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산타의 계절이 왔다. 그간 코로나 팬데믹으로 출입을 금지당했던 산타 할아버지가 다시 돌아온 듯 올해의 크리스마스 절기는 부산하고 야단스럽다.

서울의 대형 백화점과 번화가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높게 서 있고 화려한 장식이 늘어선 크리스마스 마을에 소비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울려 퍼지는 성탄 캐럴과 함께 산타 할아버지 복장의 판매원들이 부산스럽다.

그러나 내가 살고 있는 서울 근처 지방도시는 아직도 조용하고 한산하다. 늘어선 상가에 크리스마스 캐럴은커녕 성탄절 장식화인 포인세티아 마져 눈에 잘 뜨이지 않는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 이후 하나씩 문을 닫기 시작한 작은 교회들의 불 꺼진 건물들로 저녁 거리는 을씨년스럽기 까지 하다.

예전 같으면 빨간색 산타 복장의 교인들이 붐벼야 할 현관마져 조용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급격히 줄어든 교회 신자들로 성탄절 축하 행사들 마져 힘에 겨워 산타 할아버지로부터도 외면당한 듯하다.

이렇듯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이 본래의 신앙적 의미를 잃고 갈수록 상업화하고 있으며 산타 할아버지 의상이나 성탄절 장식만 늘어나고 있음이 시대적 변화인 듯하다.

MZ세대로 통칭되는 젊은이들 사이에는 ‘산타는 없다’라는 ‘앤티(anti, 反)산타족’이 늘어나고 있다. SNS상에 ‘#SantaIsntReal’(산타는 없다)라는 해시태그(#)에 이어 어린이들에게 ‘산타는 없다’고 외쳐대는 동영상들이 인기를 모으고 있으며, ‘앤티산타’ 구호가 인쇄된 셔츠가 유행하고 있다.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에게 서구의 전설인 산타 할아버지를 실재인 것처럼 헛된 환상을 심어주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성탄절의 탈 종교화와 앤티 산타 추세는 심각하게 사회를 분열시키고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2021년 이태리의 천주교 주교 한 분이 종교행사에서 참석한 어린이들에게 한 말로 부모들의 원성을 샀고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즉, 산타 할아버지라는 것은 없고 산타의 빨간색 의상은 코카콜라를 선전하기 위해 꾸며낸 것이라는 말로 잔인하리만큼 솔직한 설명을 했던 것이다.

부모들과 교인들의 항의가 쇄도하자 천주교에서는 성탄절이 지나치게 소비 지상주의로 빠지는 현실을 안타까워 하는 말이었다고 해명했다. 부모들은 나눔과 베품의 이미지인 산타의 정신을 훼손하는 성직자의 발언이라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비슷한 일이 며칠 전 영국에서도 일어났다.

성 니콜라스 교회(St. Nicholas Church)에서 담임목사가 주일학교 성탄음악회가 열린 자리에 참석한 200여명의 어린이들에게 산타 할아버지나 썰매 같은 것은 없으니 믿지 말라는 내용의 설교를 했던 것이다.

어린이들은 혼란에 빠졌고 당황한 부모들은 담임목사의 설교가 적절하지 못하다며 항의와 성토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목사는 “어린이들도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사고력을 키우게하려 했다”고 화가 난 부모들을 설득하려 했으나 성탄절의 분위기와 산타의 정신을 훼방한 목사에 대한 성토를 누구러뜨리지는 못하였다.

이처럼 산타에 대한 논쟁이 사회적 갈등으로 비화하자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 논쟁의 심리학적 연구 결과를 소개하였다. 미국의 발달심리학자인 밀스(C. Mills)와 골드스타인(T.R.Goldstein) 교수는 48명의 어린이와 383명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산타클로스가 실재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느끼는 반응을 물었다.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산타의 실재가 허구임을 알았을 때 느끼는 실망이나 당황스러움은 잠시뿐이었으며 오히려 산타의 존재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들과 즐거워했던 아름다운 추억에 감사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착한 어린이들에게는 선물을 준다는 산타 할아버지 이야기는 12세기 프랑스의 수녀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산타클로스(Santa Claus)는 튀르키예의 성 니콜라오(Saint Nicholas) 주교의 영어식 발음이다.

