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어려워지자 시세보다 저렴하게 판매하는 병행수입품이 소비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반면, 진품 여부와 A/S문제 등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사례도 함께 다발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명품 30% 할인…병행수입품 인기

국내 상표권자와는 다른 경로로 들여와 파는 병행수입품이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대로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병행수입은 해외 상품의 국내 독점 판매권을 가진 업체가 아닌 다른 유통업체가 외국에서 구매해 다른 수입 경로를 통해 국내에서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이들 제품의 경쟁력은 저렴한 가격이다. 명품 브랜드의 공식 수입업체들이 독점 계약을 통해 제품 가격에 높은 마진을 붙여 판매할 수 밖에 없는 반면, 이들 업체들은 해외 브랜드에게 보내야 하는 로열티와 광고비가 공식 수입업체보다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에 따르면, 고가의 외국산 유아용품을 수입해 파는 전문관 ‘베이비프리미엄'의 유모차 매출이 두 달 사이에 40％ 정도 상승했다. 이곳에서는 스토케, 퀴니버즈, 퀴니무드, 잉글레시나 트립, 스위프트 등 외국 브랜드를 취급한다. 가격은 국내 상표권자를 통해 제품을 공급받는 판매처보다 저렴한 편이다. 예를 들어 스토케의 익스플로리 V3 모델은 116만9천원으로 백화점보다 최대 37％ 싸다. 이에 힘입어 인터파크는 올해 초 휘슬러와 WMF, 테팔, 교세라, 로얄 알버트, 헨켈 병행수입 제품을 중심으로 주방전문몰도 구성했다. 이들 역시 백화점 등에 비해 20∼30％ 저렴하기 때문에 코너를 개설한 이후 매달 10％ 정도 매출이 상승하고 있다.

지마켓과 옥션에서도 노스페이스나 폴로, 나이키, 리바이스 등의 의류를 미국에서 병행 수입해 파는 판매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대형마트 또한 시기별로 상품성이 있는 제품을 일정량 병행 수입·판매해 고객 유인 효과를 톡톡히 봤다. 이마트는 2010년부터 골프채나 등산용 스틱 등 레저용품과 향수를 비롯한 일상용품을 공급하고 있다. 중간 유통 단계가 대폭 생략되기 때문에 가격 역시 저렴하다. 페레가모 인칸토헤븐 향수가 1만원대 정도다.

 

A/S도 안되는데…병행수입 명품 무엇이 이득인가

그러나 병행수입이 합법적인 유통방식임에도 불구하고 A/S 불가능 등 국내 상표권자를 통한 사후 관리는 허술해 소비자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병행수입된 캐논 카메라를 구입했던 송모씨도 카메라 액정이 깨져 A/S를 받으러 갔다가 바가지 요금을 뒤집어썼다. 이에 송 씨는 “해당 카메라는 한정상품으로 나와 한국에서 빨리 품절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해외에서 병행수입된 제품을 구매했던 것이다”며 “캐논 측은 단지 병행수입품이란 이유로 수리비용을 1.5배나 더 받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한국에서 팔았던 제품과 똑같은 정품인데, 왜 A/S 비용을 더 부담해야 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캐논코리아 측은 “수리 시 마다 항상 비용차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제품 또는 부품마다 병행수입품 여부를 떠나 비용이 동일한 경우도 있다”며 “비용차가 발생하는 이유는 병행수입품 같은 경우 공식 수입 루트를 통해 들어오지 않아 정품 여부와 품질 확인이 어렵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또한, 지인에게 루이비통 가방을 선물 받았던 김모씨도 해당 매장에 A/S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알고 보니 병행수입품 이었던 것. 김 씨에 따르면 해당 브랜드 측은 공식 수입원을 통해 들어오지 않아 A/S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루이비통 정다정 차장은 “저희 쪽에서는 병행수입품에 상관없이 정품만 인증되면 A/S를 진행해 드리고 있다”며 “당시 소비자가 가져온 제품은 진품이 아니었을 것이다”고 해명했다.

 

병행수입품 정품 여부 정부가 보장해야

병행수입은 1995년부터 정부가 수입공산품의 가격인하를 유도한다는 취지로 법적으로 허용한 제도다. 원칙적으로 상표의 고유 기능인 출처표시와 품질보증 기능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모든 수입품에 대해 병행수입을 허락했던 것. 

그러나 현재 국내 병행수입 상품은 대부분 소위 ‘짝퉁’이라고 불리는 이미테이션 상품 위주로 법의 사각지대에서 유통된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때문에 진품 여부와 A/S문제 등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사례가 많다. 물론 최근에는 병행수입업체들도 병행수입에 의한 낮은 가격과 더불어, 확실한 정품인증, A/S를 통해 병행수입의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의 생존전략이자 차별화된 경쟁력은 바로 고객 신뢰도의 확보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가 병행수입 제품에 대한 진품 여부를 확인해 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건국대학교 소비자정보학과 이승신 교수는 “소비자가 제품을 구입하기 이전까지 무역 수입품에 관해서는 정부의 책임”이라며 “병행수입 제품에 대한 정품 보장은 정부의 당연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 정부가 실시한 통관인증제는 실제 정품여부의 분쟁이 발생했을 때는 법적인 효력이 없다”며 “관세청에서 관리하는 제도 외에 정부는 공정위를 통해 실질적으로 소비자 분쟁 해결에 도움이 되는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통관인증제는 ‘QR 코드’에 구체적인 통관내용을 담아 품질보증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지난 5월 정부가 실시한 제도다.

 

송혜란 기자  hrsong@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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