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CCP, 친환경 등 각종 식품안전인증마크를 단 제품이 대형마트나 소매점에 가득 진열되고 있다. 일반 제품보다 다소 비싼 가격이지만 주저없이 손에 드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다. 이유는 바로 안전. 건강을 담보로 한 문제인 만큼 가격에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증제품에서마저 허위인증, 이물사고 등이 발생하면서 정부의 식품안전대책에 허점이 드러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HACCP는 정부가 주관하는 식품안전인증제도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제도다.

제조업의 안전관리는 일반적으로 제조가 끝난 완제품만을 점검해 안전성 여부를 결정하지만 HACCP은 식품의 생산·가공·유통·판매 등 식품과 관련된 단계별 주요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해요소를 점검해 사전에 사고를 예방하는 제도다.

식품안전사고가 연이어 발생하자 정부는 2006년부터 단계적으로 HACCP 인증 의무화를 도입해 현재는 총 2500여개 품목의 식품이 HACCP의 관리 하에 있다.

그러나 HACCP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보건복지위 최영희 의원이 공개한 2011년 국감자료에 따르면 2010년 HACCP 인증업체 이물발견 보고가 의무화한 이래 이물질 보고 건수가 전년 대비 6배 정도 급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만이 아니다. 올해 4월엔 HACCP 인증을 발급하는 공무원 두 명에게 수천만원대 뇌물과 향응을 제공하고 그 댓가로 HACCP 인증을 받은 식품업체 대표가 경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이 업체는 비위생적인 시설에서 식품을 제조하고 한강상수원보호지역에 무단 폐수를 방출했지만 뒷돈을 받은 관할 식약청 공무원으로 인해 HACCP 인증을 받을 수 있었다.

HACCP 인증 덕분에 이 업체에서 판매한 김치와 순대는 2008년부터 3년간 보육시설이나 학교 400여 곳에 공급될 수 있었으며 추가로 HACCP 정부지원기금 3억원을 타낼 수 있었다.
같은 달 보건복지위 이낙연 의원은 HACCP 인증업체에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제조단계에서 총 175건의 이물혼입사고가 발생했다며 가장 많이 혼입된 이물로 벌레를 지적했다.

이 의원은 “HACCP 인증을 받으려면 공정단계에서 해충 유입을 막기 위해 방제시설을 갖추도록 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은 해당 단계에 대한 업체의 실행은 물론 관련 기관의 관리감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HACCP의 문제점은 평가에서도 드러난다. 전문가들은 현행 HACCP 평가는 주로 안전시설과 설비, 그리고 법률적인 부분을 위주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책임여부를 가리기 어렵다고 말한다.

한국식품연구원 김명호 박사는 “시설과 법률적인 부분 위주의 평가제도로 인해 생산현장과 관리 당국 모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며 “시설에 대한 평가 위주로만 제도를 진행하면 문제가 생겼을 때 시스템의 문제인지 시설의 문제인지 알 수 없다”고 전했다.

한계에 부딪힌
친환경농산물 관리

친환경농산물 제도는 2001년 친환경 농법을 도입해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토양오염을 막으며 나아가 농가 수익을 확대하는 제도다.

재배과정에서 농약 등과 위해요소를 배제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확량은 떨어지는 것이 단점. 그래서 가격이 일반 농산물보다 높지만 안전한 먹거리를 원하는 소비자들 덕분에 지속적으로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친환경농산물에서 지속적으로 농약사용이 적발되고 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친환경농산물에서 농약이 검출돼 행정처분을 받은 건수는 무려 1만4000여건에 달한다.

농약없이 재배가 어렵자 농가가 몰래 농약을 사용한 것이다. 또한 농약을 쓴 농산물을 친환경농산물로 둔갑해 판 유통업자도 적발됐다.

관계자들은 친환경농산물 인증 농가가 2001년 4천678가구에서 2010년 16만628가구로 급증하면서 주무부처인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하 품관원)의 관리능력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지적하고 있다.

품관원 내 친환경농산물 인증관리를 담당하는 인원은 총 150여명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주요 업무에 밀려 예방대책에 투여할 자원과 시간은 전무한 실정이다. 이에 품관원은 친환경농산물 인증을 민간 기관으로 이양하고 특별사법경찰관이 친환경농산물 사후 관리에 참여하게 하는 등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품관원 자체는 사후관리 업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생산자의 자발성 강조

HACCP과 친환경농산물 등을 면밀히 살펴보면 제도 자체는 체계적으로 잘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HACCP의 경우,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등 국제 기준에 따라 전 세계 공통적으로 적용되고 있으며, 친환경농산물 또한 엄격한 검증기준과 소비자가 인증번호로 제품을 확인할 수 있는 등 세세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마련했다.

하지만 이러한 식품안전시스템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주된 이유는 식품안전대책을 보완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이 정부가 아닌 생산자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정부가 기준을 제시하면 생산자가 이에 맞추는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제도의 취지가 약화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국식품연구원 김명호 박사는 HACCP에 대해 “인증서가 없으면 납품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업자들은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위생 시설을 들여 놓는다”라며 “인증서를 받지 않더라도 업체가 식품위생관리법 등 기본법만 준수할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안전한 식품을 만들 수 있다”고 전했다. 즉 업체의 의지가 중요한 것이지 인증여부가 안전여부를 100%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창길 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농가 스스로의 의지를 강조했다. 야음을 틈타 몰래 농약을 사용하는 것 자체를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처벌을 통해 어느 정도 위반 행위를 억제하더라도 전반적인 신뢰 향상을 위해선 농가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김 위원은 “친환경농산물 시장을 활성화하려면 소비자 신뢰가 필수인 만큼 농가 스스로 의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전했다.

고승주 기자  sj.go@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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