생전에 어려운 이웃을 돕는 선행으로 잘 알려진 이 주교를 축하하는 성일에 니콜라오 분장을 하고 나타나 착한 어린이에게는 상을 주고 나쁜 행동을 한 어린이에게는 벌을 주는 전통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 후 17세기에 네덜란드인들이 북미대륙으로 이주하면서 성탄절에 어린이들을 위한 행사로 자리잡게 되었다. 성탄절 행사로 산타클로스가 인기를 얻게 되자 핀란드에서는 로바니에미(Rovaniemi)를 산타마을로 지정하고 매년 세계 어린이들이 산타클로스에게 보내는 우편물의 주소지로 알리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산타 할아버지 의상을 갖춘 남성을 세계 각지에 보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화천군의 우체국을 한국지점으로 지정했고, 봉화군 소천면에는 분천산타마을이 개설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올해에도 12월 11일에 핀란드로부터 산타 할아버지가 우리나라에 왔고 분천산타마을도 방문했다. 이처럼 종교에 관계없이 전 세계적인 행사로 즐기고 있는 성탄절의 전통행사인 만큼 산타 논란보다는 우리나라에도 살아있는 산타 할아버지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최근 공중 매체를 통해서 소개되고 있는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들의 미담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이 단체는 ‘사랑의 열매’ 등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1억원 이상의 금액을 기부하거나 약정한 고액 기부자들의 모임이다.

회원 중에는 기업인, 연예인, 공무원, 농업인 등 다양한 회원들이 있다. 최근 소개된 75세의 김종태씨는 40여년의 교직에서 퇴직한 후 폐품을 모아 고물상에 판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한 사랑의 열매에 기부하고 있다. 암 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88세의 월남참전 해병인 이상철씨는 군인연금과 참전수당을 기부하고 있다.

그리고 농부 1호 회원인 배춘식씨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 교회 누나가 두손에 쥐어준 노트 3권과 연필 2자루의 따스함을 지금도 기억 한다”며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 행복이라고 했다. 필자 역시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아 공부할 수 있었는데 감사하여 퇴직금 중 1억원을 모교에 후배들의 장학금으로 기부한 적이 있다.

비록 고액은 아닐지라도 어려운 이웃들 즉 독거노인, 탈북가족, 재소자 자녀 등에게 따스한 베품과 나눔을 실천하는 교회나 성당의 산타 할아버지 복장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금전이나 물품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이나 기술과 같은 재능을 필요로하는 이웃에게 제공하는 ‘재능 기부’ 또한 소중한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할 것이다.

70년 동안 천주교 주교로 시무해온 불란서 출신 95세의 두봉(Rene Dupont) 신부도 성탄절을 맞이하여 찾아온 기자들의 “행복을 누리는 비결”에 대한 질문에 “남에게 행복을 주면 최고로 행복해집니다. 무슨 일을 하든 기쁘고 떳떳하면 힘이 나요”라고 답했다.

이것이 바로 성 니콜라스가 남겨준 산타 할아버지의 정신이리라. 부모의 사랑으로 자라나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산타 할아버지를 통해서 상상력을 키워주고 나누고 베품의 아름다운 선행을 이야기해주는 것은 얼마나 보람있고 가치있는 일인가.

착하고 순수한 동심 앞에 ‘산타는 없다’고 외치며 산타 할아버지를 막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욱 큰 바램은 어린이 놀이터가 비어가는 이 땅에 ‘산타는 있다’고 이야기해줄 어린이들이 가득해지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핀란드가 아닌 이땅에 살고있는 나 자신이 살아 있는 산타 할아버지가 되기를 꿈꾸어본다.

강창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kkucwkang@empas.com

<저작권자 © 여성소비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