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봄비는 
간질이는 손가락을 갖고 있나?
대지가 풋사랑에 빠진 것 같다
꽃보다 먼저 물방울이
나무의 몸을 열고 있다
물방울마다 가득
무지개가 돌고 있다
공원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속에 방울방울 떠다닌다

봄비는 솰솰 내리지 않는다. 조곤조곤 속삭이며 가만가만 쓰다듬듯 내린다. 빗방울이 소록소록 땅 위로 떨어진다. 땅에 입맞춤하며 간질이듯이 방울방울 보드랍게 스며든다.

봄비는 우산을 받치지 않고 집으로 가는 어린 학생들의 머릿결을 빗어주듯 졸졸졸 내린다. “봄비는/간질이는 손가락을 갖고 있나”보다. 빗방울이 언 땅과 나무의 살결을 사르르 녹여내면 새잎을 틔우는 마법의 기운이 솟아난다.

마침내 봄비와 대지는 풋사랑에 빠진 듯하다. 산과 들, 강물도 손뼉 치며 봄비를 반긴다. 빗방울은 사랑을 담아 마른 땅을 적시고 고층 아파트와 나무들을 깨운다. 그 빗방울 속에는 무지개가 비치고 있다.

시인은 공원길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도 그 빗방울 속에 방울방울 떠다닌다고 노래한다. 봄비는 세상 모든 것들에게 새 눈을 뜨게 한다고 속삭이는 듯하다.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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