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만 3세~5세 유아를 키우는 엄마들은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발언에 환영으로 맞이했다. 하지만 이날 저녁, 교육부는 다시 해명자료를 발표했다. “누리과정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발언과 관련해 누리과정에 드는 예산을 국고로 지원하겠다는 뜻이 아니라는 해명이었다.

하루 만에 교육부가 입장을 번복하자 인터넷 등 각종 매체에선 여론 비난이 일어났다. 누리과정은 그동안 기획재정부를 비롯해 여야 정치권이 예산 편성을 놓고 갈등을 빚어왔던 첨예한 사안이다.    

황우여 장관 “누리과정 책임지겠다” 신년사 해명 소동
결국 ‘우회지원’ 결론…교육청 등 재정 부담 해결책 미흡

“교육부의 입장 번복은 어린 자녀를 키우는 대한민국 엄마들을 농락하는 처사다. 하루 사이 어떻게 두 번이나 입장을 번복할 수가 있나. 황당하다.” 저녁 이전만 해도 환영의 뜻을 밝혔던 수십 개의 댓글은 정부를 향한 거센 비난으로 물들었다.

아이를 더 낳으라며 출산 장려정책을 펼치는 정부의 복지정책이 ‘허울’ 뿐이란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는 의견까지 가세해 쏟아졌다.

황 부총리는 올해부터 교육을 비롯해 보건복지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 8개 부처의 교육·사회·문화 정책을 총괄·조정하는 사회부총리직을 겸하게 된다.

따라서 여러 정부 부처를 책임지는 자리에서 나온 말인 만큼 엄마들은 “믿어도 되겠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 소동은 결국 ‘립서비스’로 종결되고 말았다.

황 부총리는 지난해 11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야 간사회에서도 누리과정 부족 예산을 국고 편성키로 잠정 합의했다가 지도부 반대로 무산돼 여론의 잇단 질타를 받은 바 있다.

누리과정 예산 놓고 진통

“우리나라 만 3~5세 어린이라면 누구나 꿈과 희망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국가가 공정한 보육·교육 기회를 보장한다.” 보건복지부가 관리하는 아이사랑보육보털 홈페이지 ‘누리과정’을 검색해 들어가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누리과정이란 만 3세에서 5세를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집 표준보육과정과 유치원 교육과정을 통합한 공통과정을 말한다. 지난 2012년 3월부터 모든 만 5세아를 대상으로 어린이집 보육비와 유치원비를 지원한 데 이어 2013년 3월부터는 그 대상을 만 3~4세로 확대했다.

지원단가 역시 2012년에는 20만원(만 5세), 2013년 22만원, 2014년 동결 추후에는 30만원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해 만 3~5세 보육·교육비용 부담을 경감한다는 정책 내용을 담고 있다. 쉽게 말해 해당 연령대 아이가 있는 모든 계층에 월 22만원씩을 지원해 주는 제도다.

현재 누리과정은 보건복지부의 소관사업에 속한다. 하지만 재원은 각 시·도 교육청이 부담하도록 해 교육감들이 대거 반발했다. 기나긴 진통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선 “정부 지원 없인 안된다”와 “편성된 예산을 집행해야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왔다.

지난해 11월 보령에서 열린 임시총회에선 ‘정부가 지원해야 누리과정 예산 집행을 하겠다’와 ‘편성된 예산은 집행해야 되지 않겠느냐’를 놓고 교육감들 간 설전이 이어지기도 했다.

앞선 9월, 인천 영종스카이리조트에서 열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도 “2015년 누리과정 어린이집 보육료 예산을 중앙정부가 책임지지 않으면 교육청도 어린이집에 누리과정 보육료 예산(2015년 2조1429억원) 편성을 거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 전국 교육청의 누리과정 어린이집 보육료 부담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까진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누리과정 예산을 일부(3살 자녀 가정 중 소득 하위 70%) 부담했다. 하지만 정부는 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 모두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부담해야한다는 방침을 세워왔다.

때문에 교육청들은 지난해보다 5000억원이 늘어난 3조9000억원의 누리과정 예산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려 반발해온 것이다.  

누리과정은 ‘수박 겉핥기 식’ 정책?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올해 누리과정 예산을 3개월분만 편성하는 등 중앙 정부와 여전히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비단 서울시 교육청의 경우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앞선 지난해 11월, 경기도 교육청 역시 누리과정으로 인해 몸살을 앓았다. 경기도교육청이 올해 어린이 누리과정 보육료 지원비를 편성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도 내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 움직임이 일었다.

당시 도교육청은 “재정악화로 누리과정 지원예산 1조460억원 가운데 6405억원을 편성하지 않기로 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경기도교육청의 미편성된 누리과정 예산을 살펴보면, 정부와 지자체 관할인 어린이집 보육료 5670억원 전액을 비롯해 교육청 몫이라 할 수 있는 유치원 지원비 4790억원 가운데 735억원(1.9개월)으로 나타났다.

당시 이재정 교육감은 “각 부서로부터 요구받은 세출요구액이 세입예산대비 1조5000억원이 초과돼 4차례에 걸친 구조조정을 통해 감액을 단행했다”면서 “그러나 더 이상 6405억원 규모를 줄일 수 없어 어린이집 누리과정과 유치원 누리과정비를 미편성한 상태로 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도교육청은 어린이집 보육료가 포함된 누리과정 수정 예산안을 도의회에 다시 제출했다.

도교육청 대변인은 같은 달 24일 “어린이집 보육료 미지원에 따른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애초 편성한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 범위에서 유치원과 어린이집 누리과정비가 같은 기간 지원되도록 예산안을 수정, 편성해 도의회에 보냈다”고 전했다.

