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다순구미는 따뜻하다

-조기호-

붓고 채워도 도무지 채울 수 없는 바다에 엎드려 
늘 구부러진 등이 차가웠을 것이다 
밤낮으로 옷깃을 세워야 했던 곳 
깃털처럼 푸근하게 덮어 와 
오종종 모여 앉은 햇살 아래서 
한 사발의 멸치국물을 함께 나누던 가난은
그래도 견딜 만하였을 것이다 

춥다는 것만큼 서러운 일이 있을까 
서로를 보듬고 껴안던 
형제들 떠나가고 
이제는 품어 줄 사람도 없어 
홀로 돌아오지 못하는 바다를 그리는 
언덕 위의 집들 

긴 그림자를 끌고 애타게 달려온 골목과 
순하게 기울어진 담장을 흔들어 깨우며 
세상, 뭐 별것 있냐고 
생의 쓴맛 되돌아보면 다 달더라고 
곤한 비탈을 다독이며 내려앉는 
저 맑은 별처럼 
‘다순구미’는 따뜻하다 

순우리말인 ‘다순구미’를 한자로 써서 온금동(溫錦洞)이라고 부른다. 유달산의 한 자락이 고하도로 흘러내린 능선 안쪽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이곳은 80년대 초 목포대학교 교수를 시작할 때 유달산과 함께 제일 먼저 찾아갔던 곳으로,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사람들은 비록 가난했지만 정겨웠고 “긴 그림자를 끌고 애타게 달려온 골목”과 바다를 바라보며 “오종종 모여 앉은” 햇살의 다사로움이 퍽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 따뜻함을 체감한 조기호 시인은 본성이 선하고 따뜻해서 그의 동시들도 엄마의 품처럼 아늑하다. 어느 겨울 아침 밥상 위에 올라온 된장국을 엎질렀을 때 부리나케 달려온 엄마가 “괜찮냐?”고 아들 걱정부터 하시더라고, 그래서 그 눈물나는 말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다면서 이렇게 쓴다. “괜찮냐고/ 오늘도 무척 아팠을 것이라고/ 부디 아프지 말라고/ 엄마처럼 그렇게”. 

허형만 시인  hhmpoe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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