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봄이 오면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마음도 함께 따가 주

 

봄이 오면 하늘위에 종달새 우네
종달새 우는 곳에 내 마음도 울어
나물 캐는 아가씨야 저 소리 듣거든
새만 말고 이 소리도 함께 들어 주

 

나는야 봄이 되면 그댈 그리워
종달새 되어서 말 붙인다오
나는야 봄이 되면 그대를 그리워
진달래꽃이 되어 웃어본다오

 

봄이다. 이때면 흥얼거려지는 노래가 있다. 김동환 작시(作詩), 김동진 작곡의 ‘봄이 오면’이다. 1931년 발표된 서정가곡으로 이른 봄 풍경을 잘 나타내고 있다. 봄날의 설렘이 묻어난다.

그래서 이 노래는 신춘음악행사와 방송프로그램에서 곧잘 등장한다. 우리 가곡들 중 많이 불리고 연주되는 명곡이기도 하다. 특히 합창곡, 중창곡, 경음악으로 편곡돼 인기다.

노랫말엔 계절의 운치와 감성, 풋풋한 청춘남녀의 애틋한 그리움과 사랑이 느껴진다. 1~3절 가사 중 진달래, 종달새가 정겹다. 진달래는 우리나라 곳곳에 피는 봄꽃이다. 참꽃, 두견화(杜鵑花)로도 불린다.

중국 촉나라 ‘망제’의 넋이 나라 잃은 설움에 두견새가 되어 밤새 피가 나도록 울더니 그 자리에 피어난 꽃이라서, 혹은 두견새가 울 때 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과 여기에 곡을 붙인 가요도 있다. 우리나라 텃새인 종달새도 친근하다.

동물분류상 참새목에 속하는 새로 종다리, 노고지리로도 불린다. 봄, 여름엔 암수가 짝을 지어 산다.  

가요 2부 형식 정형 이뤄 아름다운 선율

멜로디 또한 경쾌하면서도 부드럽다. 간단한 모티프(motif : 음악형식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아지랑이처럼 선율이 가볍고 순박한 시골처녀의 꿈처럼 밝고 아름답다. 반주가 복잡하지 않아 작곡가의 작품취향이 잘 배어난다.

이 노래는 곡의 통일성을 이끄는 일관된 리듬, 기초적인 화성, 기승전결의 악곡구성 등 가요 2부 형식의 정형을 이룬다. 조금 느린 속도의 4분의 3박자로 3개의 절을 가진 유절형식가곡이다.

원곡은 바장조이지만 사장조나 내림마장조로도 불린다. 화성은 전통적인 기능화성의 바탕에서 주요 3화음만 썼다. ‘꽃만 말고’ 부분에선 긴장감을 주기위해 부속 7화음을 썼다. 음역이 넓지 않아 부르기 쉽다.

안단테(Andante, 조금 빠르게)로 점 8분 음표와 그 뒤에 따라오는 16분 음표를 잘 살리면 된다. 강약약 박자로 첫 소절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의 경우 앞 글자를 강하게 부르다보면 저절로 리듬감이 생긴다.

따라서 이 노래는 예술적인 면보다 대중적 면이 강한 통속가곡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우리나라 가곡개척기 때 만들어진 것으로 서정가곡의 틀을 만드는 데 이바지했다는 평가다.

김동진 18살 학창시절 발성연습 중 작곡

‘봄이 오면’은 작곡가 김동진이 학창시절에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양 숭실중학교 5학년 학생으로 18살 사춘기시절이다.

어느 봄날 그는 학교에서 혼자 바이올린연습을 끝내고 풍금을 치며 발성연습을 하고 있었다. 교실밖엔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귀었다. 그 순간 평소 좋아했던 김동환의 시 ‘봄이 오면’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건너 마을 젊은 처자”란 대목이 머릿속을 맴돌면서 갑자기 악상들이 떠올랐다. 그는 곧바로 오선지를 꺼냈다. 멜로디가 담긴 악보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김 시인의 시 구절에 곡을 붙인 가곡 하나가 완성된 것이다.

감수성이 넘쳐나는 10대 청년 김동진의 봄맞이마음이 로맨틱하게 그려진 곡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는 학생들에게 널리 불리며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바이올린연주가였던 김동진은 이 노래 작곡을 계기로 작곡가 길을 본격 걷게 됐다.

중학교 음악교과서에까지 실린 ‘봄이 오면’은 학생애창곡이자 국민애창가곡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성악가와 유명인사들 애창곡으로도 유명하다. 박원순 전 시울시장이 생전에 이 노래를 불러 화제가 됐다.

2019년 7월 몇몇 지인들과 여름휴가차 전북 남원 지리산을 찾아 머리를 식힌 그는 숲속의 소나무를 껴안고 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됐다.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일이어서 눈길을 모았다.

