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김희정 기자]한국의 리더십 공백 상태를 틈타 일본이 ‘소녀상’ 문제를 자리들 뜻에 맞추라고 강요하는 형국이 벌어졌다. 

일본이 주한 일본 대사와 총영사를 귀국시키고 한·일 통화 스와프 협상 중단을 선언하는 등 보복성 조치에 나섰기 때문. 일본은 한국에 이 같은 보복성 조치에 나선 것에 대해 한국이 2015년에 체결된 ‘12·28 한·일 위안부 합의’를 위반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6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 대사와 모리모토 야스히로 부산 총영사를 일시 귀국시키기로 한데 이어 한·일 고위급 경제 협의와 한·일 통와 스와프 협상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부산의 일본 영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상이 설치된 데 항의하기 위한 조치다.

윤병세 외교장관은 나가미네 대사를 외교부로 부르고 일본 측에 깊은 유감을 표명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일본 정부는 당분간 물러설 생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12월 양국 간에 맺은 위안부 합의가 사실상 깨진 셈이다. 일본은 위안부 소녀상을 세운 것이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위반이라고 보았다. 한·일 협력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해온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이명박 정부 때도 있었지만 양측의 이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법적 책임 인정 혹은 그에 준하는 조치를 요구한 반면 일본은 이에 대해 거부하는 입장을 취했다.

박근혜 정부도 출범 직후부터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는 한·일 관계 개선도 없다”며 강조했다. 그러다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인 2015년에 ‘위안부 문제의 연내 타결’을 강조했고 결국 그해 12월 28일 위안부 협상이 전격 타결됐다. 

이 타결은 정부 내부에서 조차 “연내 해결에 너무 집착한 것 아니냐”는 말이 있었다. 겉으로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방한한 기사다 후미오 외무상과 담판을 지은 모양새였지만 이병기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과 야치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이 사전 물밑 접촉을 통해 큰 틀에 대해 이미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한 이 배경에는 미국 정부가 한·미·일 공조 체제 강화를 위해 한·일 관계 정상화를 강하게 요구한 것도 작용했다.

반쪽 짜리 위안부 합의…화해·치유재단 출범 잡음 

외교부는 ‘12·28’ 위안부 합의에서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 ‘아베 총리의 사죄·반성’이라는 표현을 얻어낸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도덕적'과 같은 수식어 없이 책임을 분명히 인정한 것이 성과라고 했다. 여기에다 일본 정부 예산 10억엔으로 위안부 재단을 세우기로 한 것은 사실상 ‘법적 배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자평했다. 이에 대해 일본은 “법적 배상은 아니다”고 못박았다.

이 같은 불씨가 남은 상태에서 양측은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임을 확인한다”고 발표해 버렸다. “단 일본이 합의된 조치를 성실하게 이행한다면”이라는 전제가 붙긴 했지만 이는 더 이상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제기해선 안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윤병세 장관이 “가능한 대응방향에 대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한편 위안부 합의 당일 기시다 외무상이 “(소녀상이) 적절히 이전되는 것으로 안다”고 하는 등 일본에서는 소녀상의 이전·철거를 기정 사실화하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후 우리 외교부가 “민간이 세운 소녀상에 대해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지만 소녀상에 대한 일본의 요구는 계속 됐다.

12·28 합의에 띠라 ‘화해·치유재단’이 출범하는 과정에도 잡음이 생겼다.

아베 신조 총리의 심복인 하기우다 고이치 관방 부장관이 “재단 설립 기념식을 하는 날 일본 대사관 앞에 소녀상이 그대로 남아 있거나 거기서 집회를 하는 것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등 소녀상 철거를 지속적으로 주장하며 출연금 보내는 것을 지연하다가 일본은 지난 해 8월 31일에야 10억엔의 출연금을 보냈다.

일본이 소녀상에 집착하는 이유

일본이 소녀상에 이처럼 집착하는 것은 소녀상이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야만성을 국제사회에 고발하는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해외 각지에 세워진 위안부 소녀상 철거에 외교력을 집중해 왔다.

일본은 주한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이 ‘빈 협약에 반한다’는 주장도 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 일본 영사관 앞에 소녀상이 세워지자 이번에 확실하게 정리를 하자며 보복성 조치에 나선 것이다.

