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디에 천냥빚을 졌다.’ 대한항공이 광고 문구 하나로 혹독한 대가를 치루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 6월 중순께 영문 홈페이지를 통해 대한민국-케냐 직항노선을 소개했다.

해당 소개글에서 대한항공은 케냐 국민들을 ‘원시적 에너지에 가득찬 토착민들’이라고 묘사했다가 케냐인들의 강경한 반발로 해당 문구를 삭제했다. 케냐인들은 대한항공에 대해 인종차별 및 모욕적 표현을 썼다고 비판했다. 케냐 유력 언론인 캐피탈 FM뉴스 및 AP와 AFP통신에서 이같은 사실을 보도하면서 대한항공이 국제적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케냐는 아프리카 여행하면 1순위로 꼽히는 나라다. 동아프리카지역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안정된 나라 중 하나로 마사이마라-세렝게티 국립공원, 암보셀리, 사바나 평원, 세계 최대의 홍학 서식지 나쿠루 호수, 세계 3대 폭포 절경인 빅토리아 폭포 등 웅장한 자연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간 직항편이 없어 중동을 경유해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비행시간이 거의 하루 가깝게 걸렸다.

대한항공은 6월 21부로 동북아 국가 중 최초로 인천국제공항에서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국제공항 직항노선을 개통했다. 올해 초 지창훈 대한항공 사장에 의해 예고된 바 있는 이 노선엔 226석을 보유하고 있는 A330-300기종이 투입되며 주 3회 운항된다. 사측은 이번 취항으로 비행시간이 13시간 정도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으며 관광 편의 외에도 비즈니스 등 인적 물적 교류를 확대할 것으로도 기대했다.
 
케냐 운항을 위해 대한항공은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지창훈 대한항공 사장이 올 1월 신년사에서 취재 기자단에 케냐 나이로비 직항노선을 운항소식을 공개한 이래 케냐 현지  활동 착수 및 각 여행사와의 공조 작업에 착수했다. 전담부서를 신설해 마케팅을 강화했다.

5월 21일을 기점으로 지상파 등을 통해 ‘아프리카의 관문 케냐’ 광고를 내보냈으며 6월 16일 강남역 인근 후원 카페 ‘유익한 공간’에서 ‘대한항공 사랑 나눔 일일 카페’ 행사를 가지고 이날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기도 했다. 특히 이날 일일 카페엔 조현민 대한항공 상무 겸 진에어 상무도 참석했다.
 
국제적 비난 이어져
 
하지만 이 같은 대한항공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다. 대한항공은 영문 홈페이지 코리안에어닷컴에 인천-나이로비 직항노선 출항 소식을 알리며 다음과 같은 문구를 달았다.

“동북아 최초로 대한항공이 나이로비에 취항했습니다. 나이로비로 가는 여행과 함께 웅장한 아프리카 사바나, 사파리 투어, 원시적 힘으로 가득 찬 토착민(the indigenous people full of primitive energy)을 즐기세요.” 이 문구는 즉각 케냐인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primitive(원시적)’이란 단어가 케냐인들을 마치 원시 미개인인냥 묘사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케냐의 유력 언론사인 캐피탈 FM는 “분노한 케냐인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국가적 공분을 일으킨 대한항공에 대해 해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6월 18일 보도했다.

AP통신은 트위터리안 조지 엔조로의 말을 인용해 “(대한항공의 광고는) 국가적 모욕(An insult to a nation)으로 케냐인들은 원시인이 아니다”고 전했다.

‘콤보스테’라는 또 다른 트위터리안은 “이제 누구나 대한항공이 케냐와 한국을 운항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기가 막힌 마케팅 전략이다”라고 비꼬았다.

AFP통신은 “해당 광고가 케냐인들에게 즐거움 대신 분노를 촉발했다”고 보도했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벤슨 카메리(Benson Kamary)는 더 코리안 타임즈에 기고한 사설을 통해 “대한항공의 인천-나이로비 출항은 1964년 수교 이래 양국간 관계에서 도전적이며 칭찬받을 일이었으나 이번 ‘원시적’발언으로 인해 현지 및 한국내 케냐인들 사이에 거친 분노를 일으켰다”고 밝혔다.

또 아랍권 위성방송인 알자지라 더 스트림의 인터넷 판은 대한항공의 케냐 광고에 대해 ‘시작하자마자 실패했다(Failure to Launch)’고 언급하기도 했다.

르완다의 언론사 더 타임즈는 “부끄러운 줄 알라”며 평론을 내놓기도 했다.

대한항공의 ‘원시적 광고’보도는 AP와 AFP를 통해 영국, 호주, 프랑스, 미국, 아프리카 등지의 각 언론사에 전파된 상태로 미국 최대 일간지인 USA 투데이에도 실렸다. AP와 AFP는 로이터와 더불어 세계 3대 통신사로 꼽힌다. 말 그대로 국제적 망신인 셈이다.

대한항공측은 즉시 공식트위터를 사과를 표함과 동시에 해명에 들어갔다.

케냐에서 대한항공의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무투이 카리우키는 “웹사이트에서 이러한 통지문을 삭제했으며 ‘원시적(primitive)’이란 용어가 사용된 것은 한국어를 영어로 옮기면서 착각한데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 검토 안 했나
 
대한항공 관계자는 원시적 에너지로 표현한 것에 대해 “홍보차원에서 벌어진 문제이다. 국내에서 케냐하면 세렝게티, 사바나, 마사이 족 등 역동적인 이미지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홍보문구를 통해 이같은 이미지를 전달하려다 보니 사소한 오해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에 기자가 “한글에서 영어로 번역된 문장을 검토를 안 해봤나. ‘원시적(primitive)’이란 표현이 케냐인들에게 인종차별적 언사로 들릴 수 있을 지 고려를 해봤나”하고 묻자 해당 관계자는 “타 부서에서 벌어진 일로 모르겠다”고 답했다.

컨슈머리스트란 사이트에서 의견을 밝힌 한 네티즌은 사소한 실수라고 해명하는 대한항공측의 태도에 “실수라면 언제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대한항공은 결례를 단순한 실수로 넘기려고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대한항공의 원시적 케냐인 광고사태를 두고 해외 네티즌간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지 않다. 대한항공측의 설명대로 "번역상의 오류나 광고적 기믹을 차용한 데 대한 오류"라고 옹호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다른 측에선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흑인들에게 있어 ‘육체 능력만 좋은 무식쟁이’란 인종차별적 뉘앙스를 전달할 수 있다며 반박하고 있다. 특히 일국의 국민을 원시적이라고 묘사한 것은 심각한 결례"라며 "미국을 원시적 에너지가 가득찬 나라라고 표현했다고 치자. 어떤 일이 일어나겠나"고 역지사지의 논리를 내놓기도 했다.

한편 케냐는 1963년 독립국으로 선포되기 전까지 케냐인들은 아랍과 서양의 노예산지로 고통을 받아 왔다. 독립된 이후에도 여파가 남아 빈부격차가 매우 심한 상태다. 케냐 국민의 60%이상이 빈민들로 추정되며 절대다수가 흑인들이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는 동아프리카의 관문도시로 불리며 아프리카 내 항공 허브로 에어 인디아와 브리티시 항공, 에미리트 항공, KLM, 카타르 항공, 사우디아라비아 항공, 남아공 항공, 스위스 국제항공 및 버진 아틀랜틱 등 많은 항공사들이 취항하고 있다

고승주 기자  sj.go@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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