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낙엽이 지기 전에 구월은 가고

시월이 가기 전에 그리운 사람

밤하늘 가득히 수놓은 별은

사연 되어 조용히 비쳐만 주네

날으는 기러기도 짝을 잃으면

구만리 멀다 않고 날아가는데

낙엽이 지기 전에 구월은 가고

시월이 가기 전에 그리운 사람

 

날으는 기러기도 짝을 잃으면

구만리 멀다 않고 날아가는데

낙엽이 지기 전에 구월은 가고

시월이 가기 전에 그리운 사람

 

“사랑은 떠나가도 가을은 남는다”는 말이 있다. 삶과 자연의 변화 속에 겉으론 마르고 시들어도 안으론 피어나고 되살아난다. 결실의 계절 가을은 떠나거나 헤어지기도 하지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기도 한다. 세상사 우주만물의 원리다.

발라드풍의 계절 송(song)

이맘때면 아련히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문용주 작사, 이철혁 작곡, 태원이 부른 ‘가을의 연인’이다. 발표된 지 55년 된 발라드풍의 계절 송(song)으로 가요팬들 심금을 울리는 추억의 대중가요다.

여름 무더위를 지나 선선한 바람이 부는 9~10월에 들으면 가슴이 젖어온다. 서정적인 가사로 한편의 시를 읊는 것 같다. 사랑했던 이를 떠나보낸 후 해마다 가을이면 지난 그 옛날이 떠올라 그리워진다는 애달픈 마음을 나타낸 곡이다.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가을낙엽이 바람에 획~ 날려가는 듯한 느낌이랄까.

노랫말 중 ‘기러기도 짝을 잃으면’, ‘그리운 사람’ 대목에선 외로움과 쓸쓸함이 묻어난다. 귀뚜라미 울어대며 깊어가는 가을밤이면 더욱 그렇다. 가을 어느 날 거리에 뒹구는 낙엽이 바람에 쓸려가는 풍경을 보는 듯하다.

여기에 잔잔히 흐르는 리듬(4분의 4박자, 슬로우)도 감상적인 맛이 난다. 관현악단과 하프, 기타가 주고받는 부드러운 연주멜로디 또한 애잔하게 들린다. 노래 시작 전 반주와 중간의 간주가 가을분위기를 한껏 띄운다.

LP음반 ‘이철혁 작곡집’ A면 첫 곡 수록

‘가을의 연인’은 1968년 가수 태원이 발표해 큰 인기를 모았다. 오아시스레코드사 LP음반(‘이철혁 작곡집’/앨범번호 OL 12550) A면 첫 곡으로 실려 소개됐다. 노래 앞머리에 나오는 대사가 이채롭다. “기러기 날개깃에 찬 서리 내리고 어제 밤 내린 비에 오동잎 떨어졌네.

가야할 사람들은 모두 가 버렸고 옷을 벗은 나무처럼 진실하게 살아야지 때가 되면 살아나는 생명의 빛처럼 웃으며 살아가리. 세월에 간다는 촌살은 늘어나도.” 낭랑한 성우의 목소리가 노래에 귀 기울이게 만든다.

‘가을의 연인’은 패티김, 채은옥, 이용복 등 여러 가수들이 다시 부르거나 취입해 히트하기도 했다. 1982년 리메이크한 패티김(1938년 2월~ 서울 태생/본명 김혜자) 노래는 특유의 감상적이면서도 시원한 톤으로 원곡가수 태원의 목소리와는 다른 분위기로 다가온다.

1991년 1월 지구레코드 LP음반에 실린 채은옥(1955년 11월~ 보성 태생/본명 최은옥) 노래는 조용하면서도 감칠맛이 난다. 우수(憂愁)에 찬 애상(哀想)조의 목소리가 돋보인다.

리메이크 되면서 일부 음반, 가요집, 인터넷 등에선 제목이 ‘가을의 여인’으로도 나온다. 노래는 일본에까지 알려져 가라오케 등엔 ‘秋の恋人’란 제목으로 실려 있다. 최백호가 부른 ‘가을의 여인’이 있지만 가사와 멜로디, 곡 흐름이 다르다.

노래에 얽힌 에피소드도 있다. 태원이 1969년 7월 26일 부산항 제3부두에서 열린 ‘월남전 참전용사 환송위문공연’ 때 이 노래를 불러 화제가 됐다. 더위가 한창일 때 가을노래를 불렀지만 ‘특별한 곳에서의 열창’이라 박수가 쏟아졌다.

해병대 소속으로 베트남전쟁에 참여하게 된 그는 3주간의 특수교육을 마치고 그날 함께 떠나는 동료가수 진송남, 남진과 군함을 타기 전에 무대에 선 것이다. 세 사람은 자신의 히트곡 ‘가을 연인’(태원), ‘가슴 아프게’(남진), ‘바보처럼 울었다’(진송남)를 불렀다.

