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루돌프사슴 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만일 내가 봤다면 불붙는다 했겠지
다른 모든 사슴들 놀려대며 웃었네
가엾은 저 루돌프 외톨이가 되었네
안개 낀 성탄절 날 산타 말하길
루돌프 코가 밝으니 썰매를 끌어주렴
그 후로 사슴들은 그를 매우 사랑 했네
루돌프사슴 코는 길이길이 기억되리

연말이면 들을 수 있는 동물소재의 캐럴이 있다. ‘루돌프사슴 코’(Rudolph the Red-Nosed Reindeer)다. 성가(聖歌), 성탄축하곡 성격의 미국동요다. 종교를 떠나 지구촌사람들 모두가 좋아한다. 요즘은 저작권문제로 길거리에서 잘 들을 수 없지만  가끔 방송전파를 탄다.

경쾌한 노래지만 ‘슬픈 사연’

어린이애창캐럴 ‘루돌프사슴 코’는 4분의 4박자로 밝고 경쾌하지만 슬픈 사연이 있다. 노래가 만들어진 건 1939년 미국에서다. 몽고메리 워드(Montgomery Ward)백화점 광고부에서 일하는 로버트 루이스 메이(Robert L. May/1905~1976년)가 네 살 된 딸과 아픈 아내를 위해 지은 시 형식의 동화내용이 노래에 담겼다.

뉴욕 롱아일랜드 태생인 로버트 메이는 가난한 집의 가장으로 직업은 카피라이터였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 색칠공부책을 나눠주었던 백화점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그에게 “쇼핑객용 동화책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KBS 2TV 예능프로그램 ‘스펀지’가 이야기의 실제주인공인 로버트 메이의 딸 바바라 메이(Barbara May)와 인터뷰한 내용에 관련내용이 나온다. 바바라 메이는 자신이 어렸을 때인 1937년 어머니 에블린 메이가 암에 걸려 늘 집에만 있었다.

그는 아픈 엄마가 다른 집 엄마들과 다르다며 슬퍼했다. 자신과 놀아주지 않는 엄마가 싫었다. 밖에 나가면 친구들이 놀려대 울며 들어오곤 했다. 아버지인 로버트도 아내가 암 투병 중이라 딸에게 신경을 쓸 수 없었다.  부모로부터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한 딸은 외톨이가 됐다.

생활고를 겪던 로버트는 아내와 딸이 심심하지 않도록 짬짬이 이야기를 해줬다. 그리고 이야기내용을 동화로 썼다. 그는 딸에게 “루돌프가 빛나는 빨간 코 덕분에 세계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러 다니지 않느냐”며 달랬다. 그때의 이야기가 ‘루돌프 동화’다. ‘루돌프사슴 코’ 노랫말 바탕이 된 작품이다.

암 걸린 아내 기쁜 소식 못 듣고 숨져

로버트는 안개 낀 미국 시카고 거리를 걷다가 빨간 코로 길을 밝히는 캐릭터를 문득 떠올렸다. 게다가 어릴 때 키가 작아 따돌림을 당하고 수줍음을 탔던 자신의 경험을 동화에 접목, 독자들 공감을 끌어냈다. 딸이 시카고동물원 사슴을 좋아해 순록을 시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딸은 엄마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에블린 메이는 어느 날 남편에게 “동화를 잡지사에 기고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로버트는 ‘워드’ 잡지사에 글을 보내 큰 성공을 거뒀다. 그는 글을 백화점 홍보용 동화책에도 넣으려 했다.

그러나 백화점담당자는 반대했다. 아이들에게 술주정뱅이분위기가 나는 빨간 코의 주인공(루돌프)을 쓸 수 없다는 견해였다. 고민하던 로버트는 만화가인 친구를 찾아가 “빨간 코를 최대한 귀엽게 그려 달라”고 해 백화점의 승낙을 받아냈다.

1939년 12월 크리스마스 때 30쪽짜리 동화책이 배포됐다. 제목은 ‘루돌프, 빨간 코 순록’. 반응은 아주 좋았다. 책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240만 부나 나갔다. 이후 ‘루돌프사슴 코’ 동화는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로버트의 아내는 기쁜 소식을 듣기 전에 암이 번져 그해 7월 숨을 거뒀다.

세월은 흘러 1946년 한 출판사 요청으로 이야기 식으로 풀어쓴 시 형식의 루돌프동화책도 나와 또 한 번 성공했다. 이듬해엔 시 버전으로 다시 발행돼 베스트셀러가 됐다. 동화책의 인기로 썰매를 끄는 루돌프캐릭터는 미국전역에서 유명해졌다.

산타와 루돌프가 들어간 광고 또한 눈길을 모았다. 루돌프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루돌프사슴 코’ 동요까지 나와 히트했다. 노래는 로버트의 처남인 가수 조니 마크(Jhonny Marks)가 작사·작곡하고 진 오트리가 취입, 1949년 9월 1일 발표됐다. 조니 마크는 유대인이었지만 크리스마스노래를 많이 작곡해 사랑받았다. 그렇다고 노래가 처음부터 인기를 끈 건 아니다.

