감정을 주고 받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가 자녀와 소통하려면 아이의 감정을 알아야 하고 부모가 감정이 담긴 대화를 해야 한다.

 

김진미 빅픽처가족연구소 대표  bigpicturefamily@naver.com

<저작권자 © 여성소비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