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신경림 '겨울날'

우리들
깨끗해지라고
함박눈 하얗게
내려쌓이고

우리들
튼튼해지라고
겨울바람
밤새껏
창문을 흔들더니

새벽하늘에
초록별
다닥다닥 붙었다

우리들
가슴에 아름다운 꿈
지니라고

사계절 중 겨울이 없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수많은 변화가 도래하겠지만 우리는 우선 함박눈을 볼 수 없을 터이다. 함박눈꽃들은 먼지에 쌓인 산과들 마을까지 하얗게 덮어 눈부신 세상을 만든다. 신경림 시인은 「겨울날」에서 우리들도 깨끗해지라고 함박눈이 하얗게 내려쌓인다고 노래한다.

눈보라가 몰아쳐도 강물이 얼어붙어도 겨울은 무겁게 침묵한다. 나무들은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야 내년 봄에 더 푸르른 나뭇잎을 싹틔울 수 있다는 신념 하나로 벌거벗은 채 당당히 버티고 서 있다.

살갗이 얼어 터져 있어도 뿌리만은 얼지 않도록 혈관 속엔 뜨거운 피가 부지런히 돌고 있다. 쉬지 않고 심장이 뛴다. 보이지 않게 정성을 다해 뿌리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살다 보면 반드시 겨울이 온다. 예기치 않은 사별의 고통도 숱한 실패도 치욕의 날도 있다. 그리하여 넘어지고 쓰러져도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면 반드시 새벽이 오고 초록별들이 찾아와 빛난다.

세상도 겨울을 맞이하고 이겨내야 한다. 겨울을 건너지 않고 진달래, 개나리, 하얀 목련 꽃을 피우지 않듯이 우리 삶에 겨울이 없다면, 움츠림 없이 긴 세월을 지루하게 흐느적거리게 될 지도 모른다. 겨울에 새 희망을 품고 살아갈 일이다. 올 겨울도 온갖 매운바람을 이겨내고 초록별과 함께 스스로 겨울 꽃을 피워보자.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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