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서유리 기자] 최근 설경구 주연의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이 마니아층 사이에서 큰 호평을 받으면서 동명의 원작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수식어가 필요 없는 작가 김영하가 지난 2013년 펴낸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이다. 

이 책에는 전직 연쇄살인범, 과거에 그가 저지른 미제사건들을 추적하는 늙은 형사, 마을에 나타난 수상한 사냥꾼, 젊은 아가씨만 노리는 새로운 연쇄살인사건 등 범죄스릴러를 연상시키는 요소들이 모두 등장한다.

하지만 저자는 범죄 미스터리의 흔하디흔한 클리셰들을 가지고도 전혀 새로운 그만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한때 수의사로 일했고 시집도 한 권 낸 적 있는 일흔 살 노인 김병수는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빼면 여전히 꼿꼿하다.

그는 사라져가는 기억과 사투를 벌이며 새로 출현한 연쇄살인범으로부터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살인을 계획한다.

그가 과연 연쇄살인범으로부터 딸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연쇄살인을 추적하는 안형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하는 의문들을 가지고 독자들은 그의 페이스에 속수무책으로 말려들고 만다.

그는 사라져가는 기억을 붙들기 위해 매순간을 기록하지만 이 기록들도 조금씩 미묘하게 어긋나면서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도 점점 의심스러워진다.

우리의 예상을 여지없이 빗나가게 하는 마지막 결말의 반전과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지는 잠언들, 돌발적인 유머와 위트까지, 정교하고 치밀하게 설계된 이번 소설에서 저자는 삶과 죽음, 시간과 악에 대한 깊은 통찰을 풀어놓는다.

이 책의 첫 페이지를 넘겼다면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에 도달할 때까지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된다. 

어떤 진실들은 사후에야 깨닫게 되듯 책장을 덮고 나면 작품 속 화자가, 또한 작가 김영하가 말하려고 했던 그것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서유리 기자  yulee@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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