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안은혜 기자] 화가를 꿈꿨던 이원정 작가는 “어린 시절의 꿈은 벌써 이뤘다”고 말한다. 도자기 명장 아버지와 함께 생활자기에 자연을 그려넣고 있는 이원정 작가는 ‘더 포터리 나인’의 대표이자 차기 도자기 명장이다. 지난 10월 12일 이원정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이원정 작가는 서양화를 전공한 미술학도였다. 학교를 졸업한 뒤 3년 간 어린이 성경에 삽화를 그렸다. 그러던 중 2009년 초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붓을 잠시 내려놓게 됐다.

“더 이상 서울에 있기 힘들어 고향인 이천으로 내려오게 됐어요. 돈을 벌어 생활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아버지가 만드신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2009년 가을 이 작가는 도자기에 들어갈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핸드페인팅 등을 배웠고, 조금씩 그림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이 작가는 “그 즈음 아버지가 하시는 남양도예로 생활자기 주문이 들어왔고, 실전에 돌입했어요. 그 때 자신감이 많이 생겼던 것 같아요.”라고 회상했다. 그리고 다음해인 2010년 3월 남양도예와는 별개로 ‘더 포터리 나인(The Pottery Nine)’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자를 등록했다.

사업자를 내고 이 작가는 본격적으로 5~6개의 도자기 공모전에 출전했는데, 모든 공모전에서 수상을 했다고. “처음에 아버지는 반신반의 하셨어요. 화가를 꿈꿨고, 도자기에 ‘도’자도 몰랐던 제가 도자기 만드는 일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셨던 거죠. 저는 아버지가 만드는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싶었어요.”

그 시작이 바로 2010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4일 간 열린 전국공예품대전 한편에 마련된 소규모 오픈마켓이었다. 그 행사에서 처음으로 이 작가의 그림이 그려진 도자기를 전시하게 됐다.

이 작가는 “그런데 반응이 있는거에요. 이익을 많이 남기자는 목표를 갖고 나간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도자기가 많이 팔렸어요. 그 행사를 계기로 주로 성형, 투각, 조각 위주로 도자기를 만드는 아버지 옆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라며 도자기 세계로의 입문 스토리를 들려줬다. 

그리고 그해 11월부터 이 작가는 ‘이천도자기축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전시회나 도자기축제에 내놓은 제품들이 팔리면서 개인적으로 주문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객들은 주로 원하는 생활자기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해 직접 사용하기도 하고 선물용으로 따로 주문하기도 했다.

이원정 작가는 “도자기축제에 참가하고 나서 한국도자재단에 ‘이천도자기축제’가 열리는 설봉공원의 야외 화장실을 도자기를 이용해 리모델링한다는 공모전이 났어요. 그 공모전을 위해 포토샵으로 디자인 작업을 했는데, 제 디자인이 선정된 거에요. 수개월의 공사 끝에 ‘세라피아 해우소’라는 이름의 화장실 리모델링 공사를 완성했어요.”라며 첫 번째 야외 작업이 좋은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국내 행사로는 이천도자기축제와 홈테이블데코전 등에 참가하고 있다. 특히 도자기축제 때 우연히 저를 발견하고 매년 찾아와 주는 고객도 생겼고, 고객들이 외국인들에게 선물했다가 맘에 들어한다고 꾸준히 선물용 생활자기를 구입해가기도 한다.

도자기축제에서 제품을 사갔던 고객들 중에서는 지인들을 소개해줘서 주문이 들어오기도 했다. 고객들이 원하는 생활자기들을 만들게 되다보니 자연스럽게 생활자기 종류가 늘어났다.

이 작가는 “처음에는 용돈 벌이를 위해서 시작했던 일이었기 때문에 5년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접어야지 했어요. 그런데 예쁘다고 제 도자기를 사가는 고객들이 생겨 신기하더라구요. 이제는 서울, 울산, 마산, 부산 등에 도매 고객까지 생겨 조금씩 판매처가 넓어지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특히 삼청동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더 포터리 나인 이원정 작가’ 타이틀로 지난해 9월부터 1년 넘게 제품이 팔리고 있다. 이 작가는 “나를 알릴 수 있는 좋은 창구 역할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원정 작가는 이천시청 권유로 다른 한국 작가들과 함께 지난 9월 프랑스 파리 인테리어 박람회인 ‘메종&오브제(Maison et objet)’에 5일 간 참가했다.

이 작가는 “도자기를 전공한 남동생이 대신 갔던 메종&오브제에서 한국 도자기가 유럽인들에게 실용적인 면에서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어요.”라며 “유럽인들의 반응은 ‘예쁘다’ 정도였지만 많은 공부가 됐어요. 시장을 보는 눈이 넓어졌고, 에너지를 얻으며 동기부여가 됐어요.”라고 소감을 말했다. 내년에 또 도전해볼 생각이라고.

이 작가는 1남 1녀 중 장녀다. 아버지인 이향구 도자기 명장과 어머니, 그리고 도자재단에서 근무하고 있는 남동생은 이원정 작가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더 포터리 나인’의 제품이 탄생하기 위해 필요한 도자기를 구워주시는 아버지, 도자기를 이용한 건축물 또는 조형물을 만드는 등의 현장 경험을 쌓고 있는 동생은 앞으로도 계속 협업을 해나가야 하는 가족이자 동료다.

고객들은 이 작가의 가능성에 ‘젊은 작가로서 대성할 것 같다’는 칭찬을 쏟아낸다. 이런 칭찬에도 “얼른 유명해져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보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만 하고 있어요.”라고 이 작가는 말한다. 

이 작가는 생활자기를 만들면서 이천에 위치한 도예고등학교에서 방과 후 강사로 1년 정도 아이들을 가르쳤고, 3년 째 고등입시미술 학원에서 소묘를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 손이 안 늙어요.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에너지를 많이 받고 있죠. 입시미술 학원에서의 일이 도자기와 전혀 관계없는 것 같아도 아이들이 착용한 작은 액세서리나 소품 등을 통해 컬러감이나 신선한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돼요. 그러면서 제가 만드는 도자기들도 늙지 않는 기분마저 들어요.”

꿈을 물었더니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작가’로 불리면서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까 어릴 때 가졌던 꿈은 이뤘다”고 이 작가는 대답한다.

이천에 생길 도예단지에 이 작가는 작업공간과 집을 지을 계획이다. 그곳에서 뭘 할거냐는 물음에 “대규모 도자기 아트 타일을 만드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라며 “그곳에 큰 가마를 만들어 생활자기와 아트 타일을 만들고 또 그 옆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실험을 해볼 수 있는 작은 가마를 따로 만들거에요. 80살이 되어서도 내 힘으로 즐기면서 일을 하고, 맛있는 것을 사먹을 수 있는 용돈을 벌 수 있다면 더 없이 행복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 작가의 희망찬 미래가 벌써부터 보이는 것 같았다.
 

안은혜 기자  iamgrace.ah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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