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 뒤돌아본다

푸섶길의 가없음을 배우고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을 배우고
새소리의 기쁨을 비로소 안 한 해를
비탈길을 터벅거리며 뒤돌아본다

저물녘
내게 몰아쳐온 이 바람 무엇인가
송두리째 나를 흔들어놓는
이 폭풍 이 바람은 무엇인가

눈도 귀도 멀게 하는
해도 달도 멎게 만드는
이것은 무엇인가

자리에 누워 뒤돌아본다
만나는 일의 설레임을 알고
마주 보는 일의 뜨거움을 알고
헤어지는 일의 아픔을 처음 안 한 해를

꿈속에서 다시 뒤돌아본다
삶의 뜻으로
또 새로 본 이 한 해를

다사다난했던 2023 계묘년! 안팎으로 폭풍이 몰아쳐도 모두가 숨 가쁘게 달려와 어느덧 세밑에 이르렀다. 지구촌은 여전히 선과 악이 공존하며 떠들 법석이었지만 우리가 힘껏 추구한 평화와 행복은 과연 얼마큼이나 커진 한 해였던가? 하얀 눈이 쌓인 한 해의 끝에 서서 세상을 보며 지나간 삶을 자꾸 뒤돌아보고 뒤돌아보는 마음이다. 

시인은 지난 한 해를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 뒤돌아보고 터벅터벅 비탈길을 걸으면서도 뒤돌아본다. 돌아보니 “푸섶길의 가없음을 배우고/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을 배우고/새소리의 기쁨을 비로소 안 한 해”였음을 알게 된다. 푸섶길의 가없음을 깨닫고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으니 그의 삶이 한 해 동안 더욱 진지하고 아름답게 확장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눈도 귀도 멀게 하는/해도 달도 멎게 만드는/ 송두리째 나를 흔들어놓는 이 폭풍 이 바람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마도 그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그 무엇? 너무 아픈 사랑이 아닐는지.

“만나는 일의 설레임을 알고/마주 보는 일의 뜨거움을 알고/헤어지는 일의 아픔을 처음 안 한 해를” 다시 자리에 누워 뒤돌아본다. 진실한 만남과 헤어짐의 아픔을 겪게 되었고, 그 큰 고통을 감내하면서 사는 일은 정말 뜻대로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리 녹록치 않다는 깨달음을 전하고 있다. 또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있었던 설렘과 뜨거움과 아픔을 모두 극복하고 “삶의 뜻으로/또 새로 본 이 한 해를” 힘차게 맞이하라 노래한다.

세밑에는 누구나 뒤돌아보고 반성하고 새로운 다짐과 결심을 하게 된다. 새해에도 우리는 푸섶길의 가없음을 알고 어떤 어려운 길이라도 묵묵히 걸어가야 할 것이다. 좋은 일은 당신 덕분이라 생각하고, 이웃과 함께 따뜻하고 정답게 지내며 윤동주가 그의 서시에서 읊조리듯이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면서 각자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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