‘미래 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 회원 10여명이 부산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세웠을 때 일본은 스기야마 신스케 외무 차관이 이준규 주일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철거를 요구한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지난 4일부터 일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한국이 제대로 대응하길 바란다”며 부산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등 적극적인 외교 공세에 나섰다. 6일 일본 외무성은 주한 대사와 부산 총영사 일시 귀국조치를 취하고 재무성은 스와프 협상 중단과 고위급 경제협의 연기를 잇따라 우리 측에 통보하는 등 적극적인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일본 정치인들도 너도나도 언론에 얼굴을 비취며 “한국이 받을 것은 받아놓고 합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8일 아베 총리가 도쿄 NHK 방송에 출연해 “일본은 10억엔을 출연했으니 다음은 한국이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비난하면서 부산 소녀상 문제는 순식간에 한·일간 외교 문제로 비화됐다.

일본 내에서도 반대의 여론은 있다. 오카다 의원은 “한·일 위안부 합의 직후 가시다 후미오 외무상이 아베 총리 명의로 된 사죄문을 읽었을 뿐 한 번도 총리 스스로 사죄한 적이 없다”며 이 같은 태도로는 한·일 관계를 제대로 풀 수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후손들까지 사과하는 숙명을 짊어지게 할 수 없어 합의를 결단했다”는 입장을 강조하면서 “한·일 정부 간 합의를 역행하는 건 건설적이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아베 총리의 강경한 자세는 위안부 합의에 불만을 품은 일본 우익을 달래는 측면도 있다. “위안부는 전쟁 때 벌어진 특수한 매춘이다. 일본만 매춘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패전국이라는 이유로 전후 70년 이상 사과를 강요당하고 있다” “한국이 역사를 이용해 국제사회에서 일본을 망신 주고 툭 하면 합의를 뒤집는다”는 것이 우익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최종건 연세대학교 교수는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진정한 사죄가 있어야 한다”며 “독일은 전후 수 십년간 유대인 학살에 대한 사죄를 잊지 않기 위해 기념관을 짓고 몇 분에 한명씩 유대인이 죽어나갔다는 것을 기념하는 시계를 기념관에 세워 두었다. 그들은 그 시계를 보며 그 때 당시를 기억하고 그 같은 역사적인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후손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모호한 10억엔 배상의 의미  

이처럼 한·일 위안부 합의가 외교 문제로 번지면서 일본 정부가 지난해 9월 내놓은 10억엔(약 103억원)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위안부 합의에 비판적인 국내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100억원 남짓한 돈을 받고 국민의 자존심을 팔아넘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총리가 책임을 인정하고 정부 예산으로 10억엔을 내놓은 것은 사실상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상금 성격으로 풀이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 여부는 위안부 협상의 핵심 쟁점이었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은 이미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끝난 문제라고 주장해 왔다. 일본이 1990년대 설치한 ‘아시아 여성기금’ 등 민간 기금으로 피해 여성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고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민간 기금이 아닌 일본 정부 예산을 내놓는다는 점을 우리 정부는 의미 있는 성과로 자평했다. 다만 2015년 합의에서 배상금이라는 명확한 단어를 사용하지는 못했다.

일본 국내 정치 상황을 감안한 결과였다. 대신 10억엔의 성격을 ‘일본의 책임 이행 조치’란 모호한 말로 규정하고 각자가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뒀다. 결과적으로 이 같은 모호성이 현재 우리 정부의 발목을 잡았다.

아베 신조 총리 등 일본 정치인들이 이 10억엔이 일본 공관 앞 위안부 소녀상 철거·이전의 대가처럼 얘기하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일본 정계는 한국이 정치적으로 어수선한 틈을 타 언론과 정치 전문가들 사이에서 “친한파 마저 한국에 등을 돌렸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으로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은 일본이 보복 조치를 발표한 지난 6일 BS후지TV에 출연해 “한국은 중요한 나라임이 틀림없지만 교섭하거나 이런 저런 일을 의논해 가기엔 어지간히 귀찮은 나라”라면서 “(한국 정부가 부산 소녀상 설치를 용인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아니냐”고 했다. 

니카이 간사장은 7일 TV 아사히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10억엔과 관련해) 싫으면 안 받았으면 된다”면서 “받을 것은 받은 뒤에 이렇게 나오는 건 이상하다”고 했다.

