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첫

-방지원-

수많은 ‘첫’을 만들며 살았지요
매번 두렵고 서툴지만 절실하고 맑아서
마치 풋내 나는 신작시 같았어요

너무 늦었다는 밀을 많이 듣기도 했어요
그때마다
나의 ‘첫’은 싹둑 싹둑 잘려나갔지요

무수히 사라진 용감한 나의 첫 경험에
애틋한 박수를 보냅니다

살아있는 한 매번 일어나는 ‘첫’이
언젠가 멈추는 날은
설렘일까요 담담함일까요

오늘 아들 연출의 새 드라마 방영 첫날
또 다른 ‘첫’으로 종일 초조합니다.

방지원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이다. 방지원 시인이 계간문예문학상을 수상할 때 “황막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의 지향성과 근원적 물음에 대한 성찰이 투명하게 나타나 있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이번 시집의 ‘시인의 말’에서 시인은 “이번 시집에는 가족 이야기가 많이 들앉았습니다. 대견함과 믿음직스러움과 못다 한 사랑에 대한 진한 미안함 등입니다. 이제야 철이 드는지 돌아보면 천지가 감사할 일뿐입니다. 앞으로 빛남을 바라기보다는 모든 곳에 사랑으로 스며들기를 소망”한다고 말한다.

여기 소개한 작품 ‘첫’도 바로 이 ‘시인의 말’을 잘 드러낸 작품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마지막 연 “오늘 아들 연출의 새 드라마 방영 첫날/ 또 다른 ‘첫’으로 종일 초조합니다”가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이라는 말은 상당히 신선하고 설레게 하는 관형사이면서 동시에 접두사이다. 먼저 관형사로서의 ‘첫’은 ’처음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 ‘첫출발’과 같은 경우이고, 다음, 접두사로서의 ‘첫’은 어떤 명사 앞에 붙어 ‘처음’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 ‘첫걸음’ ‘첫겨울’ ‘첫사랑’과 같은 경우이다.

이 ‘첫’이 쓰인 단어로는 민중서림판 국어사전에 72개, ‘겨레말 갈래 큰사전(박용수, 서울대학교 출판부)’에는 104개가 보인다.

허형만 시인  hhmpoe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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