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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함께 읽는 아름다운 시] 강영환 '바다 수선집'
허형만 시인 | 승인 2023.09.27 12:22

[여성소비자신문] 자갈치 해안길 집과 집 사이 세를 얻은 틈새에 틀 한 대 갖다 놓고 옷을 수선해 주는 할머니가 있다

옷을 줄이거나 늘이거나 바다로 나서는 수부들 못 고치는 옷이 없다 

소문을 듣고 가끔 바다도 수선하러 들른다 

급히 오다 넘어져 무릎 찢어진 파도도 들들들들 한두 번 박으면 말끔하다

제멋에 뛰어오르다 갈매기에게 등짝을 물어뜯긴 숭어도 한 박음이면 깜쪽같다 

어디 수선할 것이 없는지 콧등에 걸친 돋보기를 올리며 내다보는 얼굴이 돌고래다 

폐그물에 걸려 죽은 썩어빠진 준치는 수선할 길이 없어 악취를 들쥐에게 주고 외면할 수밖에 

폐비닐에 헛배 부른 귀신고래가 와서 꺽꺽 울부짖어도 그녀 틀대가리는 꺼내 쓸 수가 없다 

바다도 죽고 나면 이 일도 접어야겠다고 긴 숨에 묻어나는 냉기를 바다에 쏟아 넣고 있지만 

바다 덕에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그녀 등 뒤에는 물러나지 않는 키 큰 바다가 언제나 실한 기둥으로 남는다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와 시조로 각각 당선한 강영환 시인은 부산 시인이다. 항구 도시 부산의 시인답게 이 시집은 온통 바다 냄새와 바닷바람과 파도와 고래의 숨소리로 출렁인다.

시인은 “나는, 온몸이 푸른 빛이다. 그래서인지 파도와 가까이 놀면 행복하다. 파도는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늘 곁에 있다. 따라서 나도 출렁출렁한다. 살아있는 부표다. 바다도 나를 닮아 서늘하다. 바다 속살이 맛있다”고 말한다.

이 시집은 해설을 따로 싣지 않고 그 대신 ‘후기’로 바다와 시를 연관시켜 시인의 시정신을 밝히고 있다. 즉, “바다는 끝없이 넓고 깊다. 시의 모습이다. 둘은 서로 닮았다. 시를 찾는 내가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다. 나의 시가 그렇듯이 바다도 끊임없이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고 전한다.  

허형만 시인  hhmpoe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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