정계원로인 고가 마코토 전 자민당 간사장도 6일 니카이 간사장과 함께 BS후지TV에 출연해 “(일본 정부의 보복은) 대단히 스피드가 느껴지는 대응 조치로 지지한다”며 “최종적으로 한·일 정상이 합의했다. 이건 지켜야 하지 않나. 해야 할 일은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한국 정부가 받을 것은 받아 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나라 취급하고 있다. 

일본은 합의 직후부터 국내 정치권과 언론 등에 “10억엔은 법적 배상이 아니다”고 주장했고 10억엔 지급이 소녀상 철거·이전과 연계된 것처럼 설명하기도 했다. 

이런 일본의 반응이 국내에 전해지면서 “10억엔을 받고 소녀상 이전을 이면합의해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처럼 10억엔의 성격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돈은 지난해 7월 설립된 화해 치유 재단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건네졌다. 

지난 10일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한·일 양국정부가 2015년 말 위안부 합의를 한 취지와 정신을 존중하는 게 중요하고 이 합의를 착실히 이행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면 합의가 존재한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른, 전혀 사실이 아니다. 위안부 합의는 양국 외교장관이 합의 당시 발표한 그대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야권에서 제기하는 일본과의 소녀상 철거 관련 이면 합의 의혹을 부정했다.

대선주자들 “다음 정권 위안부 합의 재협상”

한편 주요 대선 주자들은 일본 총영사관 소녀상 문제를 계기로 터져 나온 현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재협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문제인 전 대표는 합의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보면서 새로운 협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는 11일 "우리 정부가 소녀상 문제에 대해서도 뭔가 이면에서 합의하고서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농단 속에서 이뤄진 위안부 합의는 돈 10억엔만 받았을 뿐 공식적인 사죄조차 받지 못한 무효 합의”라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새롭게 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산 소녀상을 두고 일본이 주한대사를 소환하고 통화스와프를 중단한 조치에 대해 그는 “정부는 이제라도 그때 했던 합의 내용을 국민 앞에 당당하게 밝히라”고 촉구했다.

또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는 대표적 외교 적폐였다”며 “일본이 해야 할 일은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죄하는 것이고 이를 분명히 하는 새로운 협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측은 이 문제가 양국 간 외교 사항이라는 점 때문에 재협상을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 전 총장은 지난 2015년 12·28 한일 합의 직후 환영의 입장을 밝히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통령이 비전을 갖고 올바른 용단을 내린데 대해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그는 이에 대해 “위안부 합의 축하 발언과 관련해 많은 오해가 있다. 오랫동안 현안이 된 문제가 합의된 것에 대해 환영한 것이었다”며 “다만 궁극적인 완벽한 합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주는 수준이 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최근 부산 소녀상 건립과 관련해 일본 정부로부터 여러 이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근시안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과거를 직시하는 바탕으로 미래 지향적인 방향으로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성남시장,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 안희정 충남지사, 박원순 서울 시장, 남경필 경기지사는 이미 세워진 소녀상에 대해 “세워진 이상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은 “합의를 했기 때문에 재협상이 매우 어려운 현실이지만 다음 정부는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악화된 한·일 관계 해법은

이번 사태로 악화된 한·일 관계에 대한 해법에 대해 대권 주자들 대부분은 우리나라보다는 일본 측의 태도 변화를 요구했다.

문 전 대표는 “이웃 나라에 가했던 고통에 대해 좀 더 책임지고 반성하고 사과하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교관 출신이 다수 포진한 반 전 총장 측은 양자·다자간 대화를 통한 관계 개선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이재명 시장은 “아베 총리가 어떤 선택이 일본에 도움이 될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했고, 안철수 의원은 “양보할 수 없는 역사 문제가 경제 안보에 약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미국 중국 등과의 다자 외교로 풀어야 한다”고 했다. 

안희정 지사는 “일본이 국제사회에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원순 시장은 “우리 정부가 일본과의 협상에서 밀리지 않는 원칙을 고수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유승민 의원은 “안보, 경제, 역사 문제는 최대한 분리해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했고, 남경필 지사는 “일본 측의 사죄 등 추가적인 진정성 있는 실천을 요구한다”고 했다.

소녀상 철거 문제로 인해 일본이 경제 스와프 단절 등의 카드로 압박하는 것에 대해 여성계의 한 관계자는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충분한 사과를 통해 용서의 단계로 나아가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독일은 아직도 나치의 범죄에 대해 반성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와는 대조적인 모습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희정 기자  penmoim@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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