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여성소비자신문 서유리 기자] 1960년 미국에서 최초의 경구피임약인 에노비드가 출시된 이후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계획할 수 있게 됐다. 피임약이 여성의 사회 진출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여성의 피임약 복용률은 3% 미만에 머무르고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지난 2010년 기준 뉴질랜드의 피임약 복용률은 40.6%, 프랑스 36%, 미국 14.3%, 한국은 2.8%였다. 그렇다면 유독 한국 여성들이 피임약을 기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피임약 복용에 대한 오해에 따른 여성들의 두려움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경구피임약에 대표적인 오해는 ‘피임약을 먹으면 나중에 불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건국대학교병원 산부인과 심승혁 교수는 “전혀 아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피임약은 가역적인 약이기 때문에 약을 끊으면 몸이 제 상태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론적으로는 2주 이내에 배란이 일어나게 된다.

다만 여성의 가임력은 나이에 비례해 감소하고 35세 이후에는 더욱 급격히 감소하기 때문에, 오랜 기간 피임약 복용 후 중단했을 때 임신이 잘 되지 않는다면 이는 여성의 연령 증가에 따른 자연스러운 가임력 감소에 의한 것일 수 있다.

실제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의 하버트 쿨 교수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경구피임약을 장기 복용한 참가자 중 약 94%는 1년 이내에 임신에 성공해 경구피임약 복용을 하지 않은 일반 가임기 여성의 임신율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피임약에 대한 또 하나의 오해는 ‘피임약을 먹으면 살이 찐다’는 것이다. 하지만 피임약과 관련된 대부분의 연구에서는 피임약과 체중 증가의 인과관계를 밝히지 못했다.

과거 에스트로겐 호르몬의 함량이 높았던 초기 피임약들에서는 체내의 수분 배출을 어렵게 하는 수분저류 현상이 있었으나,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모든 피임약들은 체중에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로 소량의 호르몬이 포함된 저용량 피임약이다.

또한 피임약을 1~2년 이상 복용하다 보면 많은 여성들이 ‘언제까지 복용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막연한 불안감에 복용을 중단하거나 중간에 1~2달 정도 ‘휴식 기간’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피임약을 복용할 수 있는 기간에 따로 한계는 없으며, 복용을 중단해야 할 건강상의 이유가 없는 건강한 여성이라면 폐경 전까지 복용할 수 있다.

실제로 영국, 프랑스, 독일 등과 같은 유럽 선진국의 가임기 여성들은 평균 8년 이상 피임약을 복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심 교수는 더불어 “피임약을 오래 복용해도 태아가 기형이 되거나 유산될 확률이 높아지진 않는다”며 “다만 임신한 여성은 여성호르몬이 태중 남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먹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대한산부인과 의사회 정호진 부회장은 “피임약은 대부분의 여성에서는 위험보다는 이득이 크다”며 “피임약 복용률이 낮은 국가에서 인공임신중절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듯이, 발명 후 55년 간 귀중한 생명을 구하고 여성 건강을 지켜온 피임약에 대한 막연한 오해는 버려야 한다”고 전했다.

서유리 기자  yulee@wsobi.com

<저작권자 © 여성소비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