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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함께읽는 아름다운 시] 박홍점 '언제나 언니'
허형만 시인 | 승인 2023.09.22 13:23

[여성소비자신문] 그는 언제나 집안의 흥 반장 

동생이 여섯 

베틀에 앉아 뚝딱뚝딱 베를 짜고 
동생들 머리를 감겨 주고 묶어 주고 
아모레 화장품 가방을 들고 골골이 찾아다닐 때
그의 어깨는 오른쪽으로 기울고 

오만 원짜리 지폐를 택시 창밖으로 내던지고 
어린 조카 미미의 집 커튼을 달고 

사계절이 있듯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네 번의 쉼표와 네 번의 마침표 
그는 과연 누굴 사랑했을까 
미끈한 다리로 미니스커트를 입고 
용두산 엘레지를 익숙하게 부르고 

그는 언제나 집안의 흥 반장 
사랑하는 조카가 열여섯 
이제는 돌아와 6인실 요양병원 침상에 누웠다 

집안의 역사였던 그가 창밖 단풍나무 쪽으로 돌아눕는다 
가을비는 연거푸 한낮의 길을 지우고 
앞차의 전조등을 지운다 

 

이 작품은 박홍점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언제나 언니』의 표제시이다. 박홍점 시인은 20여 년 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 시인이 “수평으로 앉아 산란하는 어둠을 바라본다”라고 쓴 <시인의 말>을 곱씹으며 「언제나 언니」를 읽다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언니의 삶이 여섯 동생을 보살피면서 힘들고 고달플 텐데도 “언제나 집안의 흥 반장” 역할을 해왔던 언니, “집안의 역사였던” 언니가 끝내는 요양병원 침상에 누웠으니 얼마나 가슴 아플까.

언니의 생애를 서사적으로 전개한 이 작품에서 우리는 시인의 가정사로만 읽히지 않고 언니 세대가 살아온 이 민족의 역사로 읽히는 것은 그만큼 시인의 시적 역량 덕분일 터이다. 


허형만 시인  hhmpoe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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