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이 세상 모두 우리꺼라면

이 세상 전부 사랑이라면

날아가고파 뛰어들고파

하지만 우리는 여고 졸업반

아무도 몰라 누구도 몰라

우리들의 숨은 이야기

뒤돌아보면 그리운 시절

생각해보면 아쉬운 시간

돌아가고파 사랑하고파

아 잊지 못할 여고 졸업반

 

아무도 몰라 누구도 몰라

우리들의 숨은 이야기

뒤돌아보면 그리운 시절

생각해보면 아쉬운 시간

돌아가고파 사랑하고파

아 잊지 못할 여고 졸업반

아 잊지 못할 여고 졸업반​

 

장제훈 작사, 정민섭 작곡, 김인순 노래인 ‘여고 졸업반’은 7080시절 졸업식문화를 대변했던 추억의 인기대중가요다. 1970년대를 대표하는 졸업시즌 명곡이라고 해도 손색없다.

그 무렵 학교 졸업식이 열리는 2월이면 각 방송에선 이 노래를 단골로 들려줬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이 곡을 들으면 학창 시절의 추억과 낭만, 감성이 되살아난다. 10대들의 꿈과 희망이 담긴 곡으로 ‘풋풋한 그 옛날 청춘들 모습’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사춘기소녀 섬세한 감정 담겨 인기

이 노래는 1975년 8월 23일 개봉된 같은 제목의 하이틴영화(high-teen film) ‘여고 졸업반’ 주제가로 태어났다. 김응천 감독이 만든 작품으로 입장객 수가 그때로선 적잖았던 4만명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하이틴영화는 10대 후반들 내용을 담은 고교영화로 그 무렵 인기였다. 사춘기소녀의 섬세한 감정을 담아낸 ‘여고 졸업반’은 구혜영 원작 소설 ‘불타는 신록’을 영화화 한 것으로 음악은 정민섭 작곡가가 맡았다.

더욱이 주연배우 임예진의 고교 시절 사랑 연기가 화제였다. 이정길(공동주연), 이덕화, 태현실, 허장강, 장제훈, 강남길 등 출연진들도 돋보였다. 영화는 제14회 대종상 특별상(신인장려부문 임예진)을 받았다.

게다가 청순하고 발랄한 이미지의 김인순이 노래를 불러 영화의 성공에 날개를 달았다. 내용은 여고생 얘기다. 여고 2학년 유시내는 어머니 간호를 위해 흰샘고교에 전학 온다. 그는 어머니 생일선물로 가발을 해주려고 머리를 기른다.

어느 날 사복으로 길을 걷던 그는 지도부 선생에게 걸려 머리가 잘린다. 그 일로 현기목 담임선생은 사표를 내지만 학생들의 사과로 그냥 넘어갔다. 겨울방학 때 유시내는 대관령에서 스키를 즐기나 현 선생이 보고 싶어 집으로 돌아온다.

유시내를 좋아하던 훈은 먼발치서 그를 지켜본다. 현 선생의 생일날 시내는 그와의 약속을 기다리다 오지 않자 거리를 내달리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이어진다.

신세계레코드 컴필레이션음반에 수록

‘여고 졸업반’ 영화주제가는 1975년 신세계레코드사 컴필레이션음반(Golden Folk Album 12집)에 실려 대중에 본격 알려졌다. 김인순은 1976년 가요차트 1위를 휩쓸며 그해 ‘MBC 10대 가수’로 뽑혀 스타가 됐다.

추억을 일깨우는 노랫말, 정겨우면서도 흥겨운 멜로디, 소녀들 감성을 건드리는 해맑은 김인순의 목소리가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그 바람에 그는 하이틴영화주제가 전문가수로 자리를 굳혔다. ‘친구 사이’, ‘학창시절’, ‘선생님 안녕히’ 등 학생영화주제곡을 취입해 전성기를 누렸다. ‘푸른 교실’, ‘소녀의 기도’도 히트하면서 남자 중·고생의 우상이기도 했다.

작사를 한 장제훈은 연세대 건축과를 졸업한 음악인이다. 이수영의 ‘숙녀’, 심재영과 젊은 연인들의 ‘젊은 날의 초상’, 해바라기의 ‘이젠 사랑할 수 있어요’, 김세환의 ‘사랑을 노래해요’, 양희은의 ‘옛날에 옛날에’ 등의 노랫말을 썼다.

1975년엔 ‘소녀의 기도’를 취입하고 표지모델이 되기도 했다. FM라디오 음악방송DJ도 했고 영화 ‘그건 너’, ‘여고 졸업반’ 등에도 출연했다. 이후 연출가, 공연기획가 길을 걸었다.

정민섭 작곡가는 1940년 3월 3일 진주시 귀곡동 태생의 음악인이다. 진주사범학교 병설중학교 3학년 때 밴드부원이 되면서 음악에 빠져들었다. 진주사범학교 2학년 땐 ‘관악 5중주’를 작곡, 문교부 주최 경연대회 때 특별상을 받았다.

1961년 경희대 음악과에 진학한 그는 1963년 동아일보사 주최 음악콩쿨 작곡 부문에서 관현악 ‘추방된 지역에서’로 입상, 작곡가로 나섰다. 1966년 문화공보부 주최 건전가요 무궁화상부문 장려상, 동양방송(TBC) 주최 가요대상에서 ‘뜨거워서 싫어요’로 주제가상을 받았다.

