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로 돌아가는 김포공항 미화원들의 뒷모습.

[여성소비자신문 김영 기자] 김포공항 환경미화원들이 파업을 선언했다. 장시간 노동과 보장되지 않은 휴식시간, 공항공사 출신 관리직 직원의 도를 넘어선 성추행에 대한 항의표시였다. 비정규직이란 불안정한 고용신분 속 싫어도 싫은 내색을 하지 못하고 온갖 부당함을 참아와야만 했던 이들이 “이제 더 이상은 못 참겠다”며 들고 일어선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시위는 우리 사회 내 취약계층 여성들의 인권수준이 아직까지 얼마나 열악한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사람이 사랍답게 살아가기 위한 ‘인권’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평등권’,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생존권(사회권)’, 생명의 가치를 존중받을 ‘생명권’ 등으로 이뤄져 있다. 또한 인권은 그 사회의 건전성과 지속적인 발전 가능성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주요 척도 중 하나로도 꼽힌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군부독재 시절에 비해 인권수준이 상당히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여러 통계지표를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또한 심각한 인권침해가 UN에까지 보고된 북한은 물론 인근 중국이나 러시아 그 외 주변국들과 비교해봐도 인권문제가 크게 두드러지는 편은 아니다.

다만 여전히 인권 사각지대가 존재, 인권침해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것 또한 부인못할 우리의 현실이다. 특히 최근 발생한 김포공항 환경미화원 파업 사태와 같이 사회 취약계층 그 중에서도 여성의 경우 성(性) 인권까지 위협받고 있다.

공항에서 자행된 약자 대상 인권유린

지난 16일 공공비정규직노조 서울경기지부 소속 김포공항 비정규직 미화원 40여명은 열악한 근무환경과 관리자들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하며 26일 전면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이들은 서울 강서구 한국공항공사 앞에서 ‘108배 규탄대회’를 열기도 했다.

앞서 12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파업투쟁 결의대회와 함께 삭발식이 거행됐는데, 이 자리에 참석한 김포공항 미화원이자 공공비정규직노조 서경지부 강서지회장 손경희(51·여)씨는 “처음에는 두려웠다. 하지만 인간답게 살고 싶어 이렇게 모였다”며 삭발식 참가 이유를 밝혔다.

이날 손 지회장은 “인간 대접을 해달라”며 그동안 사내에서 자행된 공항공사 출신 관리자들의 횡포와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했다.

손 지회장 등에 따르면 현재 김포공항 미화원 140여명은 국내선·국제선 등 김포공항 내 모든 시설의 청소를 담당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주말과 명절 없이 하루 11시간 근무하며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식의 중노동을 반복하고 있다.

휴식시간도 부족하기 그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화장실 옆 자재창고에서 하루 30분 쉬는 게하루 중 그나마 맘 편히 쉴수 있는 유일한 휴식시간인 것. 이외 시간에는 잠시 휴식이라도 취할려고 하면 관리자들의 눈치를 봐야 했고, 심할 경우 시말서까지 써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최근에는 휴게실 개선을 청소용역업체에 요구했다가 그나마 있던 의자까지 없어져 휴게실에 가도 앉을 수도 없게 된 상황이다.

김포공항에서 근무하는 미화원 A씨는 자신들의 열악한 노동여건에 대해 “커피 한잔만 마셔도 시말서, 동료들과 잠시 얘기만 해도 시말서를 쓰라고 했다. 5분도 쉬는 꼴을 못 본다. 소장, 본부장은 ‘그렇게 쉬고 싶으면 집에 가라’고 수시로 압박했다. 시말서를 1년에 3번 작성하면 해고를 당했다”고 설명했다.

강도 높은 노동에도 불구하고 임금 수준 또한 상당히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손 지회장은 “공항에서 30년을 종사했지만 돌아오는 건 최저임금과 망가진 몸뿐”이라며 “탑승객이 몰리면 면세점 쇼핑백만으로도 100리터 쓰레기봉투 150개가 가득 찼다. 손목, 허리 등 안 아픈 사람이 없다. 그렇지만 임금은 기본급 평균이 약 126만원 수준으로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더군다나 50~60대 여성이 대부분인 김포공항 미화원들은 공항공사 출신들로 이뤄진 용역업체 관리자들로부터 폭언과 비하 그리고 성추행까지 당해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손 지회장은 “처음 입사하고 간 회식에서 당시 본부장이 나를 자기 무릎에 앉혔다. 어떻게 할 틈도 없이 혓바닥이 입으로 쏙 들어왔다”며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용역업체 관리자로부터 추행과 술접대 강요를 비일비재하게 당했다”고 분노했다.

