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최문희 기자]“민청련을 인정하세요! 그러지 않으면 당신들이 저지른 폭행을 언론에 모두 알리겠어요!” 고 김근태가 겪은 22일 간 참혹한 고문의 기록이 담긴 책 ‘짐승의 시간’에 등장하는 인재근 의원의 목소리다. 안기부 국장을 만나러 나간 남편이 피투성이가 돼 돌아오자 그는 안기부에 전화를 걸어 진실을 촉구했다.

1985년 9월의 일이었다.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가 수차례 고문을 받은 남편의 사건을 세상에 알린 인 의원은 고 김근태와 평생 동지로 살며 녹록치 않은 세월을 견뎌왔다. 이제 그는 김근태의 ‘바깥사람’으로 불리며 인권운동가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으로 종횡무진중이다.

당시 고문에 가담했던 자들은 법의 순리에 따라 처벌받았다. 수사관 4명은 1993년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의 독직폭행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 6개월에서 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민주주의의 ‘큰 별’ 김근태는 세상을 떴지만 남은 자리의 온도는 여태 뜨겁다.

“참여하라, 승리하라, 세상을 바꿔라”는 김근태의 전언을 품고 바른 권력을 세우는데 인 의원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기자는 보건복지위 소속으로 활약 중인 그에게 그간 걸어온 길과 소비자 관련 현안들을 짚어봤다.

고 김근태 ‘바깥사람’이자 인권운동가…진실의 상 인권상 수상
“참여하라, 승리하라, 세상을 바꿔라” 전언 품고 정계 활동

Q. 민가협 총무를 거쳐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 한반도재단 이사장 등 민주주의 수호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2012년 진실의 상 수상 당시엔 ‘복지가 최고의 인권’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복지가 인권정신의 핵심이라 생각하게 된 연유가 궁금하다.

“전쟁 직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문제였어요. 인권은 곧 생명권이었고요. 그 이후 산업화와 함께 도래한 군사독재시절, 인권운동이 곧 민주화운동이었죠. 인권을 지키려면 우선 민주화를 이뤄야 했어요. 6월 항쟁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수평적 정권교체 이후에는 민주화의 절박함에 감춰져 있던 새로운 차원의 인권 개념이 생겨났지요.

바야흐로 민주화가 인권이었던 20세기가 끝나고 복지가 인권인 21세기가 시작되었어요. 특히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와 저성장 속에, 교과서에나 나오던 사회적 권리라는 말이 절실한 세상이 시작됐어요. 인권은 역사적으로 발명된 것이고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했어요. ‘복지가 곧 시대정신’이라는 말은 ‘복지가 곧 인권’이란 말과 같은 뜻이죠.”

Q. 고故 김근태 의원의 동반자에서 정치인으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도 녹록치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인권운동자로서의 활동 반경과 정계 입문 후 활동 반경 간 온도차는 어땠나.

“늘 김근태 곁에서 정치를 겪어 와서 정치입문이 낯설진 않았어요. 김근태와 오랜 세월 함께하며 얻은 별명도 있지요. 바로 ‘김근태의 바깥사람’인데요. 민주화운동 시절, 김근태가 감옥 안에 있는 동안 바깥에서 열심히 투쟁했더니 생긴 말이에요. 김근태가 학자, 이론가에 가까웠다면 저는 야전사령관, 행동파에 가깝죠.

그래서 생전에 김근태도 ‘인재근 씨는 정치를 하면 잘할 사람’이라고 말했어요. 물론 현실정치를 시작하며 녹록찮은 부분도 많았지만 그보다는 인권운동의 외연이 확대됐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인생을 돌이켜 보면 인재근의 인권운동에 아내 버전이 있고, 엄마 버전이 있고, 정치인 버전이 있다고 생각해요.”

Q. 지난해 5월, 전두환 정권의 부패 폭로·퇴진 운동을 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속돼 징역 5년을 선고받았던 고 김근태 의원이 28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기자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곡해하는 현실을 바로 잡은 이른바, 첫 단추를 꿰맨 뜻 깊은 사례라 생각했는데.