대중가요, 영화주제가 등 800여곡 작곡

그는 특히 영화음악을 많이 만들었다. 1963년 ‘하녀의 고백’으로 영화음악을 시작, 1980년대엔 해마다 30~40편을 맡았다. 매년 국내영화의 과반수를 담당한 셈이다.

1974년 대종상영화제 음악상, 1975년 백상예술대상 영화주제가상, 1977년 ‘난중일기’로 음악특별상, 1978년 MBC 서울국제가요제 최우수작곡상, 1979년 대종상(음악상)을 받았다. 그해 영화 ‘돛대도 아니 달고’에선 작곡가로, 1982년 ‘유혹’에선 살롱의 피아니스트 역으로 출연까지 했다.

그는 ‘대머리총각’, ‘고향아줌마’, ‘육군 김일병’, ‘범띠 가시내’, ‘파도’ 등 300여곡의 가요와 ‘태권동자 마루치’, ‘똘이장군’, ‘은하특공대’, ‘빨간머리 앤’, ‘요술공주 밍키’, ‘보물섬’ 등 500여 영화 주제가를 작곡했다.

그는 1987년 10월 25일 폐암으로 별세했다. 진주에선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음악제가 2022년부터 열리고 있다. 2023년 6월 2일 밤 진주 LH 본사 대강당에선 ‘제2회 정민섭 음악제, 경계를 허물다’가 열렸다. 가호서원 논어학교가 주관한 행사로 가수 태진아, 설운도 등의 공연이 펼쳐졌다.

임진왜란 때 충의공 의병장 정문부 선생 후손인 그의 가족들 모두 음악과 관련돼있어 이채롭다. 그의 부인은 ‘당신의 뜻이라면’, ‘범띠가시네’ 등의 노래를 작곡해주고 가요계 데뷔까지 시킨 가수 양미란(1945~1980년)이다.

둘은 1969년 결혼, 1남1녀를 뒀다. 큰딸(정여진)은 가수 겸 작곡가다. 그는 5세 때부터 동요와 애니메이션 주제가, CM송을 불렀다. ‘요술공주 밍키’, ‘빨강머리 앤’, ‘카드캡터체리’, 배우 최불암과 부른 ‘아빠의 말씀’ 등이 대표곡이다.

3천 편의 광고음악과 300여곡의 애니송(anisong/애니메이션주제가)을 만들었다. 아들(정재윤)은 상명대 뮤직테크놀로지학과 교수로 2500여곡의 광고음악과 300여곡의 애니송을 발표했다. TUNA SOUND 대표로 싱어송라이터다. 애니송을 부를 땐 툴라(TULA)란 이름으로 무대에 선다. 그의 부인(나오미)도 영상연출과 뮤직비디오 등을 만든 재원(才媛)이다.

김인순, 오빠의 기타연주 보고 가요계 입문

‘여고 졸업반’을 부른 김인순은 1953년 서울시 중구에서 3남2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피아노, 노래, 고전무용, 발레, 운동 등 여러 면에서 재능을 보였다. 서울남산초등학교 2학년 때 어린이성우로, 4학년 땐 서울시립합창단원으로 활동했다.

이화여고에 다닐 땐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교내방송 아나운서로 뽑혔다. 합창대회 지휘자, 교내배구대회 센터선수로 뛰기도 했다. 여고 2학년 때 학교 내 개인 리사이틀을 여러 번 했을 만큼 ‘노래 잘하는 김인순’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오빠의 기타 연주모습을 보고 대중음악에 관심을 가진 그는 1973년 가수로 첫발을 디뎠다.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여고를 졸업한 뒤였다. 데뷔곡은 1974년 선보인 ‘비 오는 날에는’, ‘초저녁별’. 그의 첫 음반에 실렸다.

1988년 5월 18일 경인고속도로에서 별세

잘 나갔던 그는 1978년 박유명 MBC 아나운서와 결혼, 가정주부로 생활하면서 무대에 서는 횟수가 줄었다. 그러다 1981년 가수활동을 다시 했으나 예전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1988년 5월 18일 밤 그에게 먹구름이 닥쳤다.

인천지역 야간업소 무대에 선 뒤 경인고속도로를 통해 집으로 가던 중 그가 탄 차가 트럭과 부딪혀 35살의 나이로 현장에서 눈을 감았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2020년 3월 30일 밤 그의 생전모습이 방송돼 화제였다.

KBS 1TV가 ‘가요무대’ 프로그램을 통해 옛 공연장면을 공개, 눈길을 모았다. 1987년 2월 23일 방송 ‘가요무대’에서 그는 검은색 투피스를 입고 청아한 목소리로 ‘여고 졸업반’을 불러 박수를 받는 장면이 나왔다.

화려한 무대매너로 관객의 환호를 이끌었던 그의 앳된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어 시청자들 눈과 귀가 쏠렸다. 김인순은 안타깝게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여고졸업반’과 함께 영원한 소녀가수로, 순수한 모습으로 우리들 가슴에 남아있다

왕성상 언론인/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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