미화원 A씨는 “노래방에서 관리자에게 가슴에 멍이 들도록 성추행을 당해서 자살기도까지 했다”며 “성추행을 당하면서도 잘릴까봐 말하지 못했다. 인권침해를 당하면서도 그게 인권침해인 줄 몰랐다”며 울분을 토했다.

이뿐 만이 아니다. 한 미화원의 경우 관리자로부터 “미화원도 서비스직인데 웃지 않는다”는 지적을 들은 뒤 해고까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일 국회를 찾아 파업 배경에 대해 밝히고 있는 김포공항 미화원들. 가운데 남성은 더불어민주당 윤후덕 의원.

비정규직 여성들의 위태로운 인권

중고령층 비정규직 여성들에 대한 직장 내 인권유린은 김포공항만의 문제가 아니며 갈수록 악화되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는게 더 큰 문제다.

서울여성노동자회 관계자는 “직장 내 성희롱 상담이 2013년 8.9%(236건)에서 지난해 22.0%(508건)으로 2.5배 증가했다. 정규직의 경우 30~34세가 26.1%로 가장 높게 나타난 반면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50대 이상이 31.7%로 가장 높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연령대일수록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직장 내 지위가 취약한 중고령층 여성들이 인권유린 및 성폭력 위협에 쉽게 노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여성이면서 비정규직이고 나이도 많다는 점 등이 상사나 고용주에게 약점으로 잡히고 있는 형국”이라고 부연했다.

여성 비율이 월등히 높은 청소 노동자 보직과 관련, ‘청소업무’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문제를 지적하는 의견들도 늘고 있다.

미화업무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직군임에도 ‘최하위 계층’으로 인식돼, 계약형태 및 임금 등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노동계 내에선 기업에서 실시하는 성희롱 예방교육의 실효성에도 의문을 제기허고 있다. 형식적인 교육으로는 성추행 재발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노동계에서는 사회 구조적인 변화 요구와 함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고용 안정대책 수립 등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변명에만 급급한 공항공사

생계가 걸린 문제임에도 인권유린을 지적하고 나선 미화원들의 용기 있는 선택에 이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반면, 공항공사 측의 대응에 대해선 아쉽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김포공항 미화원들의 파업 결정 후 공사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협력업체서 발생한 의혹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현장 관리감독 강화 및 협력사에 대한 계약 연장 불허 등 강력한 제재를 통해 재발을 막겠다”고 밝혔다.

이어 “2013년 (성추행) 의혹을 확인했으나 피해자가 나오지 않아 사실규명이 되지 않았다”며 “협력업체에서 수사를 의뢰했고,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공사 출신 관리자 선임에 대한 특혜 및 낙하산 채용 의혹에 대해서도 “2014년 이전 일로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해명했다.

휴게실 논란에 대해서도 공사에선 “언론에 공개한 휴게실이란 장소는 미화원들이 편의상 사용한 청소비품 창고일 뿐 휴게실이 아니다”며 “미화원 휴게공간은 별도에 마련돼 있다”고 밝혔다.

저임금 지급 논란 역시 “월 급여가 205만원 수준으로 정부/공공기관 미화원 평균임금 160만~180만원을 상회한다. 지난해에도 미화원 한명 당 150만원의 인센티브를 추가 지급했다”고 밝혔다.

용역업체에 대한 제재 가능성을 밝힐 뿐 그로인해 피해를 볼 수 있는 미화원에 대한 대책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이번 사태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있는 미화원들의 고용불안 해소 등에 대해서도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이다.

휴게실 사용이나 최저임금 지급 논란에 대한 회사 입장에 대해서도 “원론적인 이야기만 할 뿐 현실은 모르고 하는 소리”란 지적이 이어졌다.

특히 성추행 사건에 있어 공사측이 ‘알고 있었으나 피해자가 나오지 않아 넘어갔다’고 밝힌 부분에 대해선 “성추행 사건 자체를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은 물론, 피해자가 쉽게 나서기 어려운 사건의 특징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와 관련 한 여성계 관계자는 “사회 취약계층 여성에 대한 인권유린 사태에 있어 진정성 담긴 사과와 상대가 공감할 만한 대안을 제시하는 게 우선인데, 용역업체를 관리하는 공사 측에서는 자기변명과 책임회피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힐난했다.

김영 기자  young@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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