“아마도 김근태가 살아 있다면 이번 재판은 없었을 거예요. 자신의 진실보다 타인의 진실을 위해 노심초사했던 것이 김근태의 삶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고문과 국가폭력의 문제는 더 넓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해요. 살아생전, 여러 이유로 김근태의 파킨슨병을 쉬쉬했었죠.

그 결과 파킨슨병의 원흉인 고문후유증도 감춰지게 됐고요. 결국 고문을 국가나 사회가 아닌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치부하고 말게 되었단 것을 뒤늦게 깨달았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재판의 무죄 선고는 김근태 개인의 명예회복뿐만 아니라, 훼손된 민주주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 소중한 한걸음이었다고 봐요.”

Q. 독재시절 고문으로 후유증에 시달리는 운동권 인사들의 고통을 공론화시키는 발언의 장이 더 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우울증, 정신분열증 등 정신적 고통으로 이중고를 겪는 세월을 살았다. 고문으로 얼룩진 이들의 상처를 치유키 위한 국가적 차원의 대안책은 없을까.

“아무리 정권이 바뀐다 한들, 국가의 잘못을 국가가 직접 사과하고 보상·배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에요. 과거에 자행된 국가의 잘못과 책임을 따져 물을 수 있도록 하는 법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해요. 2012년 대표 발의한 ‘고문방지 및 고문피해자 구제·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이 아직도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에요. 과거사 정리 없이는 인권도, 복지도 공염불이란 마음으로 반드시 법을 제정할 것입니다.”

먹거리 안전 ‘무풍지대’는 언제 올까

Q.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유통 중인 상위 4개 업체의 분유 제품을 분석한 결과 0~6개월 이하의 영아가 먹는 분유 26개의 제품에서 1일 나트륨 충분 섭취량의 107%~183% 초과한 나트륨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분유제품 역시 나트륨 함량에 대한 정확한 지침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는데.

“전문가들이 만 4세까지를 평생의 입맛을 형성하는 시기로 봐요. 영아 때부터 먹는 분유에서부터 짠맛에 길들여진다면 식습관을 개선하기 힘들게 되죠. 실제로 2013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하루 나트륨 섭취량은 약 4000mg으로 나왔어요. 세계보건기구(WHO) 권고량인 2000mg의 2배에 이르는 수치죠. 각종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나트륨 과다 섭취’의 음식문화를 개선해야 할 때에요.”

Q. 반면 분유업계에선 분유에 인위적으로 나트륨을 첨가하지 않는 것은 물론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의 나트륨 함량이 모유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분유업계에서 이야기한 자료를 확인해봐야 하지만, 1990년대 연구자료들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2000년대 들어 소득수준과 의식수준의 변화와 함께 식생활이 바뀌었어요. 오래전 연구자료를 근거로 나트륨 함량을 논하는 것은 문제가 있죠.

1990년대만 해도 대한민국이 짜게 먹었을 때에요. 모유는 기본적으로 짜게 먹으면 짜게 나오고, 싱겁게 먹으면 싱겁게 나와요. 보다 정확한 논의를 위해 모유에 대한 연구를 새롭게 실시해야 해요. 이에, 상임위 질의에서 식약처에 강도 높은 연구조사와 논의과정을 통해 분유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것을 요구했어요.”

Q. 분유 문제 이어 먹거리에 대한 두 번째 논제이다. 올해 2일 비상대책위에서 일본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재개와 관련해 민간조사단 조사 방식의 신뢰성 문제를 거론했다. 소비자 입장에서, 정부가 파견한 민간조사단의 구성·조사방식의 신뢰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내다봤나.

“한마디로 매우 낮다고 봐요. 식약처가 주무부서로 타 부처의 추천을 받아 꾸린 민간조사단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일본 수산물 수입을 허가하기 위한 요식행위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저절로 들게 돼요.

