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영동선 침묵

-김용옥-

비 오면 삐걱대는 창틀
적산가옥 처마 밑에 이끼가 짙어진다
어둑한 긴 낭하 끝방 
다락에 들어가 멈춘 괘종시계를 돌려 
축축하고 어둑한 시간의 터널을 지난다

도심 어디에도 별 하나 뜨지 않는 
산성비 하늘 아래서 
사십여 년 참 오래도 버텼다 
아무리 벗겨도 남는 버짐 

자정 너머 
먼 천창 위로 
살별 하나 떠오르면 
다락방 창틀 높이 소녀를 올려놓고 
영동선 변방 역사를 지나가는 침목 소리에 
함께 흔들리며 
푸른 이끼 피어오르는 
깊은 밤을 지나간다  

등단 41년을 맞아 출간한 김용옥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제1부의 19편이 시인이 좋아하는 미술관을 7년 동안 순례하며 감상한 화가들의 작품을 시적으로 재탄생 시켰다는 데 있다.

19편의 작품마다 부제에 화가와 작품을 기록한 것이 그걸 증명한다. 이 시집의 ‘시인의 말’에서 시인은 “마유로, 화정천로, 여의대로, 마포역 그리고 또 청계산, 수리산, 영장산을 거쳐 수도권 외곽순환도로를 다 지나야 닿는 호수 습지 옆 미술관” 등에서 이 시대 젊은 작가들과 보낸 서늘하고 다정했던 풍경을 언어로 꺼냈다고 말한다.

이 시는 송지혜 작가의 ‘자정의 시간’을 보고 쓴 시인 특유의 감성과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다. 몽환적 세계를 표현하기로 유명한 송지혜 작가는 2014년에 컬러링북 ‘시간의 정원’을 출간하여 이듬해 아마존 ‘올해의 책’에 선정될 만큼 유명한 세계적 작가이다. 김용옥 시인의 이번 시집이 ‘주간경향’ 제1516호에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허형만 시인  hhmpoe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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