‘가을의 연인’은 1983년 봄 개봉된 임권택 감독의 로맨스영화 ‘나비품에서 울었다’ 삽입곡으로도 쓰였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곡으로 부드럽게 흐른다.

태원, 김희갑에게 발탁돼 1967년 가수데뷔

노래주인공 태원(본명 박태원)은 1946년 1월생으로 작곡가 겸 연주가인 김희갑에게 발탁돼 1967년 봄 가수로 데뷔했다. 발라드와 트로트가수인 리나박(본명 박이나, 1940년 6월~)이 그의 누나이고 김희갑이 매부다. 그가 22살 때 6살 위인 누나와 취입한 ‘남매’(김희갑 작사·작곡) 노래는 인기였다.

한 소절씩 번갈아 부르다 뒷부분에선 두 사람이 불러 화음을 맞춘 곡이다.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난 두 사람은 미8군 무대에서 노래실력을 쌓은 우리나라 최초 남매듀엣가수로 활동하다 솔로가수가 됐다.

태원은 목소리가 가냘프면서도 노래에 열정이 가득한 미성(美聲)가수다. 데뷔곡 ‘사랑 아 내 사랑 아’와 ‘너의 사랑’, ‘비와 나’, ‘그 임은 가셨지만’, ‘못 잊어’ 등을 취입했다. 그는 몇 장의 음반을 냈지만 1986년 미국으로 이민가면서 팬들로부터 멀어졌다.

그곳에선 트래프박(Trapp Park)이란 이름으로 활동했다. 그가 남긴 곡 중엔 최진희를 인기가수 반열에 올린 ‘너의 사랑’(‘사랑의 미로’ 원곡)이 있다. 태원은 2001년, 2002년, 2006년, 2007년 KBS 1TV ‘가요무대’ 프로그램에 나와 노래를 부른 이후 더 이상 소식이 없다.

리나박은 1967년 ‘미니스커트 아가씨’로 데뷔했다. ‘사랑은 눈물인가요’, ‘서산에 지는 달아’, ‘일요일에 만납시다’ 등을 취입했다. 그녀는 김희갑과 결혼, 1남1녀를 뒀으나 얼마 못 가 이혼했다.

김 작곡가는 지금의 부인인 작사가 양인자(1945년 10월~ 함북 나진 태생)와 재혼했다. 리나박은 동생 태원과 2006년 10월 2일 밤 방송된 ‘가요무대’에서 ‘남매’를 불렀다.

작사가 문용주는 가요계 활동상이 잘 알려지지 않는다. 1966년 작사·작곡한 ‘도토리 총각’(오아시스레코드 앨범번호 OL-12505)이 눈에 띈다. “솔직히 말 하세요 우물쭈물 마시고 / 얼굴만 붉히시면 할 말은 언제 하나요~”로 나가는 노래다. 1967년 1월 성재희가 발표한 ‘이별은 서러워요’(이철혁 작곡), 김상희가 부른 ‘마중길’(이철혁 작곡) 노랫말도 그가 썼다.

작곡가 이철혁, 영화음악계 전설적 인물

노래를 작곡한 이철혁(본명 이경수)은 우리나라 영화음악계에서 알아주는 인물이다. 1934년 전남 영암태생으로 1971년 영화 ‘아름다운 팔도강산’을 시작으로 ‘푸른 교실’(1976년), ‘가을 비 우산 속에’(1979년), ‘전우가 남긴 한마디’(1979년), ‘감자’(1987년), ‘내 사랑 동키호테’(1989년), ‘라이 따이한’(1994년), ‘소낙비’(1995년), ‘싸울아비’(2001년) 등 40여 년간 400여 편의 영화음악을 작업했다. 특히 ‘감자’를 통해 1987년 ‘제26회 대종상영화제’ 때 영화음악상을 받았다.

1992년엔 영화 317편의 음악을 작곡, 기네스북 예술장르부문 영화음악편에 ‘최다작곡 기록보유자’로 이름이 올랐다. 1972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이사를 거쳐 1999년부터 한국영화음악작곡가협회 회장을 12년간 지냈다. 대종상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 국내 각종 영화제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평생을 오선지 위에서 살아온 그는 대중가요 작곡가로도 활동했다. 이미자의 빅히트곡 ‘동백아가씨’를 편곡했고 ‘처녀농군’(최정자 취입), ‘빗속의 연가’(김상희), ‘추억 속에 혼자 걸었네’(패티김), ‘풀꽃반지’(정훈희), ‘물방아고향’(배호) 등을 작곡했다.

그는 천양희 시인의 시 ‘묵상’에 곡을 붙여 가수 김정주가 노래한 음반을 낼 예정이었으나 마무리를 못한 채 2011년 8월 8일 오전 폐기종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7세. 유족으론 부인(김희자)과 2남1녀를 뒀다. 차남(이창문)은 2004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로 대종상영화제 음향상을 받아 2대에 걸친 수상자로 화제가 됐다.

왕성상 언론인 / 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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