하지만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비에 대한 정부의 재원확보대책은 여전히 뚜렷하게 나온 것이 없다. 당시 도교육청 홈페이지에는 학부모들의 항의글이 줄지어 올라왔다. “수박 겉핥기식 공약만 내세우지 말고 진지하게 정치를 하라”, “예산편성 다시 해달라”는 성난 학부모들의 쓴소리가 연일 쏟아졌다.

한 게시글에는 “출산을 많이 하라고 해놓고서 이런 식으로 아무 대책이 없다면 누가 아이를 낳고 키우겠냐”고 토로하기도 했다. 

강원도교육청 역시 올해 유치원·어린이집 전체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가 예산 일부를 편성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전북교육청의 경우 정부가 목적 예비비 형식으로 교육청에 배정키로 한 3개월분의 예산(약200억원)을 본 예산에 편성했다. 나머지 14개 시도교육청은 관련 예산을 부분이나마 편성할 방침이다.

전국 교육청들도 난색을 표하면서 이제 3~5세 자녀를 둔 대한민국 부모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각 시·도 교육청이 우선 2~3개월 간 보육료 예산을 확보하겠다고 한 것에 대한 불만도 크다. 불안감도 증폭되고 있다. ‘우선 큰 불은 끄고 보겠다는 심산’인데, 2~3개월이 지나고 나서의 보육정책 행로에 대해선 확답을 할 수 없다는 우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책의 행로가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국민의 목소리를 일목요연하게 대변하는 통계자료가 있다. 정부가 내건 무상보육 정책인 만큼 누리과정 재원을 “정부가 부담해야 한다”는 설문조사 답변이 서울 시민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지난 달 16일, 서울시의회에 따르면, 서울 시민 66%는 “누리과정의 재원을 중앙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설문조사는 시의회가 (주)포커스컴퍼니에 의뢰하고 지난해 11월 25일~28일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주민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반영했다. 이번 조사에는 누리과정의 수혜자라 할 수 있는 미취학 학모의 의견이 대거 반영됐다.

설문조사 결과, “지방채 발행이 가능할 경우 시·도교육청이 부담해야 한다”는 의견은 12.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청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 역시 62.1%로 집계됐다.

복지부 소관사업인 누리과정 예산을 교육청이 지원하는 데 대해 부당하다는 의견 역시 45.4%로 합당하다(31.8%)는 의견보다 14%포인트 높게 나왔다.

이에 대해 유용 서울시 의원은 “중앙 정부가 누리과정 보육사업을 복지부 관할로 두면서 재원은 시·도 교육청이 마련하라고 압박하고 있다”면서 “중앙 정부가 시·도 교육감과 정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복지 사업을 치졸하게 운영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날렸다. 

유 의원은 이어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유치원 무상교육, 고교 무상교육, 초등돌봄교실 확대, 반값대학등록금 등 아이를 낳고 기르는데 돈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며 “시·도 교육청의 파산을 가져올 누리과정 예산은 중앙정부에서 책임을 지고 예산을 확보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방교육재정에 우선 반영

이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자 누리과정을 지방교육재정에 우선 반영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방안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시·도 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놓고 갈등 소지를 없애기 위해 시·도 교육청이 아닌 각 지자체가 지방교육재정의 의무지출항목을 지정해 예산을 편성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지난달 22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제6차 자문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국가-지방자치단체의 상생발전을 위한 재정관계 재정립 방안’을 보고했다.

자문회의는 “현재 지자체 자체세입이 늘면 중앙정부 지급 교부금이 줄어 결과적으로 지차체의 자체세입 확충 노력이 미흡해지고 있다”면서 “교부세 측정항목에서 노인 인구 등 복지수요의 반영비율을 늘려 지자체의 자체세입 확대 노력을 강화토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재정효율성 강화를 위해 배분 기준과 집행 과정이 불투명한 특별교부세의 사전·사후관리도 강화해야 한다”며 특히 “지방재정과 교육재정의 ‘칸막이’식 운용을 지양하기 위한 제도개선과 더불어 지방교육재정을 혁신할 필요도 있다”고 제안했다.

다시 말해, 현재 중앙정부와 시·도교육청이 갈등을 빚는 누리과정 예산 역시 의무지출 항목으로 지정해 지방교육재정에 우선 반영토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침을 실행한다는 내용인 셈이다. 
 

여야를 비롯한 정부에서 여러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어린 자녀를 둔 대한민국 학부모들은 여전히 못 미더운 눈치다. 앞서 정부가 누리과정 우회 지원방침을 통해 모자라는 재원에 대해선 지방채를 통해 마련하라는 입장을 발표한 데 대해 전국교육청별로도 상황은 엇갈리고 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여야가 합의한 누리과정 예산 우회지원에 관해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하고 시도교육청별로 임시 예산만을 세웠다. 전북교육청의 경우 누리과정 문제해결을 위해 지자체와 어린이집연합회 등 뜻을 합쳐 공동대응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처럼 누리과정 예산 편성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나오지 않는 동안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아예 국공립 어린이집이 아닌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게 낫겠다는 의견까지 털어놓았다.

대구에 사는 다섯 살 아이를 둔 한 부모는 다음과 같이 기자에게 토로했다.

“사실상 무상급식 뿐 아니라 누리과정은 중앙정부가 모든 책임을 다 져야한다. 프랑스 같은 유럽 국가들은 중앙정부가 누리과정 시행을 결정하고 재원을 시교육청에 요구하면 위헌이 된다. 공약을 내놓은 사람은 대통령인데, 책임은 지자체가 진다는 말은 아귀가 맞지 않는 말이다. 말끝마다 출산장려를 이야기하면서 막상 국민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예산 편성 문제에 관해선 왜 다른 기관에 책임을 전가시키려 하느냐. 그럴 거면 출산장려 캠페인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닌가.”

최문희 기자  moon@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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