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김영 기자] 경주지진 여파는 산업계 전반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의 방진시스템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는가 하면, 몇몇 보험사들의 자기 잇속만 차린 몰지각한 행동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사회 일각에선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고 그로인한 인명 및 재산 피해와 관련 집단 손해배상 청구소송전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경주지진 당시 방진시스템이 돋보인 귀뚜라미보일러. <사진제공=뉴시스>

경주지진 직후 세간의 관심은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의 관리 실태 및 지진 이후 몇차례 가동 중단 사태가 발생한 현대차 공장의 정상 운행 여부 등에 맞춰졌다. 시설 파손 시 재앙급 피해가 예상되는 원전과 가동중단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막대한 자동차산업이다 보니 그에 따른 우려가 컸던 것이다.

이와 달리 여타 민간기업에 대해선 그 관심도가 현저히 낮았다. 지진에 따른 피해가 특별히 없었던 것은 물론, 이들 회사 대부분이 '천재지변에 의한 피해 발생시 책임지지 않는다'는 내부규정을 세워뒀고 현행법상 이를 제재할 근거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부 보일러 회사와 보험사들은 지진 사태 이후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 잡았는데, 그 이유는 사뭇 달랐다.

보일러 회사들의 경우 남들보다 앞서 도입한 방진시스템이 지진을 통해 빛을 보는가 하면, 규정에도 없는 피해구제 노력으로 소비자들의 호감을 샀다.

이와 달리 일부 보험사에서는 지진 발생 후 신청이 급증한 화재보험 지진특약 관련, 판매를 중단하거나 가입 조건을 강화해 논란을 자초했다.

이런 가운데 시민단체 중심으로는 "지진 등에 의한 소비자 피해 구제 차원에서 현실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지진 이후 호감 얻은 보일러 회사

두 차례 지진 직후 경주와 그 일대 귀뚜라미보일러 수리점에는 보일러 고장 신고접수가 폭주했다. 지진 발생 후 3500여건이나 되는 수리 신고가 들어온 것으로, 그 중 대부분이 작동 중단에 대한 문의였다.

보일러 집단 고장 논란으로 이어질 뻔한 이 사건으 이후 되레 귀뚜라미보일러와 이 회사의 방진시스템에 대한 관심으로 변했다.

작동 중단의 원인이 보일러 내 설치된 ‘지진감지기’가 제대로 작동했기 때문으로 확인됐기 때문으로, 재작동 또한 재가동 버튼만 누르면 해결됐다.

앞서 귀뚜라미보일러는 20년 전부터 지진에 의한 폭발이나 화재 등 소비자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차원에서 자사 전 모델에 지진감지기와 가스누출탐지기를 장착해 판매해 왔다.

보일러에 지진감지기를 장착해 판매한 사례 자체가 국내 처음이자 유일한 것으로 귀뚜라미 측은 이에 대해 “고층아파트와 오피스텔이 많은 국내에서 지진이 발생할 경우 가스보일러의 안전 문제가 크게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며 방진시스템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지진파동 속 귀뚜라미보일러가 두각을 보이자 업계 경쟁자인 캐리어에어컨은 지진 피해 고객을 대상으로 에어컨·보일러 무상 점검과 수리비 지원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천재지변에 의한 피해는 보증기간에도 유상수리가 원칙이었으나, 이번에는 보증기간 중인 제품에 대해 무상수리 해주고 보증기간이 지난 제품에 대해서도 수리비 50%를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동부화재는 경주지진 이후 화재보험 지진특약 판매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진 이후 잇속만 챙기다 몰매 맞는 보험사

경주지진 이후 정부에서는 개인별 피해보상에 대해선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이에 소비자들 사이에선 피해구제를 위한 방안으로 지진 피해 보험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

실제 국내에선 지진 피해를 보상해주는 상품들이 존재한다. 풍수해보험, 재산종합보험, 화재보험 지진특약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중 풍수해보험은 지진을 포함해 각종 재난에 대비하는 정책성보험으로, 삼성화재·NH농협손해보험 등에서 운영하고 있다. 재산종합보험 역시 지진을 포함해 낙뢰, 홍수, 폭발 등 모든 위험에 담보를 제공하는 보험으로 현대해상·KB손보·한화손보 등이 판매하고 있다.

다만 풍수해보험이나 재산종합보험은 경우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선 일반인이 쉽게 가입하지 않는 상품이다 보니, 경주지진과 관련해서도 보상 신청자가 많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이들 보험에 대한 추가 가입자 역시 많을 것으로 예측된다.

화재보험 지진특약 또한 이전까지는 인기 있는 상품은 아니었다. 이에 지난 2014년 기준 이 특약에 가입한 화재보험 고객은 전체 가입건수의 0.14%에 불과한 2187건에 불과했다.

그러나 경주지진 이후로는 화재보험 지진특약 가입을 문의하는 이들이 경주와 그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크게 늘고 있다. 지진 위협이 현실화되자 가장 손쉽게 피해를 구제 받을 수 있는 대안으로 지진특약 가입을 선호하는 모습이다.

이와 관련 현재 보험업계에서 판매되는 지진특약의 경우 통상적으로 월 400원의 보험료를 지불하면 지진 피해발생시 최대 1억원까지 보상받을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일부 손해보험사에서 해당 상품 판매를 갑자기 중단하거나, 가입 조건 자체를 대폭 상승해 고객들의 상품 가입을 막고 있다. 지진특약 판매를 중단한 보험사는 동부화재와 한화손보이며, 현대해상은 강화된 가입조건에 따라 한시적인 특약을 판매 중이다.

이들 업체가 지진특약 판매 정책을 변경한 것은 이전까진 지진이 그다지 큰 생활위험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를 싸게 판매해 이득을 볼수 있었으나, 경주지진 이후 지진 위험이 실제화됐고 그에 따른 추가 손해율 상승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집단 소송 가능성도 불거져

지진에 대응하는 우리 업들의 이중적인 태도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시민단체 일각에선 일본의 사례처럼 대규모 지진 피해 발생시 집단 손해배상소송이 이어질수도 있을 것이란 의견도 제기됐다.

도호쿠 대지진 이후 일본에서는 여러 건의 집단 해배상 청구소송이 제기됐고, 현재까지도 이를 둘러싼 법정 공방이 진행 중인 것. 쓰나미가 몰려왔을 당시 직원과 학생들에게 적절한 대피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은행과 지자체 등을 상대로 해자 유가족들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한편 한국소비자원에서는 지진 피해 소비자들을 위한 대책 마련 관련 아직까진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진에 의한 보상 책임 등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지 등에 대해 현재까지 뭐라고 할 만한 판례 자체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라며 “경주지진 이후 소비자원에 접수된 피해상황에 대해서도 제대로 통계자료가 나오지 않아 그에 따른 대책을 수립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영 기자  young@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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