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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함께 읽는 아름다운 시] 최영규 '크레바스'
허형만 시인 | 승인 2023.09.08 14:28

[여성소비자신문] 칼질을 당한 커다란 흉터였다 

아니 긴 시간 날을 세운 깊은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목을 뻗어 내려다보는 순간, 
보이지 않는 바닥 그 어두운 곳으로부터 
빙하의 서늘한 입김 훅 올라왔다 
색깔을 분간할 수 없는 
기억에서조차도 사라져버렸던 그런 어둠이었다 
순간, 주춤, 허벅지 근육에 힘이 들어가며 
두려움이 힘을 썼다 

영원히 헤어나지 못할 
속박束縛의 공간 

입구에서 떨어진 얼음 조각들이 
섬광처럼 잠깐씩 반짝거리곤 
깊은 얼음벽을 따라 
나의 시선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함부로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함정 
 

최영규 시인의 산악시집 『설산 아래에 서서』가 시인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이 시집으로 올해 김구용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단순한 산행의 시가 아닌, 알피니스트로서 백두산 등정은 물론 일본, 말레이시아, 미국 요세미티, 몽고, 7대륙 최고봉들을 거쳐 히말라야 14좌 6위봉 초오유, 북인도 히말라야 멘토사, 히말라야 최고봉 아마다블람 등을 등정 속에서 이루어진 시이기 때문이다.

손현숙 시인은 『리토피아』 2020년 봄호에서 “이번에도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까, 문자의 내용은 농담처럼 간단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을 향해 한 발 한 발 자기 발자국을 찍으며 오르고 또 오르는 사내다. 그는 매 순간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첨예한 자기 발자국을 흰 종이 위에 또박또박 기록한다. 혼자를 예감하며 맹렬하게 죽음을 연습하는 시인, 밝고, 환하고, 단정하면서도 아름다운 그의 문체는 그러니까, 그가 매번 죽음을 담보하면서 받아쓴 정직한 몸의 기록이다”고 썼다. 


허형만 시인  hhmpoe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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