김동환, 8·15광복 후 조선문단 친일인사로 지목

‘봄이 오면’ 작시자 김동환은 1901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아버지 김석구, 어머니 마윤옥 사이의 6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본관은 강릉(江陵), 호는 파인(巴人)이다. 어릴 때 이름은 삼룡(三龍). 1926년 10월 동환(東煥)으로 바꿨다.

1912년 공립 경성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어릴 적부터 문학 쪽에 자질이 많았다. 1920년 10월 중동중학교 4학년 때 고학생친목단체 갈돕회 현상모집에서 시 ‘이성규(異性叫)와 미(美)’가 1등으로 당선, ‘학생계’(1920년 7월 창간된 학생잡지)에 실렸다.

1921년 중동중 졸업 후 일본 도요대(東洋大) 문화학과에 입학, 이듬해 도쿄유학생들이 만든 재일조선노동총동맹의 중앙집행위원이 됐다. 1923년 9월 관동대지진이 나자 학업을 접고 귀국, 1924년 5월 ‘금성’에 시 ‘적성(赤星)을 손가락질 하며’로 등단했다.

이어 함경북도 나남에 있는 북선일일보사 조선문판 기자에 이어 동아일보, 시대일보, 중외일보, 조선일보 등의 기자로 일했다.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흔치 않은 문인부부였던 김동환은 1929년 자신이 창간한 월간지 ‘삼천리(三千里)’ 기자 최정희를 만난다. 훗날 소설가가 된 그녀에게 경제적 도움도 아끼지 않으며 사랑을 나눈 둘은 결혼으로 이어졌지만 잡지사 경영난 속에서 어려움에 부딪혔다. 결국 부부는 친일활동을 하게 돼 두고두고 지울 수 없는 흠집이 생겼다.

김동환은 우리나라 최초 서사시 ‘국경의 밤’과 ‘산 너머 남촌에는’ 등 주옥같은 시들을 섰다. 그러나 친일행위가 드러나 8·15광복 후 조선문단의 친일인사로 조사받을 때 ‘반역의 죄인’이란 사죄의 글을 쓰기도 했다. 1949년 2월 반민특위에 자수, 공민권 정지 5년을 선고받았다. 6·25전쟁 때 납북된 그는 노동자수용소에서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의 아들(김영식)은 1994년 부친의 일대기인 ‘아버지 파인 김동환-그의 생애와 문학’을 펴냈다. 김 씨는 “아버지가 일제말엽에 한 때 저지른 치욕적인 친일행위를 뉘우치고 변절고충을 고백하면서 ‘반역의 죄인’임을 자처했던 바 있음을 되새겨보면서 가족을 대신해 국가와 민족 앞에 깊이 머리 숙여  사죄한다”는 글을 썼다.

판소리 현대화, 양악-국악 조화 앞장

작곡가 김동진은 1913년 3월 평안남도 안주군에서 목사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음악 삶은 교회에서 비롯됐다. 11살 때 교회오르간을 치면서 음악에 관심을 갖자 기특하게 여긴 그의 아버지가 바이올린을 사줌으로써 음악인생이 시작됐다.

안주 유신초등학교를 거쳐 숭실중학교에 진학한 그는 초등학교 은사이자 시인인 김동명(金東鳴)의 시 ‘내 마음’이 그의 명가곡을 작곡하는 계기가 됐다. 중학시절 바이올린, 피아노, 작곡을 공부했다.

1932년 입학한 숭실전문학교(현재 숭실대) 선교사 말스배리(Malsbary)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체계적인 음악공부를 할 수 있었다. 일본 니혼고등음악학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그는 1939년 만주 신경교향악단에 들어가 제1바이올린연주자 겸 작곡가로 활동했다.

1950년 12월 임진강을 건너 월남한 그는 6·25전쟁 때 종군작가단 소속으로 ‘육군가’ 등 여러 군가를 작곡했다. 그전엔 평양음악대학 교수로 평양교향악단 전신(前身)인 중앙교향악단과 합창단을 창단, 지휘자로 활동했다.

서울에 자리를 잡고선 서라벌예술대, 경희대 음대 교수로 몸담았다. 그는 우리나라 가곡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봄이 오면’, ‘가고파’, ‘목련화’, ‘수선화’, ‘산유화’, ‘못 잊어’ 등을 작곡해 이름을 날렸다.

판소리의 현대화, 양악과 국악의 조화 등 음악발전공로로 국민훈장모란장, 3·1문화상, 대한민국예술원상, 은관문화훈장, 국제저작권관리단체연맹 골드메달을 받았다. 그는 2009년 7월 31일 96세로 우리 곁을 떠났다. 

왕성상 언론인 / 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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