음반사에서 가사가 너무 유치하다며 메인곡으로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노래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아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1500만장의 음반이 팔려 빌보드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붉은 코 때문에 따돌림, 비웃음

가사에 얽힌 얘기도 재미있다. 로버트가 쓴 동화 속의 루돌프는 노랫말대로 붉고 빛나는 코 때문에 순록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썰매를 끄는 순록들 리더인 돈더와 코멧을 제외한 다른 순록들로부터 놀림과 비웃음을 받은 것이다.

어떨 땐 얻어맞기까지 했다. 불같은 성격의 순록 블리첸은 루돌프를 자주 괴롭혔다. 그러자 상냥한 코멧은 루돌프를 자주 돌봐줬다. 돈더도 다른 순록들을 꾸짖으며 혼냈다. 그런 가운데 어느 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안개가 많이 껴서 썰매를 탈 수 없었다.

모두 난처해하던 중 산타가 “너희들 중 반짝이는 빛을 가진 아이(순록)가 있지 않니?”라고 물었다. 돈더가 “마을에 한 명 있습니다. 루돌프입니다만 다른 순록들이 너무 괴롭혀서 올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며 난처해했다. 산타는 돈더와 함께 루돌프가 있는 언덕으로 갔다.

루돌프가 슬픈 얼굴로 “다른 순록들이 제 코를 보고 괴롭히고 놀려대요. 가고 싶지 않아요”라며 눈물을 흘렸다. 돈더는 “내가 몰라서 일어난 잘못이다. 일에만 신경 쓰다 보니 루돌프가 힘들어하는 걸 눈치 채지 못했다”고 말했다. 산타는 루돌프의 딱한 얘기와 돈더의 자책에 슬픈 얼굴이 됐지만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는 루돌프에게 “너무 속상해 말아라. 누구에게든 장점은 있단다. 네 코는 반짝이고 빛나서 어두운 밤을 비춰주어 길을 알려줄 것”이라며 달랬다. 루돌프는 자신감을 되찾아 썰매를 앞장서 끌었다. 돈더와 코멧을 뺀 다른 순록들은 “루돌프가 썰매를 끈다”는 말에 반발했다.

이에 리더인 돈더가 화를 내자 순록들은 아무 말을 못했다. 루돌프는 안개 낀 크리스마스날 산타클로스에게 뽑혀 맨 앞에서 썰매를 끌었다. 영웅이 되는 순간이었다. 다른 순록들은 안개 길을 비춰주는 루돌프의 코를 보고 감탄, 동료로 받아들였다. 빨간 코란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우뚝 선 것이다. 이를 계기로 루돌프는 크리스마스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산타할아버지와 착한 일을 하러다닌다는 이야기로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줬다.

산타클로스가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는 이미지와 얘기는 예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루돌프이름의 순록이 나오는 건 한참 이후다. 썰매를 끄는 9마리 순록 중 8마리의 이름이 나오는 시는 1823년에 지어졌다. 루돌프보다 100년 넘게 선배인 셈이다. 이야기내용에 따라선 루돌프가 돈더의 아들로 나오기도 한다. 클라리스란 순록이 루돌프의 여자친구란 얘기도 있다.

2018년 12월 언론보도에 따르면 수컷순록은 12월이면 뿔 갈이를 하므로 루돌프는 암컷이라고 한다. 2020년 12월 20일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흥미로운 내용을 전했다. 미국인출연자 조엘이 자신의 증조할아버지 형제가 ‘루돌프사슴 코’ 노래원곡자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때 번 돈으로 LA에인절스(미국 서부지구 프로야구단)와 방송국을 샀다고 했다.

루돌프는 썰매 끄는 순록의 이름

한편 ‘루돌프사슴 코’ 노래제목과 가사내용이 일부 잘못됐다는 지적이 있어 눈길을 끈다.  루돌프는 사슴이 아니란 점이다. 북극의 산타클로스썰매를 끄는 순록이름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9마리의 순록 중 맨 앞에서 달리는 순록이다. 영어가사엔 다른 8마리 순록이름이 앞에 나온다.

전문가들은 “가냘픈 사슴이 선물이 가득 실린 썰매를 끌 수 있겠는가”하는 의문점도 들먹인다. 노랫말번안이 정확하게 안 됐다는 소리다. 루돌프는 고대 노르드어인 Hrólfr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유명한 늑대’란 뜻이다. 노래가 우리나라에 본격 알려진 건 1960년대 초 신문에 실리면서다. 그때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사슴은 알아도 순록은 잘 몰라 그렇게 번역됐을 수 있다는 시각이다.

순록의 코는 반짝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코 색깔이 붉은 건 순록이 추위에 잘 견딜 수 있도록 모세혈관이 몰려있어서다. 영국의학저널(BMJ) 2012년 12월호에 실린 ‘루돌프의 코는 왜 빨갛는가 : 관찰연구’ 논문에 관련내용이 나온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의학자들이 건강한 어른 5명과 성체순록 2마리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순록의 코엔 모세혈관이 빽빽하고 적혈구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붉게 보인다는 것이다. 순록 코의 모세혈관은 1㎟당 20개로 사람보다 25% 많았다.

순록을 운동기구인 트레드밀(Treadmill)에서 걷게 한 뒤 열화상카메라로 찍었더니 코끝이 붉게 나와 뜨겁다는 설명이다.

왕성상 언론인/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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