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개나 고양이가 국가나 사회의 문명 척도라고 주장하던 나의 외국인 친구들에게 이제는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은 개고기 먹는 나라가 아니야”라고. 내가 1970년대 후반 미국 유학생으로 시작해 외국 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가장 난처하고 대답이 궁한 경우가 “한국에서는 개고기 요리가 인기라는데 사실인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였다. 그때마다 “음식문화와 전통은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지 않느냐”고 얼버무리며 대화를 회피하곤 했다.

다행히 금년 들어 1월 9일 ‘개 식용 금지법’의 국회 통과로 이제는 우리나라의 식용견은 역사 이야기가 되고 있다. 약 1년 전 인천시 강화군에서 추진했던 3주간의 미국행 청소년 문화 체험 어학연수 프로그램이 방문지역인 미국 뉴저지주의 동물 애호 단체들의 반대로 취소된 적도 있다. 강화군에 운영되고 있는 식용견 사육장과 도축장이 화근이었다는 것이다.

개와 사람의 만남은 4만여년 전 개의 가축화에서 비롯됐다. 미국의 인류학자인 팻 시프만(P. Shipman) 교수에 의하면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승자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개를 가축화해서 인간에게는 없는 개의 사냥 능력을 이용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즉 개는 사냥, 목양을 위한 훌륭한 노동력일 뿐 아니라 먹거리가 부족할 때 식용으로 이용됐다. 중국 사자성어인 토사구팽(兎死狗烹) 즉,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라는 말이 오랫동안 쓰인 것으로 보아 농경사회인 동아시아에서는 개식용이 보편화됐던 것으로 보인다.

개가 목축이나 사냥에 쓰여온 서구 민족들에게는 소, 돼지 등의 육용가축이 많고 개는 곧 노동력이므로 개를 구태여 식용으로 사용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농경사회의 개고기 식문화 전통은 집 지키는 목적 외에는 노동력에 도움이 되지 않아 고기가 부족한 비상 상황의 발생 때문이다. 지금도 식용견 최대 소비처는 중국이고 이밖에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베트남 필리핀 등에서도 개를 식용으로 이용하고 있다.

물론 서구에서도 20세기 초반까지 개고기가 매매 됐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18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산업 혁명으로 인한 사회적 변화는 가축화된 개가 육용이나 노동보다는 인간과의 교감에서 주는 기쁨과 복리 증진에 더욱 높은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사람을 따르는 충직하고 영리한 개는 정서적으로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다.

2015년에 TV방송의 ‘동물농장’ 프로그램에 소개된 ‘주인을 구한 뚱이’라는 개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적이 있다. 남편이 죽은 후 혼자 살고 있는 할머니가 돌보고 있는 뚱이가 산책하던 중 길에 쓰러진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 같은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인을 구해 냈다.

그 후 병원 생활을 하는 주인 할머니를 기다리며 빈집을 떠나지 않고 길목을 지키는 뚱이를 향한 마을 사람들의 사랑과 돌봄이 방송사에 알려졌던 것이다.

1990년대에 내가 만난 부천의 60대 초반의 아주머니 이야기도 비슷하다. 내가 서울 변두리의 단독주택에서 영화 ‘하치’에 나오는 충견 하치코처럼 멋있는 대형견 두 마리(아키, 장발)를 길렀다. 그 후 인근에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부득이 아키와 장발이를 양자 보내야만 했다.

다행히 부천에서 텃밭을 일구는 아주머니께서 양자 받겠다는 소식에 개들을 데리고 찾아갔다. 개 한 마리를 자식처럼 돌보던 남편이 갑자기 죽어 집 근처 야산에 장사했다.

남편의 3일 장이 끝나자마자 재산 분할문제로 자식들의 불화 때문에 집을 나온 아주머니가 남편의 묘소를 찾았다. 거기에 그동안 잊고 있던 그 개가 허기진 모습으로 주인의 무덤을 지키고 있었다. 그 후 수명을 다한 그 개를 주인 옆에 묻어주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개의 공감 능력과 주인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사람과 개와 아름다운 만남을 전하는 이야기나 유적은 세계 곳곳에 차고도 넘친다. 전라북도 임실의 ‘오수의견 공원’이나 일본 도쿄 시부아역의 ‘하치코 충견’ 이야기는 더 이상 화제거리가 되지도 못한다.

오히려 이제는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대접받으며 생을 누리는 반려견 시대가 됐다. 갖은 모양새를 갖추어 미용을 한 반려견을 갓난 어린애처럼 품에 안거나 애견 가방에 넣어 다니며 ‘개’라는 말대신 ‘아이’라는 호칭을 쓴다. 이들의 먹이도 사람들도 구하기 힘든 유기농 건강식이다. 반려견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문제는 ‘전통음식에 대한 과도한 통제’라며 ‘개 식용 금지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소고기, 돼지고기는 먹으면서 왜 개고기는 안되는가? 국민의 기본권 중 가장 기본이 되는 먹는 것을 법으로 금지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최근 KB금융 경영연구소의 보고서에 의하면 국내에서 반려견을 기르는 가구 수가 약 470만, 양육자는 약 900만에 달한다고 한다. 정부의 조사 통계에서도 2022년 반려견수를 약 550만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 동물보호단체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 중 86.3%가 개고기를 식용으로 보지 않거나 먹을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개를 식용견과 반려견으로 나누는 옹색한 변명은 그만둘 때가 됐다.

보신탕 등 개고기 요리가 우리의 전통 음식은 아니다. 음식 문화는 시대와 함께 변화한다. 먹거리가 풍요로워지고 개인주의와 사회 고령화로 1인 가구가 전체 가구 수의 33.4%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사람들은 점차 외로움, 고독, 정신적 결핍의 심화를 경험하게 되고 이를 반려동물을 통해서 보상받으려 한다.

연구에 의하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키우지 않는 사람보다 하루에 웃는 횟수가 2~3배 높다고 한다. 스웨덴 웁살라 대학의 연구팀은 스웨덴인 340만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연구에서 반려견을 키우는 것이 사람의 건강을 증가시키고 수명을 연장시킨다는 결론을 얻었다.

반려견과 함께 함으로서 우울증 개선 등 정신건강을 좋게 하고, 신체 활동을 높여 활동적인 사람이 되게 하고, 개가 가지고 있는 미생물로 인하여 가족의 면역력을 증강 시킨다고 설명했다.

위의 연구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북유럽 국가에서 얻어진 것인바 가족주의가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결과가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 가족관계 조사는 우리의 개인주의 성향을 보여 주고 있다.

세계적인 가구업체인 이케야가 38개국을 대상으로 가족관계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집에 홀로 있을 때 즐거움을 느낀다”라는 항목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계 1위를 기록했다 그 반대의 경우인 “자녀 손주를 가르치며 성취감을 느낀다”라는 항목에서는 최하위로 나타났다.

즉, 우리나라의 가족주의 성향은 개인주의로 변화되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가족구성과 가족관계의 변화는 국가의 경제적 위상과 함께 커다란 삶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으며 그중의 하나가 반려동물에 대한 가치 변화이다.

우리는 더 이상 일본 통치하의 패전국도 아니고 6.25 전쟁 국가도 아니며 영양결핍에 시달리는 나라도 아니다. 보신탕을 전통 음식이라고 고집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다만 지금까지 식용견 관련 사업으로 생계를 이어온 개인이나 소규모 영업자들에게는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져 ‘개 식용 금지법’ 시행에 따른 피해가 크지 않도록 적절한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이다.

강창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kkucwka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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