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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에서 선두로' 현대 알파벳 카드의 비밀소비자 주도 시대 2.0
고승주 기자 | 승인 2012.09.28 11:41

놀라운 혁신엔 항상 공통점이 있다.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적용되기 전에는 그 영향력을 주변에선 예단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반면 효력이 발휘된 후엔 간단히 영향력을 인정하게 된다. 현대카드의 성공 사례도 마찬가지다. 카드 시장에서 꼴찌였던 현대카드가 마케팅을 통해 2위로 발돋움한 예는 혁신의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체계적 분류에서 브랜드 포지셔닝 출발
조직문화가 품은 혁신, 결재까지 10.5시간

2003년 현대카드의 분위기는 암울했다. 신용카드 대란으로 6300억원의 적자를 봐서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심각했던 것은 위기를 뚫고 갈 해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유력 카드사들처럼 매출을 유지할 다수의 고객을 유치한 것도 아니었다. 2002년 현대카드의 점유율은 1.7%, 업계 최하위였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이 뽑은 카드는 정태영 사장이었다. 정 사장이 현대카드 및 현대캐피탈의 대표가 된 것은 불과 43세. 아무리 어려운 시기였다지만 현대카드 및 현대캐피탈은 현대차그룹에서 금융부문을 담당하는 기업들로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자리였다.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체계적인 브랜드 관리

정태영 사장이 현대카드의 수장으로 임명되자 카드 상품 라인업과 마케팅에서 즉각 변화가 일어났다. 알파벳카드로 대표되는 현대카드의 라인업이 그것이다.

현대카드를 보면 내가 지닌 카드가 어떤 카드인지 어디서 혜택이 주어지는지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카드의 알파벳은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핵심 서비스를, 숫자는 혜택의 수준을 뜻한다.

이러한 분류법은 그다지 낯선 것은 아니다. 제조업에서 로트(LOT)번호, 방산업에서 제식번호를 통해 품목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것과 원리는 같다.

하지만 현대카드 이전 카드사들은 이러한 분류법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신용카드를 만들기 전까지 소비자들은 어떤 카드사에 어떤 카드가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알지 못했다. 광고도 신용이나 화려한 생활 등 모호한 개념에 집중해서 만들어 졌을 뿐 소비자들에게 카드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는 주지 않았다.

반면 현대카드는 고객의 각 라이프스타일을 알파벳과 접목시켜 표현했다. 다수의 카드를 사용하고 있지만 용도는 한정되어 있다는 소비자의 소비패턴을 분석해 알파벳 별로 서비스를 달리 했다. 2003년 5월 업계의 기념비 적인 카드인 현대 M카드가 출시됐다. 국내 최초로 선포인트 제도인 '세이브 포인트'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M카드가 성공하자 H, R, O, A, K, V, F, T, M 등의 후속 카드들이 잇따라 출시됐고 '26가지 카드생활'등의 광고를 통해 어떤 알파벳에 어떤 서비스가 제공되는 지 간결하고 명확하게 표현했다.

현대카드 만의
소비자 미학 ‘간결성’

마케팅 업계에서 현대카드의 차별화 콘셉트는 카드 디자인에서 절정에 달한다고 평가받는다. 2000년대 이전의 신용카드들은 보통 미국의 디자인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었다. 업계는 카드의 주 이용층이 성인인 만큼 보수적인 디자인이 '신용'을 심어주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대카드는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플레이트 디자인을 선택했다. 카드 중앙에 알파벳을 강조하고, 카드 측면에 색을 넣는 컬러코어, 후면 마그네틱 선에 혜택 아이콘을 넣는 등 타사와 차별화된 시도를 거듭했다. 단순히 다른 것만이 아니라 고급과 품격이 담겨져 있는 디자인이었다.

이러한 디자인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다. 세계 3대 산업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카림 라시드의 손을 거친 명품들이다. 캐나다 디자인 영웅상, 다임러 크라이슬러상, 조지 넬슨상을 수상한 바 있는 카림 라시드는 재질, 색감, 시각적 효과, 상품의 특성을 하나의 핵심 기표로 표현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디자이너다.

현대카드의 혁신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더 블랙'은 단순히 집에 돈이 많다고 해서 발급 받을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대학총장, 장관급 공무원, 자산 1000억원 이상 기업의 CEO, 정치가 등 명사들에게만 초청 발급되는 카드다. 연회비 200만원이지만 가입하자마자 발급되는 상품권(바우처)만으로도 간단히 연회비를 상회한다.

'더 레드'로 대표되는 프리미엄급 카드는 비록 사용액과 연회비 등 제한이 적지 않지만 혜택에서 결코 부족함이 없는 카드들로 상류층에게 각광받고 있다.

   
 

혁신의 밑바탕 조직문화

결과는 명료했다. 정태영 사장 취임 후 현대카드는 2년 만에 적자에서 탈출, 600억원의 이익을 거두며 흑자 전환했다. 카드업계에 혁명을 불러일으킨 M카드는 단일 카드로만 무려 830만명의 고객을 유치하고 있다. 2009년 2분기엔 숙명의 라이벌 삼성카드를 제쳤다. 2004년 꼴찌였던 현대카드가 삼성카드를 라이벌로 지목하는 광고를 보냈을 때 업계의 그 누구도 그 가능성을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현실이 되었다. 젊은 CEO의 결단이 회사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콘셉트, 파격적인 광고, 품격있는 디자인이 모든 혁신을 이룬 것은 아니다. 현대카드의 회의실에선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근거없는 주장, 잘못된 주장은 직급과 관계없이 지탄을 받는다.

10.5시간으로 대변되는 신속한 의사결정 시스템도 유명하다. 통상 수십의 중간 단계를 거쳐야 수주일에서 수개월이 지나서야 결제가 되는 타 회사에 비해 현대카드는 결재권자가 결재를 질질 끌고 있으면 즉각 감사실에서 경고를 보낸다. 결정된 사안이 지체없이 실행에 들어간다.

현대카드의 혁신이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뒤에서 묵묵히 현대카드를 지탱하는 조직문화 덕분이다.

소비자 포지셔닝의 다변화

현대카드는 수년 동안 슈퍼매치(스포츠), 슈퍼콘서트(문화공연), 슈퍼토크(강연), 컬처 프로젝트(모든 장르 총괄) 등 슈퍼시리즈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수년 간 이어지고 있는 현대카드의 문화마케팅은 소비자로 하여금 카드는 단지 카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사상 등 다양한 삶의 부분에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했다.

현대카드의 성공 사례는 소비자들이 좀 더 상품에 밀접해졌다는 결과 외에도 앞으로 상품과 소비자 간 더 많은 변화가 발생할 수 있음을 가늠케 한다. 현대카드의 사례가 국내 대학의 마케팅 수업에서 필수적으로 거론되는 것, 수없는 관련 서적이 나오고 있는 것, 해외 유수의 마케팅 업체가 주목 하고 있는 것,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다.

고승주 기자  sj.go@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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