특히 식약처가 추천해 위원장이 된 이재기 교수의 경우만 봐도 민간조사단에 대한 신뢰가 생기지 않아요. 인터넷 검색으로 이재기 교수를 검색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어요.

오래전부터 일본수산물 수입을 공개적으로 주장해 온 분이죠. 또한 원자력관련 연구소 등에 소속된 분들이 대거 포함돼 무늬만 민간조사단인 측면이 강해요. 반핵운동하시는 분들이 보면 ‘원자력 마피아’라며 깜짝 놀랄 인적 구성이죠. 고작 두 번인데다 3~4일 동안 진행된 현장조사도 일본 측 통제를 받은 것으로 보도되는 지경이에요.”

Q. 바른 먹거리를 지키기 위해 정계와 시민단체가 온당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수적 과제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먹거리에 대한 안전 울타리를 견고히 하기 위한 활동 계획이 마련돼 있다면.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요. 국민 먹거리 안전을 지키기 위해 식품당국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죠. 하지만 압축성장의 과정에서 정부가 식품안전 점검보다 식품산업 지원에 더 관심을 보였던 것이 사실이에요. 그래서 식약처 등 식품안전 당국이 국민건강이 아닌 식품업체나 의약품업체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주는 모습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죠.

그러나 왕도나 기적은 없어요. 식품당국이 갑자기 관행을 깨고 선진화될 수는 없죠. 시민단체와 국회가 적극적으로 정부를 견인해야 해요.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언론과 함께 정부의 식품안전에 대한 변화와 혁신을 재촉해야 해요. 개인적으로 국회 보건복지위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함으로써 먹거리 안전의 울타리를 올곧게 세워나갈 거에요.”

후퇴하는 민주주의 선로에서 

Q.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를 넘어 ‘몰락하고 있다’고 보는 여론의 우려가 일고 있다. 스스로 판단하기에 국내 민주주의 주소는 어디쯤 위치해있다고 보나.

“한국 민주주의가 흔들리고는 있지만 몰락할 것이라고 보지는 않아요. 가난과 독재라는 이중고를 딛고 산업화와 민주주의라는 기적을 만들었던 국민의 저력을 믿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보수집권 7년 동안 한국 민주주의가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에요. 특히 정부기관과 군이 선거에 개입하는 반민주주의적인 행태는 민주주의 후퇴의 가장 확실한 증거죠.

그러나 민주주의 후퇴는 야당이나 진보적 시민단체만의 주장이 아니에요. 대한민국 밖의 객관적인 평가에서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퇴보 중이에요. 현병철 인권위 위원장은 국제인권기구로부터 계속해서 A등급보류 판정을 받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강등을 의미해요.

대한민국이 B급인 국가인권위원회를 가진 나라가 된 것이죠. 언론의 자유는 참혹해요. 미국의 국제인권단체인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한국은 2011년 이후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추락한 상태에요.”

Q. 앞으로 풀어보고자 하는 정치적 숙제가 있다면.

“국민과 불통하며 빈익빈부익부를 재촉하는 새누리 10년, 부자보수정권 10년이 연장돼서는 안됩니다.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복지를 통해 국민도 살리고 경제도 살리기 위해 반드시 총선에서 승리해야 해요.

대선에서 정권을 교체해야 하고요. 반년 가까이 비대위원을 하면서 개혁과 화합의 중요성을 절감했어요. 당도 대한민국도, 민주주의도 인권도 개혁하고 화합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나갈 거에요.”

Q. 지금을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어떤 인물로 기억에 남고 싶은가.

“2012년 총선 출마 당시, 관련 서류에 후보자의 직업을 적어야 했어요. 저는 ‘인권운동가’라고 적었어요. 당시 출마자 중에 유일한 경우였지요.

김근태가 영원한 ‘민주주의자’로 기억되듯이 인재근은 영원한 ‘인권운동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의 아픔을 함께 나눴던 사람, 곁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온정을 나눴던 친구 같은 사람, ‘서민의 따듯한 친구’로 기억되고 싶어요.”

최문희 기자  moon@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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